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빨개지는 아이
장 자끄 상뻬 글 그림, 김호영 옮김 / 열린책들 / 1999년 5월
평점 :
절판


9.7 





 아무 이유 없이 얼굴이 빨개지는 아이와 아무 이유 없이 재채기를 하는 아이의 우정 이야기. 서로의 결점은 둘을 외톨이로 만들기도, 그래서 서로를 각별한 친구 사이로 만들기도, 긴 시간이 흘러 성인으로 자란 뒤에도 서로를 한눈에 알아보게 만들기도 한다. 남과 다른 자신의 개성을 결점으로 여기다가 운명적인 만남을 통해 자신의 결점을 사랑하는 이야기는 흔하지만 훗날 두 사람이 서로를 알아보는 대목에선 감탄했다. 작가의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을 엿볼 수 있었다. 

 어렸을 적 사귀었던 친구와 다시 만나도 바로 알아보는 경우는 흔치 않다. 생김새도 많이 바뀌었고 성격이나 가치관도 예전 그대로일 확률이 그리 높지 않기 때문이다. 바뀌면 바뀐 모습대로 나름대로 재밌지만 못 알아볼 정도로 바뀌면 속으로 실망해버리곤 한다. 물론 평생에 걸쳐 전혀 바뀌지 않는 사람도 어떤 의미에선 무서운 사람이지만...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이 작품에선 그렇게 심각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뜻밖의 이별로 서로를 그리워한 두 친구가 성인이 되어 한눈에 알아본 뒤 예전처럼 허물없는 친구가 되는 이야기에 작가는 과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다만 그런 생각은 든다. 내겐 저렇게 알아보는 것만으로 반색할 만한 친구가 있을까? 


 시게마츠 기요시의 <친구가 되기 5분 전>이란 작품에선 '평생에 기억될 친구는 단 한 명이라도 충분하다'는 말이 나온다. 그 말에 해당하는 사람이 <얼굴 빨개지는 아이>에 등장인물들일 텐데, 나는 어떨까? 지금 친구들이라면 모르겠지만 어렸을 적 친구라면 대답하기 조금 애매하다. 어렸을 적 친구란 그런 존재인 것 같다. 그립긴커녕 사실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설령 알아봐도 어색할 뿐일 터다. 오히려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생각해보면 친구'였'다면 그렇게 거북할 리 없겠지만 만약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난다고 한들 엄청 반갑진 않을 듯하다. 확실히 이런 걸 보면 내가 다소 삭막한 인생을 살아온 감이 없진 않은 것 같다. 뭐, 지금이라면 경우는 다르지만 예전엔 친구 소중한 줄 잘 모르고 지냈던 것 같달까? 

 가볍고 따뜻한 작품을 읽었는데 나는 왜 자꾸 무거운 이야길 꺼내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작중 인물들이 부러워서 주저리주저리 얘기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내게도 그립고 헤어짐이 아쉬웠던 친구가 있었더라면... 그리움을 갖고 있는 것이 꼭 좋은 일은 아니지만 반대로 그런 감성을 느낄 여력이 없는 삶도 꼭 좋게 느껴지지 않았다. 별 이상한 걸 다 부러워한다는 생각도 들지만, 작품 이야기가 워낙 따뜻하고 흐뭇한 나머지 내가 느끼는 부러움의 이유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하고 추측해봤던 것 같다. 어쨌든, 나로 하여금 부러움을 느끼게 하다니, 짧지만 강렬해서 괜히 작가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것이 아니구나 싶었다. 작가의 다른 작품도 읽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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