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소가 웃는 순간
찬호께이 지음, 강초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9년 11월
평점 :
절판


6.6 







 한 작가를 무한 신뢰하는 순간부터 나는 꼭 그 작가의 '지뢰작'을 접하는 것 같다. <염소가 웃는 순간>은 객관적으로 지뢰작이라 부를 만큼 처참한 완성도의 작품은 아니지만, 작가의 대표작 <13.67>이나 최신작 <망내인>, 은근히 빛을 못 본 단편집 <풍선인간>과 비교하면 가볍고도 가벼운 수준의 평작이었다. 작가의 데뷔작인 <기억나지 않음, 형사>보다 모자란 부분이 많았는데, 특히 산만하고 신선하지 못한 전개와 캐릭터, 나중에 가선 논리적으로 접근하지만 기본적으로 '귀에 걸면 귀걸이고 코에 걸면 코걸이'인 설정까지 눈에 걸리는 부분이 한둘이 아니었다. 가독성은 유일하게 내세울 수 있을 장점일 테지만, 흡입력이 좋다기 보다 시간을 들여 정독할 정도로 밀도 높은 내용이 아니라 그저 빨리 읽힌 것에 가까워 이걸 장점이라 봐야 할는지도 잘 모르겠다. 

 물론 내가 호러 소설을 굉장히 안 좋아하기 때문에 이렇게나 박하게 평하는 것일 수도 있다. 사람들이 극찬한 나홍진 감독의 <곡성>이나 아야츠지 유키토의 <어나더>도 혹평했던 나인 만큼 제아무리 찬호께이가 재주가 좋아도 그의 호러 소설이 내게 먹혀들 리는 만무할 터다. 만약 호러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에게 이 소설이 나름대로 괜찮았다고 한다면 솔직히 할 말은 없다. 내겐 어쭙잖게 느껴진 후반부의 논리적인 전개도 독자에 따라선 신선한 포인트일 수 있음을 부정하지 않겠다. 비록, 나는 독자도 논리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공정함이 부족한 소설에게 과도한 칭찬은 자제해야 한다는 주의지만, 내가 작가에 대한 애정이 이 작품만으로 바래지지 않아서 아주 헐뜯고 싶진 않다. 작가에 대한 애정이 지대한 나머지 더욱 헐뜯을 수 있는 법이지만 말이다. 


 사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입이 근질거린다는 것을 숨기진 않겠다. 평범함을 개성으로 내세운 주인공의 매력도 잘 와 닿지 않고 작가가 청춘물을 표방한답시고 만든 캐릭터들이 머릿수만 많지 대부분 작위적인 성격들인 터라 몰입을 방해한 적이 - 특히 버스... 일단 별명부터가... - 많았다. 뿐만 아니라 노퍽관에 얽힌 괴담이 한두 개도 아니고 무려 7가지나 돼 산만하기 그지없었는데, 일부 괴담은 제법 오싹했지만 테마파크마냥 파트별로 한 번씩 소개하고 넘어가는 게 무분별하게 소비되는 느낌이 들어서 뒤로 갈수록 실소가 나왔다. 이거 분명 호러 소설인데... 

 아무래도 내가 요즘 마음의 여유가 없다 보니 일종의 시적 허용이라 웃어 넘길 만한 요소에도 일일이 열받은 감이 있으나... 다른 건 몰라도 '이거... 뻔한데, 이상하게 재미있다! Why? 찬호께이니까!'라는 띠지의 문구가 괜히 기대감을 증폭시킨 탓인지 이렇게 실망감을 날카롭게 반응을 내비치지 않을 수 없었다. 다행히 이 작품을 집필한 작가가 마지막에 가서 쓸데없는 의미 부여를 하기 보단 끝까지 철저하게 재미를 위한 글을 쓴 덕분에 엄청난 불쾌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완성도도 떨어지는데 주제의식 내세우면서 있어 보이려고 했다면 진짜 가루가 되도록 깠을 것이다. 


 만약 찬호께이의 작품을 혹시 이 작품으로 처음 접한 사람이 있다면 작가의 다른 작품은 이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내는 작품마다 분량에 걸맞게 내용도 알차고 복선 회수나 반전도 예사롭지 않은 중화권 최고의 추리소설가임을 확인하고 싶다면 <13.67>이나 <풍선인간>, <망내인>을 접하길 간곡히 부탁한다. 제발 이 작품으로 찬호께이를 판단하지 말기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