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토 루즈 1
와타나베 준이치 지음, 전경빈 옮김 / 창해 / 2001년 12월
평점 :
절판


9.9  






 전에 <O 이야기>의 서평을 둘러보다가 어떤 사람이 그 작품과 <샤토 루즈>를 비교하는 글을 읽었다. 짧게 언급했지만 적잖이 관심이 가 어렵사리 찾아 읽었다. 알라딘 중고서점을 통해 간신히 구한 이 작품은 잊히다 못해 없어지기 일보 직전인 이유를 확실히 알 수 있게 해줬다. 아내와 섹스는커녕 정상적인 의사소통도 않는 주인공이 프랑스의 비밀스런 '성性 학습소'인 샤토 루즈로 보내버린다는 이 엽기적이고 역겨운 이야기는 거의 절대다수의 독자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내 개인적으론 마음에 쏙 드는 소설이었고 어렵사리 구해 읽은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야해서? 분명히 말이지만 야한 걸 기대하고 읽으면 오히려 실망할 확률이 높은 책이다. 물론 그런 부분을 기대하고 읽었다는 걸 부정하지 않겠다. 허나 이 소설은 주인공이 거액을 들여 자기 아내를 납치해 사실상 성고문하는 것에 동참함에도 불구하고 자기 아내에게 어처구니없이 복잡미묘한 심리를 갖는 것을 묘사하는 것에 주력하는 작품이다. 덕분에 기대보다 야하진 않았지만 기대와는 전혀 다른 부분에서 감명 깊게 읽을 수 있었다. 감명? 이상한 표현이지만 결말까지 읽으니 감명이란 표현을 쓰는 게 그렇게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더 오해할까봐 이 소설이 내 마음에 쏙 들었던 이유를 말하겠다. 이 소설은 아내에게 한 짓을 주인공 스스로 미화하기보단 자신의 성욕을 인정하고 말 그대로 아내와의 원만한 성생활을 위해서 라는 자기중심적인 이유를 솔직히 시인하고 있고, 그토록 자기중심적인 주인공이 끝에 가선 원하는 것은 그 무엇도 얻지 못하고 좌절하면서, 한편으론 자신의 결점을 극복할 모종의 실마릴 얻는 듯하며 결말이 난다. 물론 이 결말조차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연출이나 문체 덕분인지 더없이 인상적이었다. 

 난 이렇게 세상 사람들 모두에게 부정당한다고 해도 자신이 생각한 바를 솔직히 말하는 주인공들이 마음에 든다. 그렇기에 얼마든지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다. 이딴 식으로 살지 말아야지 생각하다가도, 혹시 나에게도 이런 일면이 있지 않은지 반성해보게 된다. 그리고 이런 인물조차 일련의 사건을 겪고 변하거나 변하게 되리라 기대를 품게 만드는 결말도 마음에 들었다.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 그러니 고쳐 쓰는 것이 아니라고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냐고 묻는 소설은 그 나름대로의 여운을 안겨주는 법이다. 이것이 내가 매력적인 등장인물이 가득한 소설 못지않게 결점으로 범벅인 등장인물이 나오는 소설도 즐겨 읽는 이유다. 


 <O 이야기>와 비교하자면, 그 작품에 대해서 내가 예술로 시작해 외설로 시작했다고 말했는데 <샤토 루즈>는 설정의 유사성은 있지만 다행히도 이 작품은 외설로 시작해 예술로 끝난다. 예술로 끝이 난다는 건 위에서 말한 것처럼 주인공이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며 외설로 시작한다는 건 역시나 그놈의 설정 때문이겠다. 하지만 이조차도 <O 이야기>에 비하면 귀여운 수준이다. 일단 주인공의 아내가 70일 동안 갇혀 있던 샤토 루즈는 강도 높게 그녀의 성감을 개조시키려 했고 기어코 성공했지만 그 일거수일투족이 다 다뤄지지도 않았고 그보다 중점적으로 다뤄지는 건 아내를 바라보는 주인공의 심리다. 자신에게 그토록 도도하게 굴었던 아내가 성적 접촉으로 인해 무너지는 모습에 경악하고 점점 성감이 발달해감에 따라 괘씸함을 느끼고 일취월장하는 그녀의 모습에 '과연 아내가 돌아와도 내가 만족시킬 수 있을까' 불안함을 느끼는 속마음 등이 아주 솔직하게 다뤄진다. 

