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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보스톡 어때? ㅣ 무화과 여행 만화 1
무화과 지음 / 일구구일(1991) / 2019년 4월
평점 :
품절
9.0
제목에 있는 블라디보스톡과 더불어 우수리스크, 하바롭스크까지 섭렵한 여행 만화. 하지만 여행 만화라고 해서 정보가 아주 꼼꼼하거나 체계적인 것은 아니다. 출판사에서 분량에 제약을 걸었던 것일까? 여행 일정이 무려 13일에 달하는 것치곤 실제로 화폭에 옮긴 내용은 극히 일부고 그마저도 소소한 감상 위주라 실질적으로 여행에 대비하기 위한 책으로는 미흡한 것 같다. 물론 그럼에도 유용한 정보가 전무했던 것은 아니다.
참고로 나는 5년 전에 블라디보스톡을 가봤는데, 당시엔 이런 만화가 출간되리라 생각도 못할 정도로 매우 미지의 여행지였기에 여행을 다녀온 지 시간이 지났음에도 이런 책이 퍽 반가웠다. 언제가 될는지 몰라도 블라디보스톡을 다시 가긴 갈 텐데 이 책에 소개된 여행지나 동선을, 그리고 어떤 기념품을 사면 좋은지 적잖이 참고해볼 생각이다. 이 작가처럼 시베리아 횡단 열차도 타보고 카페도 가보고... 지난 번에 못한 걸 유감 없이 해봐야지.
당장 여행 내용보다도 오히려 난 한국으로 돌아갈 때 작가가 느낀 심정이 더욱 인상적으로 읽혔다. 반쯤 충동적으로 퇴사하고 친구랑 간 블라디보스톡 여행, 2주 간의 여정이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길은 참으로 무겁기 그지없을 것이다. 앞으로 어떻게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며 앞으로 이처럼 긴 여행을 떠날 날이 올 것인지에 대한 우울함을 나 역시 적잖이 겪었다. 이 만화의 좋은 점은 이러한 감정을 너무 청승맞게 그리는 게 아니라 적절한 횟수에 적절한 깊이로 들여다보며 여운 있게 여행기를 마무리한다는 점이었다. 여행의 순간 순간에 지나친 의미 부여를 시도 않는 것도 좋았고 정말 여행기처럼 특별한 경험에 일희일비하는 모습을 담백하게 그려내 자연스레 몰입됐다. 이와 같은 호들갑 떨지 않는 여행관이 내 평소 여행관과 닮은 데가 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여행이 끝날 무렵이면 무릇 감상에 젖어 인생에 관해 대단한 결심을 하기 마련인데 실제로 지난 날을 돌이켜 보니 그 결심이 온전히 지켜진 적이 없는 것 같다. 지켜져도 작심삼일에 그쳤거나. 그럴 때마다 난 다음 여행을 계획하고 떠날 자격이 있는 것인가 자책하게 되는데 그럼에도 꼬박꼬박 잘 다녀온다. 한때는 이조차도 자괴감이 들 때도 있었는데... 반대로 생각해보면 그만큼 여행을 다녀오지 않았으면 일상의 스트레스나 복잡한 마음을 어떻게 정리했을까 싶어 역시 될 수 있는 한 다녀왔던 게 다행이란 생각도 든다. 특히 지금 같은 시국엔 더더욱.
국내 여행마저 눈치가 보이는 지금 시국에 이런 여행 만화나 과거의 여행 기억은 우리에게 예상치 못한 힐링과 더불어 현재에 대한 착잡함을 배가시킨다. 굳이 시국 때문이 아니더라도 여행의 기억이란 건 다녀온 지 시간이 지날수록, 또 현실이 팍팍할수록 오히려 독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럼에도 여행을 괜히 갔다는 생각은 어지간해선 들지 않는 것 같다. 정말 어지간해선 여행은 충동적이건 뭐건 내가 좋아서 가는 것이니까. 때문에 여행을 다녀온 것으로 인생이 대단히 변하지 않고 그 여행이 딱히 인생의 전환점이 되지 못하더라도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까지 든다. 그래, 애당초 여행으로 하여금 뭔가 대단한 변화를 기대하는 것은 지나치게 부담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내용이 적어서 그렇지 화풍이나 이야길 전달하는 방식이 마음에 들었던 책이다. 작가의 다른 책도 읽어보고 싶은데 아직 많이 출간된 책이 많이 없더라. 작가가 어찌나 고군분투하고 있는 중일지 상상이 가 나 역시 고군분투하며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을 다잡게 됐다. 암, 마음을 다잡아야지.
우리에겐 낯설고 신기한 여행지이지만, 이곳의 사람들에겐 익숙한 일상의 공간.
낯선 언어, 낯선 음식, 낯선 풍경, 그리고 낯선 사람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 풍경 속에서 가장 낯선 것이 우리이겠지. - Day 9
하고 싶은 일을 해도, 하기 싫은 일을 해도 인생이 이어진다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고 싶다.
행복하게 인생을 사는 법을. - Day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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