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스릴러 - 스릴러는 풍토병과 닮았다 아무튼 시리즈 10
이다혜 지음 / 코난북스 / 2018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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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일전에 읽었던 <아무튼, 방콕>이 괜찮아서 다른 '아무튼' 시리즈엔 어떤 책이 있을까 둘러보았다. 그 무수한 책 중에 이 책의 제목이 단연 눈에 띄었다. 제목도 제목이지만 저자의 이름도 낯익었는데 이렇게 책으로 접하기는 또 처음이라 사뭇 기대가 됐다. 

 저자가 서두에서 밝히듯 스릴러는 명쾌하게 설명이 가능한 장르가 아니다. 워낙에 나뉘는 갈래가 다양하기에 일목요연하게 스릴러란 이렇다 하고 정의 내리기란 저자도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하긴 고작 '단순히 스릴이 있고 범죄가 묘사된 소설'이라는 식의 정의를 읽으려고 이 책을 집어든 게 아닌 만큼 서두에서부터 겸손하게 스릴러의 정의 내리기를 일찌감치 포기하는 것이 더 인상적이었다. 


 이 책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은 스포일러를 최대한 절제한 다양한 작품 소개와 스릴러를 좋아한 사람들 사이의 공감대를 풀어낸 것이다. 전자에 대해 얘기하자면, 대관절 스포일러의 기준은 어디까지이며 어느 정도의 스포일러가 이로운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 내가 추리소설로 독서에 입문했다 보니까 블로그를 시작할 때부터 스포일러 없이 글을 쓰는 것을 의식하게 됐는데, 책에 적혀있는 고충, 가령 스포일러에 과민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에 대한 씁쓸함 등이 퍽 공감이 됐다. 다른 장르의 독자들 사이에선 은근히 스포일러가 크게 중요하지 않은 모양인데, 반전이 참 중요하긴 해도 거기에 함몰돼 글을 읽고서 사람들에게 감상을 들려주는 재미가 추리소설 독자들 사이에서 너무 제한되는 것 같아 아쉽기 그지없다. 스포일러 없이 소개하는 것도 기술이라지만 작품에 따라선 한계가 있는 법. 너무 대놓고 악의적인 스포일러가 아니라면 좀 더 관대하게 넘어가도 괜찮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작가가 연구를 많이 한 모양인지 글에서 언급된 작품들이 하나 같이 절묘하게 소개됐다. 내가 읽었던 작품들이 거의 스포일러 없이 소개되는 것을 보고 내가 아직 접하지 못한 작품들을 거론할 때 노심초사하지 않게 되더라. 역시 괜히 유명한 사람은 아니구나 하고 감탄했다. 


 스릴러, 추리소설을 좋아한다고 말하면 눈치가 보일 때가 있다. 은근히 추리소설을 잔인하고 저속할 뿐인 소설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사람들이 많더라. 특히 우리 부모님 세대엔 그런 인식이 만연해서 내가 막 추리소설에 빠져들었을 때 어머니와 마찰이 잦았다. 결국엔 내가 추천한 소설들,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나 <이니시에이션 러브> 같은 '추리소설 같지 않은' 추리소설을 읽고서 내가 잔인하고 저속한 소설을 읽는다는 오명을 벗을 수 있었는데, 이는 내가 어머니 아들이니까 가능했지 생면부지의 남에게 통용되는 방식은 아닐 테다. 내가 어머니에게 했던 '속는 셈치고 읽어봐라' 라는 말에 다른 사람까지 귀 기울이리라곤 기대하기 힘드니까 말이다. 

 선입견이 강하면 강할 수록 그 선입견을 공고히 하려고 하지 그 선입견을 굳이 깨려고 한 걸음 양보하는 사람은 그렇게 흔치 않다. 하물며 추리소설은 '잔인하고 저속할 뿐인 소설'이란 선입견은 일견 맞는 소리지 않나 싶을 정도로 그 이미지를 일부러 깨지 않으려는 잔인하고 저속할 뿐인 소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렇기에 무턱대고 유명하거나 혹은 베스트셀러를 읽어볼 것이 아니라 자기 취향에 맞는 추리소설을 추천해줄 만한 사람을 찾아가거나, 아니면 이렇게 전문가가 쓴 책으로 감을 잡아보길 바란다. 추리소설 읽어봤는데 별로더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십중팔구 서점에서 가장 눈에 띄는 책을 무작정 읽어본 경우다. 내 생각에 추리소설/스릴러 장르는 아무 책이나 집어들어도 될 만큼 천편일률적인 장르가 아니므로 저런 식의 접근은 시늉에 불과하다고 추리소설 애독자로서 감히 말해보겠다. 


