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 없는 동물원 - 수의사가 꿈꾸는 모두를 위한 공간
김정호 지음, 안지예 그림 / Mid(엠아이디) / 2021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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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몇 년 전에 어린이대공원에 간 적이 있었다. 난 어렸을 때 그 공원에 간 기억이 없어서 그 안에 동물원이 있는 줄도 몰랐고 설마 코끼리까지 볼 수 있을 줄은 몰랐다. 동물원 특유의 동물 냄새와 미묘한 배설물의 냄새를 맡으면서 멀리 있는 코끼리를 바라보며 쟤네는 이곳이 얼마나 답답할까 싶어 괜히 왔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내 입장에서야 괜히 왔을 뿐이지만 평생 여기서 지냈고 자기 마음대로 나갈 수도 없는 동물들 입장에선 이 동물원이란 공간이 대체 어떤 곳일까 생각해볼 법도 했지만, 그땐 그저 거부감만 들었다. 

 <코끼리 없는 동물원>은 동물원을 배경으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 <동물, 원>에 등장했었다는 청주 동물원의 수의사인 저자의 에세이집이다. 덤덤하고 따뜻한 문체로 동물과 시선을 맞추며 어떻게든 동물원을 동물들의 본성에 맞게끔 최대한 살기 좋게 만들고자 하는 이야기들이 다양하게 수록됐다.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동물들과 이름도 처음 듣는 동물들이 많아서 순서대로 소개되는 그들의 이야기, 동물의 본성에 대한 수의사의 전문적인 시선과 그 동물의 본성에 따라 바뀌는 동물원의 시스템도 대단히 흥미롭게 읽혔다. 아쉽게도 저자가 필력이 좋은 편이긴 하나 전문 작가까지는 아니라서 반복되는 글의 전개에 뒤로 갈수록 지루해지긴 했는데 이분의 인격이나 철학이 느껴져 뒷장을 저항감 없이 넘길 수 있었다. 이분이 출연하신다는 영화도 나중에 볼 생각이다. 영화라면 조금 더 흡입력 있게 동물 이야기가 다뤄졌을 테지. 


 2020년 초에 코로나에 대응하고자 유럽에서 시행된 극단적인 봉쇄 조치로 인해 독일의 동물원에서 동물들이, 주로 인기 없는 동물들부터 순서대로 안락사한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난다. 재정적인 이유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한 일이라지만, 관람객을 위해 경쟁력 있는 동물들을 모아 애지중지 키웠을 동물들을 너무 개죽음으로 내모는 게 아닌가 싶어 그 기사를 접하고서 인간의 이기심에 분노했던 기억이 난다. 반면 <코끼리 없는 동물원>에선 - 여담이지만 위의 동물원 논리대로라면 코끼리야말로 어느 순서에 안락사를 당할까? 돈이 많이 드니까 의외로 금방 순서가 올 것 같다는 끔찍한 생각이 들었다. - 공간의 특성상 한도 끝도 없이 동물만을 위한 공간이 될 수 없지만, 절충과 합의를 거쳐 동물들로 하여금 심신이 괜찮은 공간으로 여겨지게끔 노력하는 저자의 이야기 내지는 철학을 접할 수 있어 진정 동물을 위한 공간이란 무엇인가 자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린이대공원에 가기 이전부터 개인적으로 동물원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없앨 수 있으면 다 없애버려야 하는 곳으로 여겨왔다. 물론 동물을 연구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필요한 공간일 순 있겠지만, 이 책의 저자도 얘기했듯 동물원이란 기본적으로 인간의 욕심을 우선한 공간이기 때문에 그에 맞춰서 삶 전체가 희생당해야 하는 동물들 입장에선 감옥 그 이상의 공간이다. 감옥은 지은 죄가 있으니 못 나오는 거지만 동물들이 무슨 죄를 지어서 동물원 우리 안에 갇혀 있는 건 아니잖은가. 그런 의미에서 감옥과는 성질이 완전히 다르다. 


 하지만 모든 변화에는 그에 적절한 속도가 있으며, 또 동물원에서 태어나 야생이 뭔지 모르고 건강의 문제로 동물원에 있을 수밖에 없는 동물들을 생각해서라도 동물원은 여러모로 당장 없애기엔 시기상조란 것을 내가 이 책을 읽으며 새롭게 깨닫게 된 사실이다. 결국 동물원에서 그 누구보다 동물을 우선하며 동물의 삶의 개선에 가장 관심이 있고 심혈을 기울이는 사람들은 바로 동물원의 직원들이라는 것을 책을 읽으며 새로이 알게 됐다. 생각해보면 참 이상한 일이다. 동물원 직원들이 무슨 악의 축이라 다 같이 합심해서 동물원 우리를 지은 것도 아닐 텐데 우린 왜 그토록 싸잡아 동물원을 안 좋게 봤는지 모르겠다. 

 따라서 동물원 직원들의 태만을 의심하되 그들의 열정과 철학을 지지해야겠다며 책을 읽기 전엔 상상도 하지 못했던 감상이 도출됐다. 난 아마도 어지간하면 동물원에 제 발로 갈 일이 앞으로도 없을 테지만 그전까진 무조건 불편하고 빨리 나가고 싶은 공간에 불과했다면 이제는 그 공간을 최대한 동물에게 편한 공간으로 꾸미고자 하는 직원들의 노력을 떠올리고 발견하려고 노력할 테니 그 공간이 마냥 불편하게 느껴지진 않을 것 같다. 다시 말하지만 제 발로 갈 일은 없을 것 같으나 최소한 동물원을 경시하고 봐선 안될 일임을 염두에 둬야겠다고 읊조리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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