 당사자끼리 해결할 부부의 성생활 문제를 주인공이 타인, 그것도 정체도 잘 모르는 집단에 맡겨놓고 혼자 안절부절못하면서 그런 아내의 모습이 담긴 영상을 보면서 자위하는 등 자기중심적이다 못해 찌질함의 정점을 보여줘 은근히 흥미로움과 안쓰러움도 유발하는 것이 바로 <샤토 루즈>라는 작품의 묘미였다. 반면 <O 이야기>는 성노예로 전락하는 여성 O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이야기이며 독자는 그녀가 '사랑'이라는 만능 단어로 철저히 이용당하는 것을 앎에도 당사자는 의심하긴커녕 오히려 남자들 입맛대로 성노예로서의 본분을 철저히 내제화하는 과정을 그저 바라만 보게 만드는 일종의 무력감을 안겨준다. 무엇보다 그 모든 성적 능욕 과정이 여성의 입장에서 그려져서 처음엔 흥미롭다가도 갈수록 노골적이고 이해불가해져 외설스러움이 극에 달하는 작품이다. 


 <샤토 루즈>에서 성노예로서의 처지를 내제화한 인물이 등장한다. 바로 주인공의 아내다. 작중에서 샤토 루즈가 어떤 공간인지 단편적으로만 묘사됐고, 아내의 시점은 마지막에 주인공한테 남긴 편지에서만 드러날 뿐이라 실제로 그녀가 O와 비교했을 때 정확히 어떤 상태일는지 잘 모르겠다. 다만 샤토 루즈가 <O 이야기> 속 루아시보다 묘사상으로 더 괜찮아 보인다 하더라도 똑같이 대책없이 성에 탐닉하는 장소임엔 큰 차이가 없고 자신의 성욕을 주체하지 못해 이번엔 자기 의사로 샤토 루즈로 가게 되는 아내의 모습은 섬뜩하며 안쓰럽다. 

 그녀는 남편에게 '만약 아니라면 죄송하지만, 당신이 날 샤토 루즈로 보낸 것이 아닐까 싶은데, 지금에 와선 고맙다고 생각한다'고 편지에 썼다. 이 말인즉슨 그녀는 성욕을 주체하지 못하는 자신의 변화에 혐오감을 느끼는 단계도 이미 넘어섰다는 얘기다. 그래서 자기 발로 샤토 루즈로 떠난 것이리라. 하지만 성욕은 영원히 채워지지 않는 욕구다. 반면 우리의 육체는 늙고 매력도 점점 떨어진다. 그리고 성욕은 한 번 맛을 들이면 꼭 상대가 있어야 해소가 가능한 욕구다. 그녀는 주체적으로 선택을 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샤토 루즈의, 아니 성욕의 노예로 전락했을 뿐이다. 그런데 지금이야 성욕의 노예로서 여러 남자들한테 예쁨을 받을 수 있겠지만, 그 예쁨을 영원히 누릴 수 있을까? 육체는 점점 늙는데? 샤토 루즈가 그녀로 하여금 어떤 확신을 품게 해줬기에 해방된 지 반년이 지났음에도 다시 돌아갈 결심을 하게 만들었는지 몰라도, 성욕을 해소해서 얻을 수 있는 쾌감은 극히 휘발적이라 그녀의 지나친 변화가 제3자 입장에서 안쓰럽기 그지없었다. 


 자신의 아내에게 몹쓸 짓을 내고도 아무 성과도 얻지 못한 주인공의 못난 모습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다. 가장 대표적인 것 한 가지를 말하자면 그가 샤토 루즈가 보내준 아내의 영상을 보고 도리어 샤토 루즈에게 질투를 느끼고 그들의 저의에 의심하는 것이었다. 샤토 루즈가 여성의 몸에 행하는 압도적인 기술들에 질투를 느끼는 거야 그렇다 치더라도 자신을 비웃으려고 영상을 보낸다고 의심하는 건 대체 무슨 심보란 말인가. 주인공은 자신의 심리 상태가 정상이 아님을 자각함에도 그 의심을 쉬이 떨치지 못한다. 심지어 그 영상도 본인이 보내달라 부탁한 것임에도 말이다. 자신이 한 짓이 워낙에 미친 짓이고 어지간히 자존감이 떨어지지 않고서 저지를 수 없는 짓인 걸 알기에 그 찌질하다 못해 어두운 심정을 중언부언 끝도 없이 쏟아낸다. 

