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로봇
아이작 아시모프 지음, 김옥수 옮김 / 우리교육 / 2008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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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아이작 아시모프의 <아이, 로봇>은 윌 스미스 주연의 동명의 영화의 원작 소설이라고만 알고 넘기기엔 참 아까운 대작이다. 후대의 모든 로봇 창작물에 영감이자 원천을 제공한 '로봇 3원칙'이 처음 등장한 전설적인 작품이면서 다종다양한 오류를 내는 로봇들을 통해 새로운 차원의 존엄성과 인권 감수성을 길러볼 수 있는 철학적인 SF 소설이자 로봇 3원칙을 근거로 로봇들의 오류 원인을 추적하는 특수 설정 걸작 추리소설집이기도 하다. '로봇 3원칙'이야 워낙에 유명하고 이전 포스팅에도 썼으니 더 하고 싶은 말이 없고, 철학적인 SF 소설이란 측면에서 보자면 어딘지 볼거리에 치중된 영화에 비해 훨씬 다양한 각도에서 로봇이란 존재의 불완전함 - 한편으론 로봇 자체는 완전무결하나 다루는 인간들이 불완전하기 이를 데 없다는 생각도 지울 수 없다. - 에 주목하며 미래의 로봇은 진정 어떤 모습일는지 상상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개인적으로는 책의 수록작들 대부분이 마치 추리소설적인 구조를 띄고 있는 게 참으로 흥미로운 지점이었다. 첫 번째 수록작이자 레트로 휴고상을 수상한 '로비'는 소녀와 로봇과의 감동적인 우정을 그린 전형적인 로봇 소설인 것에 비해 바로 다음 수록작부터 작가의 상상력과 유머 감각이 돋보여 다소 밋밋했던 첫인상은 눈 녹듯 사라졌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수록작의 제목에 부제가 붙으면서 이번 이야기에서 어떤 반전이 등장할지 유추가 가능하다는 점이었는데, 이 제목들이 원제가 아닌 우리나라로 번역 출간되면서 바뀐 걸 생각하면 다소 불필요한 친절을 베풀지 않았느냐고 혀를 차게 됐다. 출판사가 어린이 독자를 상정하고 편집을 해서 그런가... 작품의 내용의 반전들이 지금 읽어도 신선한 부분이 있어서 의도치 않게 스포일러로 재미를 반감시킨 출판사의 편집은 은근히 아쉬웠다. 반면 수록작마다 판이한 분위기를 전부 소화하는 실감나는 작화력을 보유한 오동 그림 작가의 삽화는 가히 신의 한 수로 여겨졌다. 

 '스피디'처럼 로봇 3원칙이 서로 충돌해 기이한 행동을 하는 경우부터 '큐티'처럼 인간의 말을 듣지 않는 로봇이 헛소리까지 남발하지만 일 하나는 기똥차게 잘해서 주인인 인간 입장에서 울며 겨자 먹기로 방관할 수밖에 없는 경우, '허비'에서 절대다수를 만족시키는 로봇의 존재는 모순에 불과함이 드러나는 경우, '네스터10호'처럼 인간에 대한 반발심과 로봇으로서의 우월감이 지나치면 어느 정도로 위험해질 수 있는지 경고하는 경우, '바이어리'에서는 인간 못지않은 로봇의 대두, '피할 수 있는 갈등'에서는 인간을 위해 심어둔 로봇의 원칙이 도리어 인간의 목을 조르거나 사육하는 결과에 이를 수도 있다는 비관적인 전망까지 이 책에선 온갖 종류의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로봇이 3원칙을 거스를 수 없게끔 만드는 기술적인 원리는 잘 모르겠으나 그 구멍이 숭숭 난 원칙에 의해 인간이라면 저지를 수 없는 실수를 속절 없이 반복하거나 인간에게 굴욕을 당해야 하는 로봇의 처지가 웃기면서 씁쓸하게 다가왔다. 종국에 로봇은 지나치게 발달해 인간을 위한 원칙을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인간을 욕보이는 고차원의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 이걸 자업자득이라 해야 할 지 판도라의 상자를 연 대가를 치렀다고 해야 할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난감할 정도로 작중 딜레마는 대부분 근본적인 책임을 인간에게 돌릴 수 있어 씁쓸함이 배가됐다. 우린 로봇의 주인인가 친구인가 아니면 종인가. 언뜻 타당해 보이는 로봇 3원칙은 실상 모든 로봇을 완벽히 통제하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인간이 그렇듯 로봇들 역시 결코 천편일률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언젠가 어디에서든 로봇이 사고를 일으키는 것은 아주 필연적이라 여겨졌다. 

 이야기의 구조나 반전의 내용들도 재밌었지만 로봇의 오류를 조사하는 파웰과 도노반, 수잔 켈빈과 보거트 콤비가 작품에 깨알 같은 재미를 선사했다. 유연한 사고로 사건의 진상에 접근하는 모습, 가끔은 대재앙을 방지하고자 목숨도 거는 몇몇 장면에서 호감을 가지지 않기가 힘들었다. 이들 모두 하는 일이 비슷함에도 로봇에 대한 가치관이 각자 달라 가끔 의견 대립하는 구도 역시 흥미로웠다. 개중에 수잔 켈빈 박사는 로봇이란 존재를 사뭇 긍정적으로 여기는 캐릭터다. 그 이유로 박사는 로봇의 악행은 로봇이 악의를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대부분 인간의 실수나 로봇이라는 한계 때문에 벌어지는 우발적인 사고라는 것으로 예시를 들었다. 


 작년에 읽은 카렐 차페크의 <로봇>이 로봇 소재의 A to Z를 다뤘다고 생각했는데 <아이, 로봇>에서 로봇이란 소재가 완성되지 않았나 싶다. 로봇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와 더불어 위험성도 경고하는 자세에서 연작 소설의 미덕이 영리하게 발휘됐다고 본다. 이야기의 세부적인 주제가 계속 바뀌니까 여러 형태의 이야기가 나왔을 테고 아마 장편이었으면 이런 다양한 매력을 어필하기 힘들었을 것 같다. 그래서 영화가 고평가를 못 받았나? 저번에 처음 읽었을 때 영화도 다시 찾아보자고 생각했는데 4년 동안 결국 찾아보지 않았다... 언젠가 찾아보긴 해야 할 텐데 괜히 실망할까봐 두렵다. 원작을 최대한 의식하지 않고 기대 없이 보는 게 상책일 듯하다. 

하지만 선생이 알아야 할 건 로봇하고 아주 훌륭한 인간은 잘 구분할 수 없다는 사실이에요. - 30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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