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발설 - 성매매 경험 당사자
성매매경험당사자네트워크 뭉치 지음 / 봄알람 / 2021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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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20년 동안 성매매 여성이었던 저자가 자신의 경험을 풀어낸 <길 하나 건너면 벼랑 끝>에 이어서 이 책도 읽었다. 성매매 경험 당사자 네트워크 뭉치는 <성매매, 상식의 블랙홀>을 읽을 때부터 들어왔던 이름이라 그 단체에 소속된 여성들이 직접 풀어낸 책도 읽어보고 싶었다. '무한발설'이란 제목에 걸맞는 내용으로, 익명의 저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쏟아내는데 책의 디자인 덕분인지 지저분한 내용과 다르게 읽히기는 굉장히 감각적으로 읽혔다. <길 하나 건너면 벼랑 끝>이 산문이면 이 책은 운문에 가까웠다. 어딘지 리듬감이 있었고 그렇기에 보다 성매매 경험 당사자들의 경험담이 매우 파괴력 있게 다가왔던 것 같다. 

 나는 성구매를 해본 적도 없고 앞으로도 할 생각이 없었는데, 이 책에서 거론된 온갖 엽색 행각을 보노라면 앞의 내 생각에 '반드시' 라는 말을 붙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자 질에 뭘 넣고 행위를 한 다음에도 불만족스러웠다고 값을 치르려 하지 않는다거나 신고한다거나 진상질은 있는 대로 하고... 뭔가 많이 읽은 기억이 나는데 하도 충격적이라 일부러 잊은 것도 있다. 어떤 부분에선 성애 소설 <O 이야기>를 능가하기도 하니 진짜 말 다했다. 역시 픽션이 아무리 날고 기어도 현실의 발끝에도 못 미치는 것 같다. 그런데 왜 이런 말은 나쁜 일에만 하게 되는 건지... 


 특히 섬에 데려가서 성매매를 시키는 건 기함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런 일을 겪고도 살아남은 분들이 존경스러웠고 그런 일이 꽤나 비일비재한 것과 성구매자나 포주 등 가해자들이 처벌받지 않았음이 자명한 것도 한탄스런 일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살려둔 게 이상할 정도로 정신이 이상한 작자가 한둘 언급되는 것이 아닌 터라 그자들의 악행이 법적으로 정녕 제지가 안 되는 것인지 읽는 내내 답답해서 체할 지경이었다. 당사자분들이 겪은 고통에 비할 바는 당연히 안 되겠지만 짧은 책임에도 후유증은 상당히 컸다. 

 성매매 시장이 망하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성매매 경험 당사자 네트워크가 외치는 것만으론 계란으로 바위 치기 격일 수 있다.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자는 말로도 역부족인 듯하다. <성매매, 상식의 블랙홀>엔 이런 말이 나온다. '남자는 짐승이고 성욕은 본능이니 성매매를 못 하게 하면 성범죄자가 된다는 말에 진정 분노하고 저항해야 하는 것은 누구인가.' 내가 봤을 때 이 말에 깊이 동의하는 남성들이 들고 일어나야 한다고 본다. '남자는 다 성구매자고 변태'라 싸잡는 일반화에 저항하는 사람도 동참해야 비로소 성매매 시장에 타격이 있을 듯하다. 당장 나부터 구체적인 실천을 하지 않는 상황에서 누굴 계몽시키고자 설치는 것이 어불성설이니 일단 나부터 뭔가를 해야겠다. 그 뭔가가 무엇인지는 아직 갈피도 잡히지 않지만, 성매매 경험 여성들의 이야길 몇 주 동안 듣다 보니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남의 일이라 치부하고 무시하기엔 그들은 나와 똑같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똑같이 아파하고 슬퍼할 줄 아는 사람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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