나의 일본미술 순례 1 - 일본 근대미술의 이단자들
서경식 지음, 최재혁 옮김 / 연립서가 / 2022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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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친구가 생일 때 선물해준 책이다. 선물받고 자그마치 반년이 지난 뒤에 읽었는데, 내 평소 생활 패턴을 생각하면 일찍 읽은 편이다... 아무튼 결론적으로 말하면 친구가 내가 딱 좋아할 만한 책을 선물해줘 그 친구의 안목이 새삼 고마웠다.

 사실 누군가 선물한 책을 읽을 때 기대만큼 불안이 앞선다. 그도 그럴 것이 타인이 내 취향에 100% 들어맞는 책을 선물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내 손으로 고른 책도 기대를 배신하곤 하잖은가. 그렇다고 읽고 별로였다고 말하기도 그렇고... 그런 이유 때문에 반년이나 뭉그적거린 건 아니었지만, 아무튼 반년이건 얼마만이건 간에 미술 서적만이 주는 감동을 고스란히 갖춘 책이어서 읽는 내내 흥미롭고 시종 포만감 넘치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었다.


 책에서 소개하는 화가들은 일본의 근대 화가들이다. 전부 처음 듣는 이름들이고 작품도 처음 접했다. 흔히 일본 미술이라고 하면 우키요에를, 작가 이름은 샤라쿠나 호쿠사이 정도만 알았는데 그 이후의 근대, 고흐와 피카소와 동시대에 활동했던 일본의 화가는 일자무식이었다. 그래서 생소했지만 한편으론 저자가 한국 독자에게 소개하고픈 화가들이라기에 제법 기대가 됐다.

 더군다나 서문에서 저자는 질병과 전쟁으로 분위기가 황폐해진 세상에 미술은 무슨 역할을 하는가, 그리고 미술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 무슨 쓸모가 있는가 하고 자문하며 책의 본문을 집필했다고 밝히는데 이와 같은 주제의식도 독서의 몰입감을 드높였다. 비록 저자가 감동을 받았던 것처럼 소개된 화가들의 생애와 작품이 모두 인상적이었던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책에 왜 이 일곱 화가를 소개했는가 언급하는 저자 나름대로의 이유와 목적만큼은 진정성이 있어 흘려 읽지 않게 됐다.


 책에 소개된 화가들의 공통점은 천재성과 요절, 그리고 암울한 시대에 의해 희생된 양심적 지식인이라는 것이겠다. 특히 군국주의에 찌들어 전쟁을 일으키고 국가를 위해서랍시고 자국의 젊은이들을 닥치는 대로 사지로 내모는 일본에 의해 전쟁터에서 개죽음을 당한 사연이 가슴 아프게 읽혔다. 이처럼 극도로 우경화되는 자국의 세태에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화폭에 담기도 하는 마쓰모토 슌스케의 투지가 인상적이었고, 요절하게 될 자신의 운명에 거역하듯 뭉크 못지않게 죽음을 화폭에 담은 나카무라 쓰네도, 제법 글로벌한 감성을 중무장해 탈일본스런 화풍을 선보인 노다 히데오 같은 화가도 인상적이기 그지없었다.

 한국 독자에게 미지나 다름없는 일본의 근대 미술계에도 이렇게 우리의 눈길을 잡아끌고 몰입할 수 있을 만한 개성과 배경을 가진 화가들이 있는 것이 신기하고 이제라도 알게 해준 저자의 노고에 감사한다. 단순히 일본에 이렇게 멋진 그림을 그리는 화가도 있다고 소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서문에서 밝혔듯 이 세상에 뭔가 의미 있는 그림을 그리고자 했거나 뜻밖에 그렇게 된 화가들의 드라마틱한 인생 궤적을 엿볼 수 있게 도와준 저자한텐 감사하단 말이 가장 적절할 듯하다. 새로운 세계를 알려준 저자에게 감사하단 말은 결코 과찬이 아닐 터다.


 소개되는 그림들은 자화상부터 풍경화, 종교화, 추상화 등 종류가 다양해 감상하는 재미가 있었다. 더군다나 책의 말미엔 본문에 소개된 화가들의 작품을 어느 미술관에서 직관할 수 있는지 표시된 일본 지도도 수록됐다. 일본에 여행을 그렇게 많이 갔으면서 미술관엔 거의 가보지 않은 나에게 - 나가사키와 히로시마 미술관을 갔었다. 원폭박물관말고. - 꽤 유익한 정보가 아닐 수 없었다.

 물론... 솔직히 말해 이 책에 뭉크의 <절규>나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클림트의 <키스>처럼 그 작품을 보기 위해 오슬로와 마드리드, 빈을 언젠가 가겠노라 결심하게끔 만드는 걸작은, 오직 그 그림을 보기 위해 여행을 기획할 정도로 뛰어난 인상을 준 작품은 없었다. 하지만 이 미술관들에 구미가 당긴 것 역시 분명 사실이다. 굳이 이 그림들이 아니더라도 유명하지 않아도 내 눈과 마음에 쏙 드는 작품과 우연찮게 만나게 될 수 있으니까.


 따라서 언젠가 도쿄나 오사카 여행을 혼자 가게 된다면 이 미술관들에 들러볼 예정이다. 그때라면 저자의 글을 지금보다 열 배쯤 더 정독하며 읽겠지. 그날이 머잖아 오길, 그리고 나의 이 말이 공수표에 불과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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