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악몽과 계단실의 여왕
마스다 타다노리 지음, 김은모 옮김 / 한겨레출판 / 2019년 11월
평점 :
절판


9.3 







 근래 접한 데뷔작 중 가장 좋았다. 이렇게 수록작 전부가 완성도가 고른 경우는 흔치 않아 읽는 내내 감탄했다. 난 또 표제작이나 수상작만 좋을 줄 알았지. 작가의 데뷔작이라던데 이 작품 이후의 다른 작품도 볼 수 있길 바란다. 



 '매그놀리아 거리, 흐림' 


 투신 자살하려는 사람을 말리기는커녕 자살을 부추기는 무책임한 군중 심리를 짜증을 유발하는 인질극을 통해 꼬집는 이야기가 독특했다. 또 세속적인 목적 없이 악의로만 똘똘 뭉친 범인에게 주인공이 끝까지 농락 당하는 전개가 몰입감이 넘쳤다. 상대가 제대로 돌아버린 작자이기에 대적할 방도가 없는 데서 비롯되는 무력함이 독자 입장에서도 확실히 와 닿았다. 그야말로 악몽이라 부르기에 적합했는데, 주인공이 억울한 한편으로 인과응보라는 느낌도 없잖았던 만큼 뒷맛이 한없이 찝찝했다. 같은 소설추리 신인상 수상작인 미나토 가나에의 <고백>의 첫 번째 수록작과 닮은 구석이 많았다. 시시각각 변하는 사건의 양상이나 결말까지. 



 '밤에 깨어나' 


 반전이 사족이었던 걸 제외하면 아주 좋았던 작품. 대학도 안 가고 변변한 직장 없이 부모 집에 얹혀 산다는 이유로 주인공이 오해에 시달리다 미쳐버리고 끝끝내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파멸에 이르는 전개가 끔찍했다. 밤길에 욱하는 심정으로 여자를 겁주려고 한 그 장면만 놓고 보면 이 주인공이 경솔하다고, 한마디로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겠냐고... 이러니 의심을 받지' 하고 한숨이 나오지만, 어떻게 손을 쓸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점점 악의가 솟아 오르는 주인공의 심리를 실감나게 표현했기에 맥락상 자연스럽게 읽힌 게 돌이켜보니 참 무섭게 느껴졌다. 어떤 수순으로 전개될지 뻔히 보였지만 그렇기에 수록작 중 가장 필력이 돋보였던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복수의 꽃은 시들지 않는다' 


 왠지 야쿠마루 가쿠의 작품들이 연상되는 복수극이었다. 앞선 두 작품에 비해 주인공이 상대적으로 덜 억울하게 느껴지고 인과응보가 적절히 이뤄지지 않았나 싶다. 그래, 이 단편집은 억울함과 인과응보 사이의 짜증남과 씁쓸함에 잘 주목하고 있는데 이 세 번째 작품의 주인공은 누명을 썼다기 보단 타인의 범죄에 가담했고 시간이 흘러도 남의 탓을 하는 모습 때문에 - 그래서 더 인간적이었지만 - 그리 동정심이 일지 않았던 것 같다. 뭐, 그래도 다음 작품의 주인공에 비하면 이 정도면 양반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계단실의 여왕' 


 어떤 의미에서 가장 별로였던 작품. 주인공이 귀찮은 일에 휘말리기 싫어서, 그리고 열등감이 폭발해서 계단에서 넘어진 이웃을 위해 구급차를 부르지 않은 것까지 이해하겠는데, 그 이후의 행보가 너무나 멍청해서... 정말이지 비호감도 이런 비호감이 다 있나 싶었다. 계단을 오가는 복잡한 전개 내지는 트릭이 있어 일본추리작가협회상 후보에도 오른 것 같은데 전개나 결말이 너무 뻔해서 수상이 불발이 된 게 납득이 갔다. 계단을 소재로 다룬 걸 빼면 그렇게 신선하지도 않았고. 단편집을 읽다 보면 표제작만 좋은 경우가 은근히 많은데 이 책은 정반대였다. 차라리 이 작품이 제일 첫 번째로 수록됐으면 어땠을까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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