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과 함께 : 저승편 3
주호민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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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문득 다시 읽고 싶어져서 <신화 함께: 저승편>을 다시 읽어봤다. 왜 다시 읽고 싶어졌을까 책장을 펼치는 와중에도 알지 못했는데, 이 작품이 꽤 그럴싸한 형식의 법정물임을 알게 되고서 단번에 이해됐다. 최근에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덕분에 그동안 추천받았거나 이전에 접했던 장애인 창작물, 법정물을 찾아 읽고 있는데 <신과 함께: 저승편>도 일종의 법정물로 내 머릿속에 아른거렸던 것 같다. 

 죽은 사람이 49일 동안 한국 신화 속 저승관을 바탕으로 생전에 지은 죄를 재판을 받는다는 획기적인 설정의 이 작품의 제목을 못 들어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동명의 영화 때문에라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텐데, 참고로 나는 그 영화가 너무나 신파적이란 얘길 듣고 보지 않았다. 무엇보다 원작에서 제일 중요한 진기한 변호사가 나오지 않는다고 하니 볼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 변호사는 어찌 보면 부조리로 가득한 저승의 법정에서 의뢰인한테 신이라 불려도 이상하지 않은 활약을 펼치니까 말이다. 


 이번에 다시 읽으니 본작의 저승에서 벌어지는 일곱 번의 재판이 참 부조리하단 생각이 들었다. 죽은 것도 서러운데 갑자기 피고인으로 부르질 않나, 악덕 회사 때문에 술병에 걸려 죽은 사람 보고 부모보다 먼저 죽었으니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고 하질 않나, 지갑을 주워 돈만 챙기고 파출소에 맡긴 걸 지적하며 똥통에 튀겨야 하는 자로 판결을 내리려고 하질 않나, 어째 재판이 뒤로 갈수록 연좌제처럼 죄인 여부를 가르는 기준이 느슨해지거나 이상해지는 등 의구심이 남는 설정이 많았다. 당장엔 재판을 받는다는 방식이 참신하고 이승에서 소심하고 착한 사람이 보상을 받는 일종의 권선징악적 전개가 마음에 들어 의식하지 못했지만, 이 쓸데없이 엄하고 전근대적인 가치관을 가진 재판부가 저승에 온 사람을 재판하니 억울하게 영원한 고통을 받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겠다는 걱정이 들었다. 

 반면 억울하게 죽어 원귀가 된 유성연과 그를 잡으러 동분서주하는 저승차사의 이야기는 갈수록 흥미로웠다. 이 세계관의 방식대로 유성연을 죽인 악인을 처벌한 것도 나름대로 통쾌했고, 누가 <짬>의 작가 아니랄까봐 군대 이야기를 적절하게 잘 녹여낸 것도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아마 예상하기로 영화화가 이뤄지면서 유성연의 서사에 적잖이 신파를 더했을 듯한데, 사연이 사연인 만큼 각색하는 입장에서 더 신파으로 만들자고 마음 먹어도 이상하지 않은 비극이란 생각이 들었다. 


 김자홍과 그의 변호인 진기한 변호사의 저승 재판, 원귀 유성연과 그를 쫓는 저승 차사의 이야기가 병렬되며 전개되는 이 작품은 전자의 파트는 뒤로 갈수록 느슨하고 후자의 파트는 극적으로 치닫는다. 재밌는 건 어느 정도 코믹하게 묘사된 저승은 세계관이 판타지적인 탓인지 현실적으로 어설프고 부조리하게 다가왔고 후자는 현세를 배경으로 했기에 마찬가지로 부조리하게 묘사됨에도 무게감 있게 읽혔다. 현세가 저승 파트의 문제를 보완하는 것 같은 이 모양새는 근본적으로는 우리가 현세에서 어떤 삶의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를 고민해보게끔 해 제법 의미심장한 연출이지 않은가 싶었다. 저승 간 다음에 착하게 살 걸 하고 후회해도 늦다, 진정 착하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만드는 것, 그것이야말로 세계관 설정의 미묘한 구멍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좋은 작품으로 독자들에게 각인된 비결이 아니었을까. 

 이번에 읽으면서 인상 깊게 읽은 구절을 소개하며 후기를 마치도록 하겠다. 내 기준에선 참 이상한 기준의 재판이었지만, 아무튼 연좌제를 바탕으로 생전에 좋은 사람과 가까이 했는지 살펴보는 재판에서 피고 김자홍은 나쁜 친구를 사귀기는커녕 오히려 그 성정 덕분에 남들에게 김자홍 본인이 '좋은 친구'로 기억에 남을 것이란 극찬을 듣는다. 세상은 혼자 사는 곳이 아님을 날마다 느끼는 내게 있어 참 가슴을 울리는 장면과 대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내 스스로에게 같은 질문을 해봤다. 난 남들에게 '좋은 친구'로 기억될 만한 사람인가? 이 말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렇다고 대답하긴 참 쉽지 않을 것 같다. 비록 연좌제로 가중 처벌을 하려는 본작의 저승 재판의 논리는 이해하기 힘들지만 이 장면은 정말 묵직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듯하다. 

네 가족과 친구들이 죽어서 여기까지 오게 되는 날에는 그들 너로 인해 많은 가산점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먼저 간 네 생각을 하겠지.

착하게 살아줘서 고맙다고... - 3권 3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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