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소녀와 신과 마주보는 작가 下 - Extreme Novel
노무라 미즈키 지음, 최고은 옮김, 타케오카 미호 그림 / 학산문화사(라이트노벨)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8.3 







 토오코와 류우토의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고 글을 쓰는 것에 트라우마를 가진 유리 멘탈 코노하의 성장이 담긴 시리즈 마지막 권... 인 줄 알았으나 이 이후에 단편과 외전이 많이 출간돼서 이걸 과연 마지막이라 봐야 할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일단 본편의 이야기는 끝났고 나도 더 이상 볼 생각이 없으므로 이 이야길 마지막으로 간주하고자 한다. 10년 전에 재밌게 읽었다는 이유로 억지로 다시 읽으니 하나 분명히 깨달은 것이 있다. 10년 전이든 20년 전이든 옛날에 재밌게 읽었다고 꾸역꾸역 읽지 말자고. 과거에 재밌게 읽었으나 시간이 흐르면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걸 나는 왜 외면하고 읽었던 걸까? 

 마지막 에피소드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극단적인 막장 스토리가 나올 줄 알았지만, 분량을 많이 할애한 덕분인지 코노하가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것이나 코노하와 토오코가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고 훗날의 만남을 기약하는 결말이나 토오코가 당면한 문제를 코노하가 해결하는 전개 등이 과하거나 어색하지 않았다. 아쉽게도 지드의 <좁은 문>을 아직도 못 읽어서 - 10년 전에 이 작품을 접했을 때 읽어야지 하고 다짐했는데 그 사이에 한 번을 읽지 않았다... - 작중 등장인물들이 그 작품을 언급하거나 인용하는 게 약간 와 닿지 않았지만 등장인물들끼리는 알아서 납득하고 서로의 해묵은 감정을 해소해서... 전과 다르지 않게 속도감 있게 읽어나갈 수는 있었다. 


 이번 에피소드에선 작가란 홀로 고독한 길을 걸으며 끊임없이 제 살을 깎아나가는 존재로 여기는 인물이 여럿 등장한다. 그만한 희생이나 고행 없이는 작품을 쓸 수 없으며 때문에 코노하는 가뜩이나 작가가 되고 싶은 마음이 없는데 옆에서 작가가 되라고 부추기거나 협박하거나 아예 저만한 각오 없이는 작가가 될 수 없다고 으름장을 놓아서 코노하로서는 작가가 되려는 마음을 먹고 싶어도 먹기가 힘든 대환장 사태가 연이어 발생한다. 애당초 코노하는 좋아하는 여자애를 위해 쓴 글이 덜컥 당선돼 베스트셀러로 등극할 정도로 재능이 출중했으나 그놈의 유리 멘탈 때문에 그 모양 그 꼴이 난 건데... 결과적으로 코노하가 스스로를 잘 추슬러서 작가가 됐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최악의 결과만 나고 풍비박산이 났을지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사람은 강하게 키워야 된다는 말은 정말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사람이나 할 수 있는 발언인 것 같다. 그 말의 성공 사례만 보니까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는 거겠지? 대체 몇 명의 사람이 실패 사례까지 면밀히 분석하고서 그 말을 입에 담는 것일까? 난 단언컨대 아예 한 명도 없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코노하의 재능이 어지간히 뛰어났는지 시리즈 초반부터 평생 절필을 선언했음에도 결말에서 작가로서 활동하게 된 걸 보고 재능의 세계는 결코 평등하지 않음을 깨달았다. 최근 연달아 낙선을 경험한 터라 이 작품의 소재나 '작가관', 코노하의 미래가 예사롭지 않게 읽혔다. 읽는 내내, 내가 내 꿈을 너무 가볍게 여겨서 성과를 못 내는 건가 자문하기도 했고 멘토나 롤모델이 딱히 없어서 제자리걸음은 아닌지 스스로를 추궁하기도 했다. 아까 코노하 보고 유리 멘탈 어쩌구 했지만 지금은 나도 별반 다르지 않은 실정이라...... 이 시리즈 대망의 마지막 이야기가 실로 개인적인 의미에서 막막하게 다가왔다. 이 작품을 처음 읽었던 10년 전엔 내가 다시 읽을 때 이런 감상을 적으리라곤 상상도 못했는데, 어쩌면 이것만으로 이 시리즈를 다시 읽은 보람이 있다는 생각도 든다. 


 토오코와 류우토의 출생의 비밀은 웬만한 막장 스토리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얽히고설킨 인과 관계가 일품이었는데 마지막 에피소드라 그런지 작가가 힘을 쏟아 부었다는 것이 전해졌다. 후반에 코노하가 사건 해결의 주역이 될 만큼 성장한 것이나 그런 코노하가 자신의 미래를 위해 단호하게 벌인 행각 내지는 선택이 의외인 것도 꽤 흥미로운 - 고토부키 지못미 - 지점이었다. 허나 온갖 호들갑을 떤 것치고 막상 무엇 하나 시원스럽게 해결된 느낌은 안 들었는데, 애당초 사건의 규모 자체가 코노하와 토오코 둘 사이의 관계에 집중한 소규모의 에피소드였으므로 위와 같은 느낌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면 당연하다는 생각도 든다. 정말이지... 예전과 비하면 유혈이 낭자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덜 자극적인 에피소드가 아닐 수 없었다. 물론 정신적인 충격까지 옅어졌다는 뜻은 아니지만. 

 마침내 다 읽은 '문학소녀' 시리즈였으나 '늑대와 향신료' 시리즈만큼 감개무량한 느낌을 주지 않았다. 내 감성이 예전과는 많이 달라져서 이제 라이트노벨이 전처럼 재밌게 읽히지 않는다는 걸 제대로 깨달았다. 예전엔 두 번 세 번 읽어도 재밌을 것 같았는데... 뭔가 씁쓸하지만 한편으론 10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정말 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실감해 그야말로 30대를 목전에 둔 내가 앞으로 어떤 책을 읽어야 할는지, 그리고 인생에 대해 고민을 해봤다. 물론 30대가 됐다고 해서 바로 스물아홉이랑 하늘과 땅처럼 달라지지 않겠지만 그래도 시간이 흐르면 사람은 결국 변한다는 걸 몸소 실감한 만큼 앞으로 나와 내 주변은 어떻게 변화할 것이고 나는 그 변화를 감당할 수 있을지도 진심으로 염려하게 됐다. 과연 10년 뒤의 나는 지금의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10년 전엔 이 질문이 막연하다 생각했다면 지금은 설레는 한편으로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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