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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땡큐 : 며느라기 코멘터리
수신지 글.그림 / 귤프레스 / 2018년 10월
평점 :
9.4
다소 열린 결말로 끝난 <며느라기>의 외전, 비하인드 스토리, 작가가 자신의 남편, 시어머니, 엄마와의 대화 등이 실린 책이다. 본편에 비해 분량이 너무 짧은 건 아쉬웠지만 구성이며 내용이 모두 알차 읽은 보람이 있었다. <며느라기>의 전신이 되는 단편 만화도 수록됐는데, 그 작품을 토대로 <며느라기>를 그린 수신지 작가의 능력이나 의지가 대단했다. 사실 그 단편 하나로 놓고 보면 교훈이나 주제의식도 흐릿한, 흔히 말하는 '네이트판' 수준에 그쳤기에 이렇게 장편으로 발전시킨 게 정말 대단하게 느껴졌다. 작가도 이 책에서 밝히듯 <며느라기>가 단순히 불행을 전시하는 것에 머물지 않기를 바랐는데, 내가 봤을 땐 <노땡큐>가 나옴으로써 비로소 불행 전시라는 오해는 벗어던지지 않았나 싶다.
저번에 <며느라기>를 읽고 포스팅을 쓸 땐 그래도 사린과 구영 부부가 아직 완전히 감정이 떠나지 않았고 특히 구영이 자신의 잘못을 강하게 뉘우치는 장면이 있었기에 다음 명절 때는 발전이 있겠거니 하고 희망적인 감상을 적었는데 <노땡큐>를 읽고 나니 나도 참 감상에 젖었구나 하고 쥐구멍을 찾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이 그렇게 쉽게 변하는 존재가 아닌데. 특히 이 책에서의 구영의 모습을 보노라면 애당초 사린이 저런 의지박약에다가 우유부단하고 줏대도 없는 구영하고 결혼한 것 자체가 설정 오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책의 말미에는 <프로불편러 일기>의 위근우 작가와 <괜찮지 않습니다>의 최지은 작가의 칼럼도 수록됐는데 여기서 위근우 작가가 쓴 칼럼의 제목이 내가 <노땡큐>를 읽고 난 감상과 똑같아 격하게 고갤 끄덕거렸다. 결국 문제는 무구영이다. 정말 읽다 보면 '구영아, 너 아직도 정신 안 차렸니?' 하고 따지고 싶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구영은 겉으로는 모자람 없고 친절한 남성이지만 들여다보면 볼수록 답이 없는, 이른바 평범한 남성을 대표하는 인물이고 수신지 작가는 작품 본편으로부터 1년이 지났음에도 발전이 없는 구영을 통해 상당히 현실적이고 비관적인 전망을 드러내지 않았나 싶다. 뭐든 천천히 변화해야 반발이 적다지만, 작가는 오히려 사린의 입을 통해 천천히 천천히 운운하다가 그냥 그대로 익숙해져버리는 건 아닌지 씁쓸하게 중얼거린다. 나는 이 중얼거림을 보고 어째서 구영이 아직도 이혼을 당하지 않았는지 알 것 같았다. 빠른 변화가 두려워 하는 사회는 구영처럼 의지박약에다가 우유부단하고 줏대도 없는 남자에게 너무나 너그러운 세상이었던 것이다. 사린을 제외하고 완전히 이 시대 모든 구영에게만 너그러운 세상 말이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건 작가가 인터뷰한 대상 중 시어머니가 오히려 진보적인 입장을 취하고 작가의 엄마가 보수적인 입장을 취한다는 점이었다. 그럼에도 두 사람 다 예전엔 며느리의 희생이 옳고 자시고도 없이 당연히 그래야만 하는 줄 알았다가 점점 그게 아님을 깨닫고, <며느라기>를 향한 여성 독자들의 폭발적인 반응에 처음엔 의문을 표하다가 지금은 이해하게 됐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아마 내 생각엔 작가의 시어머니는 어쩌면 이미지 관리 차원에서 진보적인 발언을 하신 게 아닐까 싶고 작가의 엄마는 그럴 필요가 없으니 좀 더 솔직하게 말했을 뿐, 아마 두 사람 다 속마음은 얼추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비슷한 세대인 데다 비슷한 시기에 시집살이를 보낸 사람들이 며느리나 딸을 향한 감정에 어느 정도 동정과 보상 심리가 섞였을 것이며, 나는 두 인물에게 차이가 있다면 두 심리의 비율의 차이만 있진 않은지 의심이 들었다.
아무래도 성차별은 아주 오랫동안 남성과 여성을 가리지 않고 대물림된 것이라 아예 윗세대를 철저히 배제하지 않은 이상 당장에 빠르게 변화를 추구하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인 것 같다. 나 또한 특정 사람들을 배제하고서 냅다 변화만 추구하는 건 장기적으로 무의미하다고 생각해 변화의 속도엔 합의 내지는 조율이 필요하다고 본다. 작가도 이 부분에 대해 적잖이 고민을 했는지 <며느라기>는 불행 전시 소리나 들을 만큼 실질적으로 진행된 게 없는 정체된 이야기라 할 수 있는 반면 정작 외전인 <노땡큐>에서는 앞으로의 이야기에 대해서 활발히 논의한다. 이러한 아이러니함 어떻게 보면 작가 본인이 예상했던 이 작품의 한계이자 가장 큰 장점이라 할 수 있겠는데, 이처럼 과하지 않으며 독자들로 하여금 이야기를 하게끔 유발하는 작풍이야말로 지금 시대에 가장 적절한 변화의 속도가 아닌지 생각해보게 됐다. 그렇기에 어떻게 보면 사족일 수 있을 <노땡큐>란 책이 반대로 <며느라기>를 완성시키는 참으로 이상적인 후속작이란 생각까지 들었다.
여담이지만 작가의 <곤gone>을 1권도 읽었는데 2권 역시 마저 읽으려고 한다. 그 작품에서도 페미니즘을 날카롭고 서늘하게 표현하는 작가의 재능이 유감 없이 발휘돼서 - 흡사 <시녀 이야기>의 프리퀄 같다. - 완결작이라는 2권을 얼른 읽고 싶다. 그 작품이 고작 2권으로 끝날 내용인가 싶지만 한편으로 페미니즘이란 키워드로 여러 작품을 그리는 게 독자 입장에서 더한 행복이겠다 싶어 아무튼 사뭇 기대가 된다.
자신의 일인데 자기는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이유는?
1. 본인의 문제라고 인지 못 함.
2. 남이 해결해주기를 바람.
- 12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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