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용돌이 합본판
이토 준지 지음 / 시공사(만화) / 201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9.2 






 이토 준지의 장편은 처음 접해봤다. 단편은 기괴한 게 다였는데 장편으로 접하니 아이디어도 기발하고 결말은 여운이 있어서 왜 사람들이 이토 준지에 열광하고 <소용돌이>를 대표작으로 꼽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 작품이 제일 재밌으면 곤란한데 아무튼 다른 작품도 읽어보고 싶다. 당장은 <인간 실격>이 제일 끌린다. 다자이 오사무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라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소용돌이를 컨셉으로 한 다양한 저주와 각각의 저주들의 끔찍하고 엽기적인 모습을 충분히 재현해낸 그림체가 가히 독보적인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달팽이 인간과 산부인과에서의 에피소드가 전부 인상적이었는데 뻔히 예상이 가는 전개임에도 - 결말은 제외 - 또 모든 장면이 역겨움에도 불구하고 신기하게 중독적인 구석도 있었다. 난 호러라고 하면 무논리적인 데다가 자극에만 충실한 성향 때문에 폄하했는데, 이 작품이라고 내 편견을 깨뜨리지 않았지만 그 대신 내 편견을 과하게 자극하지 않아 덤덤하게 읽혔다. 이른바 무리수가 없는 공포랄까. 작가가 시각적인 잔인함으로만 점철된 공포가 아닌 분위기, 인간성의 타락 등 깊이가 있는 공포도 그려냈기에 마냥 불쾌하게 다가오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결국 소용돌이의 저주의 정체는 완벽히 밝혀지지 않았고 또 완전히 묻지마 범죄 수준의 재앙들도 답답하기 그지없었지만 광기와 이성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인물들의 모습이 볼 만해 그 리액션만으로도 충분히 읽는 맛이 있던 작품이었다. 소용돌이처럼 돌아버릴 것 같은 상황이 끊임 없이 휘몰아침에도 제정신을 유지하는 주인공 - 표지의 여자 - 의 멘탈은 실로 불가사의할 정도였는데 거의 코난과 김전일에 견줄 만해 이 캐릭터만은 끝내 생존할 수 있으리라고 막연하게 믿으며 읽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건 근거 없는 희망사항에 불과했다. 

 반전이란 주인공의 기대가 완전히 무너지는 순간을 가리킨다고 하던가. 이 작품의 경우엔 주인공이 아닌 독자인 나의 기대가 무너진다는 점에서 반전이 성립할 듯하다. 이런 결말은 여운이 있으면서 한편으론 안타까웠는데, 이 결말을 피할 기회가 작중 초반부엔 분명 있었기에 모든 기회를 놓친 주인공이 답답했다. 한편으론 이토 준지는 공포란 극복이 불가능한 재앙으로 여긴 듯한데 이토록 긴 시간 동안 생존한 주인공과 일행에게 똑같은 논리를 적용시키는 게 참 비정하면서도 공평하단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이 살아남으면 호러가 아니다. 생각해보니 작가의 다른 단편 대부분도 주인공은 생존과 거리가 멀었던 것 같다. 


 이 작품은 애니메이션과 실사 영화로도 2차 창작됐다는데 그 작품들은 필요 이상으로 자극에 충실할 듯해 보지 않을 생각이다. 만화만의 적절한 공포만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최대한의 공포일 듯하다. 처음에 말했듯 작가의 다른 작품들, 가급적 장편 위주로 읽어볼 생각이다. <인간 실격>, <토미에> 같은 작품들. 또 어떤 기괴함을 안겨줄지 상당히 기대된다. 일단은 <인간 실격>부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