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무더위 - 살인곰 서점의 사건파일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문승준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19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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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 2부에 해당하는 <조용한 무더위>는 작가의 장기인 블랙유머와 서늘한 분위기, 그리고 추리소설이란 장르에 대한 애정이 유감 없이 발휘된 단편집이다. 하무라 아키라가 서점에 적을 두다 보니 전작 <이별의 수법> 때와 마찬가지로 서점과 출판계를 배경으로 사건이 펼쳐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독특한 분위기가 퍽 아기자기하게 다가왔다. 왜 진작 이런 식으로 설정을 짜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서점과 하무라 아키라는 정말 딱 맞는 궁합이었는데,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어 눈도 침침하고 탐정으로서의 능력도 미묘하게 허술하고 무엇보다 '불운함'이 이 아기자기한 설정과 맞물려 쉬지 않고 폭소를 유발했다. 그래봤자 유머는 곁가지에 불과하다지만 데뷔 때부터 코지 미스터리를 써온 작가답게 능수능란하게 잔재미를 녹여낸다. 덕분에 코지 미스터리라기엔 심각하기 이를 데 없는 사건이 다뤄짐에도 틈틈이 킥킥거리며 술술 읽어나갈 수 있었다. 



 '파란 그늘' 


 개인적으로 첫 번째 수록작이 표제작보다 더 재밌었다. 이제 중년의 나이에 접어든 하무라 아키라라지만 탐정으로서의 실력은 아직 건재함을 알린 것과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범인을 궁지로 몰아가는 소설의 절묘한 구성에 깜짝 놀랐다. 특히, 재밌긴 하나 별로 대단한 설정이라 생각하지 않았던 살인곰 서점이란 배경이 십분 활용돼 뒤통수를 제대로 맞았다. 하무라 아키라의 책임감 내지는 도덕성을 엿볼 수 있던 것도 인상적이었다. 



 '조용한 무더위' 


 표제작이자 작년에 나온 드라마 <하무라 아키라>에서도 다뤄진 작품이다. 허무함이 남발되는 코믹한 전개 이면에 숨겨진 서늘한 범죄 계획이 하무라 아키라의 불운과 촉으로 끝끝내 저지당하는 결말이 놀라웠다. 일본의 여름을 경험해본 사람으로서 작중에서 묘사되는 더위의 수위가 종이 너머로 십분 전해졌는데, 그 와중에도 추리소설 특유의 서늘함을 전달한 작가의 필력이 실로 절륜하게 느껴졌다. 하무라 아키라의 촉도 마찬가지다. 이 정도면 정말 명탐정이 따로 없다... 



 '소에지마 씨 가라사대' 


 시리즈 최초의 안락의자 컨셉인 것도 신기했고 반가운 캐릭터가 등장해서 반갑기까지 했다. 여러모로 골때리는 상황 속에서 최소한의 책임감과 움직임으로 사건을 무마하는 전개가 속도감 있고 좋았으며 결말도 기억에 남았다. 소 뒷걸음질 치다 쥐를 잡는다고 했던가. 탐정에게 잘못 걸리면 정말 어떻게든 죄가 탄로 나기 마련이다. '트러블 메이커'라는 하무라 아키라의 이전 별명이 오랜만에 떠오르는 결말이었다. 



 '붉은 흉작' 


 중반부의 몰입도는 그저 그랬지만 도입부와 결말이 제법이었다. 하무라 아키라가 탐정이지 정의의 사도까진 아니라는 이 시리즈의 컨셉, 혹은 작가의 가치관이 단적으로 드러나는 결말이 마음에 들었다. 누가 자신에게 사건을 맡기려고 하면 장난하지 말라며 툴툴대다가도 막상 조사를 시작하면 자기 사전엔 적당히란 말은 없다면서 끝장을 보고, 사건이 일단락이 난 후에도 어느 정도 사후 책임에 신경을 쓴다. 이러니 이 캐릭터에 애정이 안 갈 수가 없다. 



 다음 작품인 <녹슨 도르래>는 장편이고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멘탈 붕괴 수준의 전개가 펼쳐진다고 하니 기대가 된다. 이 책을 읽으니 단편도 나쁘지 않지만 난 작가의 장편이 더 취향에 맞는구나 싶어서 - 작가의 주 종목이 단편이라는 데엔 어느 정도 동의는 하지만. - 다음 작품도 조만간 찾아 읽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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