 이 책은 위에서 말했듯 스릴러란 장르를 아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지는 않지만 150쪽도 안 되는 짧은 분량 속에서 장르의 세부적으로 어떻게 구분되고 특징들을 다양하게 분석했다. 특히 코지 미스터리, 이야미스, 여성 작가가 쓰는 여성이 주인공인 스릴러 등에 대한 분석은 서점가에서 범람하다시피 하는 추리소설/스릴러 코너에서 괜찮은 길라잡이가 될 듯하다. 내게 새로운 내용은 없었지만 그 하위 장르들의 묘미와 요즘 각광 받는 이유, 대표작들의 소개는 제법 구미가 당기게끔 - 이미 읽은 작품도 다시 읽고 싶어졌다면 말 다했다. - 썼다. 

 아울러 스릴러 장르와 실제 잔인한 사건과의 불편한 공생 관계,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은 잔인한 심성을 좋아하리란 불쾌한 꼬리표, 왜 우리는 스릴러에 열광하는가에 대한 작가의 분석도 괜찮았다. 이 부분도 내겐 그렇게 새로운 내용은 아니었지만 스릴러의 'ㅅ'자도 모르는 사람에겐 진정성 있게 읽히길 바란다. 정말로 잔인한 걸 좋아해서 스릴러를 읽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보다 잔인한 현실에 대한 대리 만족을 위해서 읽는 사람이 더 많고, 거기서 그치지 않고 이 작가처럼 '내가 이렇게 스릴러에 좋아하는 것이 괜찮은 건가?' 하고 자문하는 사람 또한 있음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모든 사람이 천편일률적이지 않듯 모든 추리소설가들 역시 천편일률적이지 않다. 당연히 그들이 집필하는 작품들이 천편일률적일 리 없다. 일단은 스릴러로 명명되는 작품들이 세부적으로 들여다봤을 때 오히려 스릴러란 단어 하나로 묶기에 힘들다는 것을 설명한 것만으로 이 책은 소임을 다했다고 본다. 어설프게 정의를 내리는 것보다 이쪽이 훨씬 영양가 있었다. 한마디로 스릴러를 좋아하는 사람, 스릴러를 모르는 사람, 이제 접하려는 사람 모두에게 추천할 수 있는 책이었다. 

놀이의 도구가 신뢰라는 말은, 자칫하면 신뢰와 애정 모두를 놓치는 최악의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 48p



그래서 범죄물을 읽는다. 이해할 수 없는 악의의 정체가 궁금해서, 불가능해 보이는 범죄가 이루어지고 또 그것을 해결하는 천재적인 두뇌플레이를 보고 싶어서, 그 안에서는 언제나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 서사 안에서 안전한 쾌락을 느끼고 싶어서. 하지만 ‘내가 파는 장르‘가 무엇을 소비하는지 알고는 있어야 한다. - 116p



현실이 잔인하다고 잔인한 설정을 한껏 이용하는 창작물을 즐기지 말아야 할 이유는 없다. 현실의 문제를 픽션의 연장으로밖에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그것은 문제가 된다. ‘픽션‘과 ‘픽션 같은‘은 전혀 다른 말이다. 픽션을 픽션으로 즐기려면 현실의 문제를 현실에서 해결하려는 책임감이 필요하다.

나는 여전히 스릴러를 좋아한다. 그 사실은 종종 나를 괴롭게 한다. 내가 ‘파는‘ 장르의 구성 성분이 무엇인지, 쾌락이 어디에서 발생하는지를 생각하는 일이 그렇다. 스릴러가 현실의 피난처로 근사하게 기능해온 시간에 빚진 만큼, 현실이 스릴러 뒤로 숨지 않게 하리라. - 13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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