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원의 캔버스
하라다 마하 지음, 권영주 옮김 / 검은숲 / 2015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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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직전에 <널 위한 문화예술>을 읽고 떠올라서 다시 읽게 된 작품이다. 다시 읽으니 이전과 달리 의외로 루소의 이야기가 평면적으로 느껴졌고 그 루소의 이야기를 읽는 팀과 오리에의 이야기에 더 애착이 갔다. 3년 전과 달리 지금은 미술에 관심이 지대해졌는데, 그런 나에게 이 작품에서의 루소 이야기는 퍽 기대에 못 미쳤다. 내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뿐만 아니라 이 작품은 루소에 얽힌 사소한 미스터리를 파고드는 아트 미스터리를 표방함에도 흐지부지한 결말 탓에 추리소설다운 쾌감 역시 거의 느끼지 못했다. 그럼 루소를 향한 작가의 애정과 미술사과를 졸업하고 다수의 미술관에서 근무했던 작가의 전공이 유감없이 발휘돼 아쉬움이 무마됐느냐면, 그것도 그저 그랬다. 

 각각의 사명감을 안고서 반드시 루소의 미발표 작품 <꿈을 꾸었다>를 차지해야 하는 두 명의 루소 전문가 팀과 오리에는 <꿈을 꾸었다>가 과연 진작인지 위작인지를 놓고 대결을 펼치게 된다. 특이하게도 진작인가 위작인가를 판단하는 기준은 오직 그 그림을 가진 대부호가 제시하는 이야기, 루소가 주인공인 일곱 편의 이야기의 내용이라는데 팀과 오리에는 당황하면서도 자신들이 가장 흠모하는 '친구'인 루소의 이야기에 빠져든다. 이미 루소가 얼마나 비참한 삶을 살았고 그 결말을 앎에도 둘은 동요를 감추지 못하고 결말에 이르러선 여러 복잡한 상황이 맞물린 탓에 누군가 승부의 향방을 흐리는 돌발 행동을 하게 되는데... 


 늦은 나이에 그림을 그린 탓에 기본기가 부족해 흔히 '그림 못 그리는 화가'라고, 또 세관원이기에 일요일에만 그림을 그려서 '일요화가'라는 멸칭으로 불린 루소는 작품의 주요 시간대인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거의 사후 70년이 넘도록 인정을 받지 못했던 비운의 화가였다. 어떻게 보면 사후에 비교적 금세 유명세를 얻은 고흐보다 비참하다고 볼 수 있는데 그놈의 기본기 부족을 트집 잡는 평단과 동료 화가들 때문에 강렬한 개성이 쉽게 인정받지 못했다. 지금이야 뉴욕의 모마MoMA에서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와 함께 전시관 4층의 입구에 걸려있는 <꿈>을 그린 화가라며 꽤 인정을 받는 편이지만 불과 40년 전만 해도 세간의 평은 지금만 못했던 모양이다. 

 <낙원의 캔버스>는 루소의 작품이 어떻게 빛을 보게 됐는가에 관한 이야기가 아닌 가상의 그림 <꿈을 꾸었다>로 하여금 루소의 삶을 살펴보는 이야기라 본질적으로 팬픽에 불과하다고도 할 수 있는 작품이다. 말인즉슨 미술사적 지식이나 사실보다 루소에 대한 작가의 애정, 일종의 헌사에 초점이 맞춰져서 추리소설뿐 아니라 역사 소설적인 매력도 느끼기 힘들다. 작품 서두의 흡입력과 실제로 루소라는 화가가 뿜어내는 존재감을 떠올리면 전반적으로 중후반부는 기대에 보답하지 못했는데, 특히 루소의 이야기는 아무래도 상관없을 정도로 어쩐지 이야기의 흐름에 별 영향력을 주지 못하고 있고 실제로도 정말 그렇게 됐기에 허무하기까지 했던 기억이 난다. 


 작가는 실존했던 화가인 루소와 피카소, 그리고 유명한 미술관들을 대거 등장시키는 만큼 나름대로 실제 역사를 과감히 등지는 시도를 하지 않은 듯한데, 오히려 작가가 미술 업계에 실제로 종사했었기에 집필이 소극적으로 이뤄진 것 같아 아쉽기 그지없다. 중반부부턴 여러 변수가 등장해 팀과 오리에가 <꿈을 꾸었다>의 미스터리를 풀어야 하는 동기가 변질된 것, 오리에가 조연으로 밀리면서 프롤로그에서의 존재감이 거의 사라진 것 등도 아쉬운 부분이었다. 주인공은 둘인데 왜 팀의 시선에서만 전개를 풀어나간 걸까? 프롤로그에서 들여다봤던 오리에의 내면이 무척 인상적이어서 정작 소설 본편에서 별 활약다운 활약이나 존재감을 내비치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렸다. 게다가 이렇게 홀대하기엔 너무 아까운 캐릭터임을 에필로그에서 제대로 확신할 수 있었다. 물론 팀도 좋은 캐릭터지만 이렇게 일방적으로 분량을 할애하기엔 오리에가 안쓰러웠다. 안 그래도 경력이 단절된 것도 서러운데... 

 내가 루소의 열렬한 팬이 아니라 그랬던 걸까? 루소의 이야기도 지루한 편이었는데 특히 루소가 이 작품에선 기구한 운명의 화가라는 것말곤 특별히 인상적인 내면이나 행동을 보이지 못하고 그저 예정된 수순대로 비참한 말년을 보내다 퇴장해버려서 팀과 오리에가 이 이야기를 읽고 동요를 보이는 것에 크게 공감이 가지 않았다. 단, 세간에 알려진 것과 다른 이러이러한 뒷이야기가 있으면 좋겠다는 작가의 바람이 담긴 듯한 후반부의 전개는 미술에 관심이 좀 있는 사람으로서 눈길이 갔는데, 어디까지나 작가의 상상에 지나지 않음에도 어딘지 내 마음까지 따뜻해졌다.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뒷이야기는 황당무계함과 별개로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법이지만 이 작품의 경우엔 현실과 픽션 사이를 교묘히 파고들어 은근히 그럴싸한 리얼리티를 제공했다. 그리고 아마 실제로도 이런 식의 뒷이야기가 있겠다는 생각도 들어 그런대로 독특한 여운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작가의 책 중에 <암막의 게르니카>라고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소재로 한 소설이 나왔다는데, 이 책이 아트 미스터리나 역사 소설적인 요소에 있어서는 미묘하고 실망스런 완성도를 보인 탓에 그 작품도 특별히 기대되지 않는다. 하지만 피카소라고 하니 읽지 않을 수가 없는데... 기대하지 않고 읽었다가 오히려 감동하게 된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다. 

모든 걸작은 상당한 추악함을 지니고 태어나는 법이다.

이 추악함은 창조자가 새로운 것을 새로운 방법으로 표현하기 위해 싸웠다는 증표다.

미를 거부하는 추악함이야말로 새로운 예술에게 허락된 ‘새로운 미‘다. - 18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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