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미식가 - 솔로 미식가의 도쿄 맛집 산책, 증보판 고독한 미식가 1
구스미 마사유키 원작, 다니구치 지로 지음, 박정임 옮김 / 이숲 / 2010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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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초창기에 발매된 버전이 아닌 증보판을 드디어 읽게 됐다. 병원 밥마저 맛있게 먹는 고로의 에피소드와 저자들의 대담이 추가된 증보판은 비록 기존 발매 버전과의 차이가 적긴 하나 팬으로서 그 차이마저 놓칠 수 없었다. 

 드라마는 배우의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시즌을 이어나갈 것 같지만 원작 만화는 더 이상 내용이 이어질 수 없다. 그림을 담당한 다니구치 지로가 몇 년 전에 별세했기 때문이다. 이 증보판에 새로 실린 대담에서 다니구치 지로의 생전 모습을 짧게나마 볼 수 있어 그 점이 무엇보다 좋았다. 아직 살아계셨다면 3권도 읽을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한편으로 드라마와 달리 만화는 2권에서 딱 멈춘 게 오히려 좋다는 생각도 들었다. 2권은 드라마 속 고로의 모습을 너무 의식해 기존의 고독한 모습보다 조금 해맑은 모습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1권에서의 냉소적이고 보수적인 모습이 나름대로 매력적인 요소였는데 그 미묘하고도 중요한 지점이 흔들린 것 같아서 차라리 2권에서 멈춘 게 다행이지 않은가 싶었다. 물론 그 이유가 그림 작가가 별세했기 때문이란 건 실로 애석한 일이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만약 1권에서와 같은 분위기라면 3권에선 그림이 달라져도 볼 의향이 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그건 드라마나 영화에서 배우가 바뀌는 것관 차원이 다른 일이다. 만화 <고독한 미식가>는 다니구치 지로의 그림이어야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정말로 본의 아니긴 해도 이 시리즈가 박수칠 때 우리 곁을 떠난 게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만화는 드라마보다 훨씬 다채로운 식당 방문기가 담겨 있다. 드라마보다 메뉴가 다채롭진 않지만 식당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일들, 가령 드라마에선 사실상 한 번밖에 다루지 않았던 실패담마저 만화에선 심심찮게 그린 편이다. 화려하지 않고 맛도 그냥저냥이지만 분위기나 가게 점원이 친절해서 기분 좋게 가게 문을 나서는 경우도 있잖은가? 반대로 음식 맛은 출중해도 사장이 밥맛이라 한바탕 싸우는 경우도 우리네 삶에서 적지만 분명 존재한다. 만화는 식당에서 겪을 수 있는 희로애락 거의 대부분을 그려냈고 간단히 길에서 먹는 간식을 비롯해 먹방물에서 다루지 않을 법한 야구장 식당이나 편의점, 심지어 맛이 없다는 병원에서 먹는 밥까지도 소재로 다룬다. 꼭 잘 차려진 음식이 아닌 단순히 뭔가를 먹는다는 행위 자체를 이렇게 사소한 순간 하나까지 진지하게 그린 작품이 또 있을까 싶어 황당하면서 정감이 간다. 

 그래서 진짜 별 내용이 없긴 하고 실제로 읽을 때도 가벼운 기분으로 읽지만 고로가 식당에서 메뉴 고민을 하거나 메뉴 선정 실패로 혀를 차는 모습이 공감이 가 기분 좋게 책장을 넘기게 된다. 뭐 이런 일상적인 내용을 만화로 다 그렸을까 하면서 도리어 그런 꾸밈없음과 과하지 않음에 매료된다. 작가가 생각하는 좋은 식당의 요소를 이 작품이 똑같이 갖고 있다.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는데 이른바 틈새시장을 잘 공략한 작품이라며 감탄스럽기도 했다. 이런 감성의 이야길 만화로 그려내겠다는 생각이 어떤 의미에선 혁명이니까. 


 아, 참고로 책 뒤에 실린 후기도 은근히 재밌다. 드라마에서 본 작가는 완전히 외향적인 사람이었는데 글로 접한 작가는 생각보다 쭈뼛거리며 어딘지 답답한 구석도 있어 과연 동일인물인가 하고 어색하게 느껴졌다. 만화도 그리고 글도 쓰고 연주도 하고 간간히 연기도 하는 등 - <도쿄타워>를 쓴 릴리 프랭키가 연상된다. - 다재다능한 양반이 처음 간 지방의 미스터리한 분위기의 식당이나 직원들에게 묘하게 쩔쩔매는 이야기가 왜 그렇게 웃기고 공감이 가는지 모르겠다. 

 최근 드라마도 별로 덜 고독해지는 마당에 사실상 진짜 '고독한' 미식가는 1권의 고로가 마지막이란 생각이 드는데 그런 점에서 이 1권은 더욱 귀중하다. 먹방이 주는 특유의 먹음직스러운 묘사는 당연히 드라마에 비해 떨어지지만 나름대로의 사유와 분위기가 압도하는 지라 드라마 못지않게 주기적으로 챙겨볼 듯하다. 그리고 다니구치 지로와 더불어 쿠스미 마사유키의 다른 작품도 찾아 읽어야겠다. 특히 쿠스미 마사유키의 경우 다른 작품을 접한 적이 없어 더욱 궁금하다. 

먹는 사람이 편안하고 안락하게 음식을 즐길 수 없다면, 최고의 요리라 한들 무슨 소용이오? 방해받지 않고, 혼자 조용히 식사할 수 없다면. - 1권 12화



음식을 먹을 때, 고독하게 혼자 무언가를 먹을 때, 나는 이노가시라 고로가 자유로웠다고 믿는다. 그는 그 순간 자유로웠다. 마음대로 행동하고, 시간이나 사회 규범에 얽매이지 않고 행복하게 허기를 채움으로써, 현대의 원시인으로 변하여 왜곡되었던 자신을 치유한 것은 아닐까. - 1권 작가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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