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여자
기욤 뮈소 지음, 전미연 옮김 / 밝은세상 / 201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8.7 





  <종이 여자>는 백지 공포증에 빠진 작가인 주인공이 자신의 이야기 속 등장인물의 도움으로 다시 글을 쓰게 된다는 이야기를 기욤 뮈소가 로맨스 작가다운 상상력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최근 어둡고 심각하고 속에 안 좋은 이야길 내리 접했더니 급격하게 밝고 가볍고 통통 튀는 소설이 땡겨 다시 읽었다. 기욤 뮈소의 책은 그 바람에 더없이 적합했는데, 이 책을 처음 읽은지 자그마치 10년이 훌쩍 지났기 때문일까, 그야말로 고등학생 시절에 읽기 딱 좋을 정도로 가볍디 가벼운 소설이란 생각이 읽는 내내 들었다. 상처와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전개를 띈 이야기의 무게감이나 책 속의 등장인물이 현실 세계로 튀어나왔다는 설정 등 흥미로운 요소들이 한가득이었지만 그놈의 미칠 듯한 가벼운 문체와 사유로 인해 좋은 요소들이 100% 발휘되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아쉬운 소설은 흔히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뉘는 것 같다. 문체가 좋지만 설정이 별로인 경우와 설정은 기발한데 문체가 구린 경우다. 기욤 뮈소의 작품은 전적으로 후자에 속하며 더 큰 문제는 이 작가의 책이 대부분 설정이 다 다름에도 항상 비슷한 느낌으로 읽힌다는 것이다. 팬들에게 물어보면 이 작가의 책 중 가장 재밌게 읽은 책은 '가장 처음에 접한 책'이라고 하며 나 역시 처음에 접한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가 제일 재밌었다. 작품을 접하면 접할수록 식상함이 느껴진다니 참... 최근에 이 작가 책을 전혀 안 읽어서 잘 모르겠지만 이래저래 내공이 애매한 것에 비해 독자들의 사랑은 듬뿍 받는 복에 겨운 작가구나 싶었다. 


 물론 식상하고 가볍고 한없이 대중적인 작품을 쓰지만 그래도 장점이 많은 작가다. 다음을 궁금하게 만들고 순간순간 긴장을 유발하는 이야길 짤 줄 알며 캐릭터들이 확실히 개성적이면서 제법 인상적인 반전도 있어 그의 작품은 대체로 결말이 쉽게 잊히질 않는다. <종이 여자>의 경우 주인공이 작가인 것치고 내면 세계나 사용하는 어휘가 평범하기 그지없었지만 주변 인물들의 매력과 활약이 차고 넘쳐 그들에게 휘둘리면서 재밌는 그림이 많이 그려졌던 게 흥미로웠다. 빌리는 말할 것도 없고 주인공의 친구 밀로와 캐롤의 활약도 만만치 않았다. 오로르는... 주인공과 그녀 사이의 에피소드가 다소 오글거려 내 개인적으로 작가의 밑천이 가장 크게 느껴지는 부분으로 느껴졌다. 그래도 작가가 판단력은 있어서 그다지 흥미롭다고 여겨지지 않는 오로르와의 만남을 재빨리 다루고 끝내서 이후의 에피소드에 바로 몰입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소설의 반전이나 결말은 다 좋았다. 주인공이 처음에 경악하며 '속았다'고 화를 내는 것이나 운명의 상대 앞에서 망설이는 이유도 모두 개연성 있는 태도라 좋았고, 그럼에도 운명이 엇갈리지 않고 결실을 맺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로맨스 소설이 새드엔딩이면 유독 심적 타격이 큰데 내가 아는 한 기욤 뮈소는 그 정도로 잔인한 심보를 가진 작가는 아니다. 아무튼 뻔하긴 해도 해피엔딩으로 이끈 결말은 다시 읽어도 좋았다. 그리고 만약 이 작품에 반전이 없었다면 결말도 그저 그런 인상을 남겼을 텐데, 반전을 더욱 충격적으로 만들 복선이 약간 부족했던 것은 아쉬웠지만 반전의 내용과 그 안에 담긴 진정성만으로 이 소설은 그래도 작가의 작품 중 꽤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고 본다. 


 위에서 작가를 두고 내공이 어쩌니 하며 실컷 씹었지만, 그래도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그 후에>와 더불어 <종이 여자>는 제법 수작 반열에 드는 대중 소설이라 생각한다. 어린 독자들이 특히 열광할 만한 가벼운 무게감은 지금 내 나이엔 유독 거슬리긴 했지만 그래도 약 10년 전에 이 소설을 재밌게 읽었던 시절의 내 모습이 떠올라 오랜만에 추억 여행도 해 나름대로 즐겁게 읽어내려간 작품이다. 작가의 다른 작품과 더불어 <당신~>과 <그 후에>도 다시 읽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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