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우니까 괜찮아 이타카
김이환 지음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1년 4월
평점 :
품절


9.1 






 서울에서 귀여운 걸 다섯 가지를 찾아오라고 천사에게 명령하는 조물주, 만약 다섯 가지가 없으면 어떡하느냐는 천사의 질문에 조물주는 그럼 서울은 가치가 없는 곳이라고 딱 잘라 말한다. 설마 서울도 없애버리는 걸까 반신반의하는 천사는 어찌 됐든 간에 명령을 수행하러 떠난다. 때는 2010년대의 서울로 귀여움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던 서울이었다. 물론 지금 서울이라고 그때보다 귀여운 것이 많다는 건 아니지만... 

 어딘지 나사 빠진 제목과 설정을 내세운 것과 달리 그 당시 정권에 대한 비판의식이 그득한 작품임에도 여러모로 판타지한 색채 덕에 무겁게 읽히지 않는다. 대놓고 작위적이면서 일도 수월하게 풀리는 작가와 만화가 콤비라든가 코미디 전문 방송국이라든가 조류가 인간을 지배하는 세상을 꿈꾸는 비둘기라든가 슈퍼맨 활동을 비밀리에 하고 있는 슈퍼맨 협회라든가 엄연히 무생물임에도 의지를 갖고 지구 절반 가까이를 헤엄쳤던 오리 인형 등 환상적이고 귀여운 존재들이 끊임없이 등장해 일단 지루하지 않았다. 썰렁한 개그나 언뜻 의미가 와 닿지 않는 난잡한 전개나 은유가 발목을 붙잡았지만 전반적으로 가독성과 결말이 좋은 작품이었다. 가독성은 워낙에 장면 전환을 많이 해서 무난하게 확보했고 결말의 경우엔 뻔하지만 연출이 좋아 마음이 갔다. 


 이 작품을 다시 읽으니 오리 인형 에피소드가 특히 마음에 들었는데, 마치 동화처럼 몇 년 간 바다를 떠돌아다닌 오리 인형의 여정이 실로 파란만장해 작품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대관절 이 오리 인형의 에피소드가 이야기 속에서 무슨 역할을 하는지도 모르겠으나 홍콩으로 가던 배가 침몰해 다 같이 바다를 조류하게 된 오리 인형들이 바다가 이끄는 대로 흘러가다 다시 영국에 도착했더라는 얘기는 신비롭고 감동적이고 귀여웠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오리 인형 이야기는 실화라던데, 정확히 무슨 연유인지 드러나지 않지만 작가는 이 오리 인형에게 서울이 조물주로부터 목숨을 부지하게 되는 결정적 역할을 부여했다. 

 작가의 의도를 미뤄 짐작해봤을 때 한낱 귀여운 오리 인형에도 불구하고 바다에 가라앉지 않고 고향(?)을 찾아간 불굴의 의지와 놀라운 운명이 신을 감탄케 했다는 맥락에서 그러한 결말을 택하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난 오리 인형을 귀여워 하는 작가의 시선이야말로 귀엽게 느껴졌는데, 어쩌면 조물주도 서울에 다시 기회를 준 이유가 이와 비슷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까놓고 말해 오리 인형이 무슨 일을 겪었든 그건 그냥 오리 인형이 파란만장하게 바다를 떠돈 일에 불과한데, 그 일화에 의미를 부여하고 상상을 불어넣는 인간의 모습은 모든 것을 알고 세상을 관장하는 조물주의 입장에서 퍽 귀여워 보였을 것도 같다. 


 최근에 읽은 <사신 치바>라는 소설에서 사신인 치바는 인간은 모든 일에 자기 인생을 대입하며 저 혼자 깨달음을 얻고 침울해 한다는 식의 문장이 나왔었는데, 객관적으로 자신과 무관한 일이더라도 그 안에 의미를 찾아보려 하고 이야기하려 한다는 건 인간 외의 존재가 봤을 때 정말 이상하고 독특한 인간만의 특성인 듯했다. 물론 그렇게 부여하거나 발견해낸 의미, 깨달음은 즉흥적이었던 만큼 금방 잊혀지지만 우리가 그런 과정을 반복하면서 조금씩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마음을 되새긴다는 게 한편으론 몹시 바람직한 일이지 않은가 싶었다. 

 그런 인간의 특성은 조물주로 하여금 그래도 기특하고 발전의 여지가 있는 것으로 여겨졌는지 기회를 준 것인지 모른다. 설마 작가가 이런 마인드로 결말을 짜진 않았겠으나, '귀여운 것이 세상을 구한다!'는 책의 소개 문구를 직역해보면 세상만사에 의미를 발견해내는 인간의 모습이 세상을 구할 수 있지 않은가 싶어 자꾸만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된다. 그나저나, 작가 입장에선 자신이 쓴 글에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독자가 귀여워 보이려나? 마치 조물주가 인간을 바라볼 때처럼? 

모두가 놀리고 싶어하는 사람을 놀리는 건 코미디가 아니야. 그건 풍자가 아니라 아첨이라고 나는 생각하네. 그런 코미디에는 고통이 있을 뿐이지. - 19p



나라를 망치는 건 사람들이죠. 나라는 사람들이 모인 것이지 예언이 모인 것이 아니니까요. - 147p



사람은 조물주와 달라서 모든 일을 다 알진 못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알지 못할 일이 일어나더라도 기뻐하고 행복해할 줄은 알았다. - 29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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