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 - 양장본
마크 해던 지음, 유은영 옮김 / 문학수첩 리틀북 / 2005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9.3 





 우영우를 보다가 바로 연상된 <한밤 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은 내가 읽은 몇 안 되는 자폐 스팩트럼 주인공이 등장하는 작품이다. 제목 그대로 한밤 중에 죽은 이웃집 개를 누가 죽였는가 파헤치는 주인공의 1인칭 시점의 소설이며 실제로 작중에서도 주인공이 '수사'를 진행하는 틈틈이 지도 교사의 도움을 받아 이 소설을 쓰는 내용으로 전개된다. 중간에 수사가 중단되기도 하고 이 소설을 압수되기도 하는 등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결국 사건의 진상은 알게 됐고 소설도 완성했는데, 당초 주인공이 예상한 것과 전혀 다른 결말이 나와 읽다가 어안이 벙벙했다. 

 이 소설은 주인공이 사건을 수사하면서 자기 한계에 도전한다는 점에서 훌륭한 성장소설이자 예상치 못한 사건의 진상을 논리성이 극도로 발달한 자폐 스팩트럼 주인공이 논리적으로 접근한다는 점에서 추리소설의 성격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 추리소설의 성격이 강할 뿐 대놓고 추리소설이라 부르기 주저되는 이유는 범인의 정체가 너무 뻔하고 사건의 진상에 다가가는 것이 논리적이긴 하나 이와 같은 긴장감은 모두 주인공이 자폐 스팩트럼 때문에 생각과 행동 반경이 좁은 탓에 비장애인에게 너무나 쉬운 일도 극히 까다롭게 처리하는 기질에서 비롯된다 볼 수 있다. 한마디로 특수 설정이나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변칙적인 추리소설이라 보는 것이 적합하기에 아무런 수식어 없이 추리소설이라고만 부르는 것은 조금 망설여진다. 정작 주인공은 자신이 겪은 일련의 사건을 다룬 소설을 추리소설로 부르긴 하지만 말이다. 


 전에 읽은 지 10년 가까이 지나고 다시 읽으니 새롭게 다가오는 지점이 있었다. 10년 사이에 장애인들과 같이 일을 한 적이 몇 번 있었는데 그때마다 장애인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이 강해지는 경험을 한 탓에, 우영우를 볼 때도 그랬지만 장애에 대한 무비판적인 긍정이 그리 달갑지 않게 읽혔다. 1인칭으로 전개되는 이 소설에서 주인공은 스스로의 논리적 재능에 자부심을 갖고 있는데 그 재능은 분명 그가 자폐인이란 이유로 부정당해선 안 될 만큼 뛰어난 재능이다. 허나 자신의 재능에 초점을 두거나 자신의 관심사를 나열하는 것에 비해 정작 가족을 비롯한 주변인에 대한 묘사는 자폐인답게 사무적으로 이뤄지는데, 이처럼 이기적이라고도 볼 수 있는 장애의 특성은 제3자의 시선에도 곱게 보이지 않았다. 당장 동행하는 사람이 없으면 기차 하나 탑승하기 힘들어하고 온갖 자신만의 규칙에 갇혀 쉬운 길을 멀리 돌아가거나 자신의 요구를 위해 떼쓰는 모습을 보노라면 미안한 얘기지만 장애인이고 어린아이고 어쩌고 논하기 전에 그의 재능이 과연 주변 사람들이 인정하고 헌신할 정도인가 하는 반감마저 들었다. 

 반면 주인공이 자신의 세계에 빠져 수학과 과학에 관한 자신만의 '알쓸신잡'을 펼치는 구간은 흥미로운 내용들로 가득했다. 주인공 스스로 말했듯 은유엔 젬병이라 정작 이 

'알쓸신잡'이 소설 본편과 무슨 상관인지 한 번에 와 닿지 않는다는 것과 그래서 가독성을 떨어뜨린다는 점을 의식하지 않는다면 읽는 맛 자체는 상당했다. 수학, 과학 도서를 자주 읽지 않아서 더 흥미로웠던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과연 그 내용들을 얼마나 제대로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주인공을 비롯해 여러 등장인물들, 주로 주인공의 가족들은 어찌 보면 주인공의 왜곡된 시선으로 인해 그들의 행동이 알다가도 모르게 비쳐졌는데, 특히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주인공의 덤덤한 반응 탓에 꽤 막장스런 인물들의 행보도 살다보면 그럴 수도 있는가 하는 아리송한 의문을 낳게 해 다 읽은 지금에 와선 참 신기한 기분도 든다. 작은 사건으로 시작해 예상치 못한 진실과 마주하고 세상의 부조리함을 깨닫고 돌파해나간다는 전형적인 성장소설의 구조 자체는 참 인상적이었는데 은근히 편파적인 주인공의 문장과 객관성을 파악하기 힘든 상황 묘사 때문에 다 읽고 나서 굉장히 오묘한 기분이 든 기억도 난다. 

 상당히 좋은 기억을 갖고 있던 작품이었는데 다시 읽으니 기대와는 다른 감상이 남아서 인상적인 시간이었다. 이 소설을 바탕으로 한 연극을 볼 때는 이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연극은 자폐인 주인공의 내면 세계를 무대에 효과적이고 감각적으로 재현해 보는 맛이 있었는데 이 소설의 주인공의 문체는 그때 그 감탄스런 연출에 미치지 못해 상대적으로 심심하고 답답하게 다가온 것 같다. 요새 가장 핫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흥행 요인으로 박은빈 배우의 매력적인 연기를 결코 빼놓을 수 없음을 생각해보면, 참 씁쓸한 얘기지만 장애인이 등장하는 창작물은 비장애인에게 어필될 만큼 매력적인 장애인이 등장하지 않는 한 외면당하거나 흥미가 떨어지기 십상이란 걸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이런 깨달음을 확인해볼 요량으로 이 작품을 다시 읽은 것은 아니었는데... 10년 전에 못 느낀 감상을 적다 보니 시간이 흐름에 따라 어떤 의미에서건 나도 참 많이 변했구나 싶다.  

소수는 모든 규칙들을 지우고 났을 때 남는 수다. 나는 소수가 인생과 같다고 생각한다. 소수들은 매우 논리적이지만, 당신이 한평생 생각하더라도 소수가 만들어지는 규칙은 결코 알아낼 수 없다. - 28~29p



색에 대한 편견은 어리석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인생에 있어서 사람들은 많은 결정들을 하게 되고, 만약 어떤 것도 결정을 하지 못하게 된다면 여러 일들 중에서 이것을 할까 저것을 할까 택하느라 시간을 소모하게 된다. 그래서 어떤 것을 왜 싫어하고, 또 어떤 것을 왜 좋아하는지 이유가 있는 것이 좋다. - 155p



그리고 나는 책까지 썼다. 그 말은 내가 뭐든지 할 수 있다는 뜻이다. - 37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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