 굳이 추측을 해보자면 주인공한테 영상을 보낸 샤토 루즈 입장을 해석해보자면, 자신들의 노하우를 보고 배우라는 일종의 선의에서 비롯된 행동이지 않았을까 싶다. '느끼지 못하는 여성은 없다, 다만 느끼게 해주는 남성이 적을 뿐이다' 라고 단언할 만큼 여성의 성감은 향상되고 개조될 수 있음을 자신하는 그들이기에 그토록 성실하게 영상을 보냈으리라 생각한다. 글쎄, 사람마다 성욕이 제각각이라 '느끼지 못하는 여성은 없다'는 말은 약간 의심스럽게 들리지만... 아무튼 작중에서 묘사되는 것을 생각하면 딱히 도를 넘은 행동을 보이지 않고 오로지 성감 자극에만 집중했던 그들이 대단히 가학적인 존재로 비춰지지 않았기에 더더욱 주인공의 심정은 자격지심에 불과하다고 여겨졌다. 만약 주인공이 자격지심을 덜 느끼고 영상의 기술을 습득하려 노력했다면 아내가 샤토 루즈로 다시 떠나는 최악의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을 텐데... 참 답답하고 안타까운 일이다. 


 아내는 자신을 납치했던 곳으로 성노예가 되기 위해 떠나고, 남편은 아내를 잃고 아내에게 자신의 단점, 예를 들면 자기중심적이고 찌질하고 인간적으로 정을 줄 수 없는 성격 등을 지적당한다. 아무리 사랑 없이 주변의 시선을 의식한 체면을 위한 부부 관계였다고 하지만 이런 식의 이별은 다소 안타깝게 느껴졌다. 애당초 샤토 루즈 같은 정체불명의 조직은 끼어들 필요 없이 둘만이서 해결하거나 끝장을 낼 수 있던 관계 아니었나. 납치에 관해선 전적으로 남편의 잘못이라 할 수 있지만 납치 전에 부부로서 대화를 피했던 아내에게도 책임이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갈등을 솔직한 대화로 풀 생각 없이 동을 돌린 두 남녀의 모습은 너무나 미숙하게 보였다. 

 이 소설에 뒷장에 '진정한 남녀 관계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이란 문구가 있는데 처음엔 이게 뭔 소리인가 했다. 이건 그냥 엽기적인 이야기 아닌가? 하지만 결말에 이르니 적절한 문구라는 생각이 든다. 섹스나 샤토 루즈는 단지 평행선을 달리는 부부의 모습을 드러내는 하나의 소재였을 뿐, 관계 개선이나 관계를 끝내는 것 모두 샤토 루즈라는 타인의 손을 빌려 해결하려는 남편과 아내의 모습은 반면교사로 삼기에 딱이었다. 이런 식으로 살지 말아야지. 꼭 부부 관계가 아니라 가족이나 친구, 직장에서도 솔직한 심정을 어필하며 깨지든 바라지 않는 사태로 번지든 할 수 있는 한 내 힘으로 해결하려고 해야지. 그래야 최소한 주인공처럼 어처구니없는 자기 연민에 빠진 채 후회할 일은 생기지 않을 것 같다. 


 그래도 주인공이 아내가 편지에서나마 바랐듯 자신의 결점을 깨닫고 자신이 바라는 괜찮은 여자와 재혼해 잘 살았으면 좋겠다. 샤토 루즈로 간 아내, 아니 쓰키코도 - 내 기억이 맞다면 아내의 이름은 나왔지만 주인공의 이름은 드러난 적이 없다. 주인공의 모습이 곧 세상 대부분의 남성을 대변하기도 한다는 작가의 가치관이 반영된 연출인 걸까? - 자신이 택한 길인 만큼 자신이 바랐던 것처럼 주체적인 성생활을 그 안에서 잘 이뤄가길 바란다. 아주 열린 결말이다 보니 가능성이 적더라도 그들에게 행복한 삶을 염원해주게 된다. 열린 결말을 접하면 대체로 좋은 쪽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아니면 작가가 평범한 결말을 거부하며 파격적인 연출로 끝을 내서 나라도 무난하더라도 행복한 결말을 상상하는 것인지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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