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머린
이사카 고타로 지음, 최고은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11월
평점 :
절판


7.9 





 무려 <칠드런> 이후 12년 만에 나온 후속작으로 나도 대강 전편을 읽은 지 10년이 지나고 읽은 것 같다. 골때리면서 매력적인 4차원 캐릭터와 인상적인 시각장애인 캐릭터가 등장하는 것을 제외하곤 전편의 내용이 가물가물한 나머지 '굳이 후속편이 나올 만한 이야기였나' 하는 의문도 들었다. 물론 골때리면서 매력적인 4차원 캐릭터 진나이의 직업의 특성상 후속작이 나와도 그리 이상하지 않지만, 이번 작품은 <칠드런>과 다르게 분위기가 사뭇 진지해 어딘지 경건한 마음으로 읽어나갔다. 십 몇 년 사이에 작가에게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 <칠드런>을 재기발랄함을 생각하고 <서브머린>을 펼치면 실망할 가능성이 크다. 

 나도 내용은 가물가물하지만 전편이 기발하고 유쾌했던 것은 기억에 남아있어 후속작의 달라진 분위기와 노선이 꽤 의외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조금 실망했는데, 사건의 윤곽이 처음부터 잘 잡히지 않는 건 그렇다 쳐도 이야기가 느슨하게 전개되는 감이 있어 장편임에도 몰입이 잘 되지 않았다. 마치 단편집을 읽듯 띄엄띄엄 읽어도 큰 지장이 없을 만큼 느슨하고 어딘지 즉흥적으로 전개되는 것도 같아 여러모로 긴장감 없이 읽혔다. 


 이 작품은 추리소설이 아니다. <칠드런>도 그리 정석적인 추리소설은 아니었지만 그냥 지나치기 힘든 미스터리한 현상과 주변 인물들의 추리, 그리고 반전이 있어 확실한 흡입력과 완결성이 있던 반면 이 작품은 미스터리함도 부족하고 추리라고 부를 만한 행위를 독자들에게 유발하기엔 그 여지가 적은 편이며 딱히 반전도 없이 주제의식으로 승부를 보는 돌직구 같은 작품이었다. 

 범죄를 일으킨 소년은 소년법이라는 별도의 법을 적용하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솜방망이 처벌, 어린 것이 면죄부냐고 부조리함을 외치는 가운데 가정법원 조사원인 진나이와 무토가 고민하며 자신들이 담당하고 있는 소년들이 사건을 일으킨 경위를 조사해나간다. 작중 등장하는 소년은 총 두 명으로 한 명은 협박범 오야마다 슌과 다른 한 명은 이야기의 매인 캐릭터인 다나오카 유마인데 두 소년 다 순수한 악의에서 비롯된 행위가 아니라 일종의 공명심과 저 나름대로의 부조리한 세계에 대한 반항심에서 비롯된 행위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인터넷에서 수시로 협박장을 유포하거나 실제로 행위로 연결하는 사람들을 해킹해 그들에게 대신 협박 편지를 보낸 오야마다, 자신의 친구를 뺑소니로 잃은 다나오카가 나중에 무면허 운전으로 사람을 치어 죽인 이유는 어른들도 딱 잘라서 100% 잘못됐다고 말하기엔 어느 정도의 타당성이 있어 이들을 곁에서 지켜보는 가정법원 조사원 진나이와 무토는 씁쓸함을 느낀다. 


 일단 가장 큰 불만은 이 작품이 가해자 소년의 시선을 살피느라 정말 억울하게 피해를 당한 사람에겐 다소 사려 깊지 못한 시선으로 전개됐다는 것이다. 소년법과 가정법원 조사원의 존재 의의는 잘 알겠고 내 개인적으로도 우리 세상이 완벽하지 못해서 반드시 있어야 하겠다는 생각하지만, 이런 식의 얘기는 피해자 입장에선 기만에 불과할 수 있으며 그저 배부른 소리하고 있다는 자각을 이 소설에서 무토의 시선으로 하여금 충분히 다뤄지지 않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4차원을 넘어 독선적인 츤데레인 진나이의 시선에서 진행된 이야기라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상식인인 무토의 시선임에도 딱 가정법원 조사원이 할 법한 편향된 주장을 할애 받은 지면에 다 풀어야겠다는 듯이 이야기하고 있어 오히려 역효과를 낳았다. 

 이 소설이 비록 작가의 전매특허인 촘촘한 구성력의 추리소설이 아니었더라도 새롭거나 진지한 주제의식을 펼쳤으면 불만이 적었을 것이다. 하지만 소년 범죄의 심각함과 씁쓸함 내지는 자꾸 사람들을 회의적으로 만드는 맹점에 대해서 그다지 새롭게 얘기하지도 않고, 진지하게 얘기하지만 아주 특기할 만한 수준은 또 아니라 어디서 봤던 얘기를 또 봤던 느낌이 났다. 진나이나 나가세, 개성적인 소년들은 이야기를 개성적이고 생동감 넘치게 풀어내지만 그걸론 역부족이었다. 


 소년들은 미성숙하고 옳고 그름을 제대로 판단할 가치관이 다 생성되지 않아 소년법이라는 별도의 법이 적용된다, 라는 주장이 더는 납득하기 어려워지는 세상이 돼버렸다. 그런 세상이기에 반대로 '과연 그럴까' 하고 의문을 제기하는 <서브머린> 같은 작품에 분명 의의가 있다고 본다. 하지만 사실상 아주 양심적인 캐릭터인 와카바야시의 등장을 제외하면 이런 평가마저 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스포일러 때문에 긴 말은 못하겠지만 이 인물이 보여준 죄책감은 참 바람직하면서 현실적이기도 해 많은 생각이 들게 했다. 이 인물이 중반부가 아니라 거의 초반부터 더 비중 있게 등장했더라면 어땠을까? 그럼 이 작품은 몰입도나 주제의식이 더 강화되지 않았을까 싶다. 소수의 극악무도한 소년 범죄자를 짓밟기 위해 소년법의 가치를 부정할 것인지, 대다수의 미성숙하고 어른들도 감당하기 힘든 죄책감의 무게에 시달릴 그들을 위해 한 번의 기회를 줄 것인지... 후자의 관점에서 진행되는 작품인 만큼 '죄책감'이란 키워드를 더 부각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칠드런>의 내용이 가물가물해도 작품 이해에 큰 지장은 없었지만, 작가가 넣었을 잔재미들을 캐치하지 못해 아쉬웠다. 역시 전편을 먼저 읽은 다음에 이 작품을 이어서 읽을 걸 그랬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지. 늦지 않게 <칠드런>을 다시 읽을 생각이다. 오히려 감회가 더 새로울 수도 있겠다. 과연 10년이 지난 다음에 읽으면 어떤 기분이려나? 

자포자기해서 이런 사건을 일으키는 녀석들은 왜 하나같이 어린아이나 약자들만 노리는 거지? 어차피 인생 마감할 작정이면 더 강하고 나쁜 놈들과 붙어 보고 싶지 않나? 비아냥거리는 게 아니라 정말 궁금해서 그래. 딱히 정의의 용사가 되라는 건 아닌데, 어차피 일을 칠 거면 악당 퇴치에 힘을 쏟는 게 여러모로 역전할 수 있지 않겠어? - 147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