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와서 날개라 해도 고전부 시리즈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김선영 옮김 / 엘릭시르 / 2017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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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최근 잇달아 내가 애정하던 시리즈들에 실망을 하는 것 같다. 요 네스뵈의 '해리 홀레' 시리즈를 시작으로 교고쿠도 나츠히코의 '교고쿠도' 시리즈, 그리고 요네자와 호노부의 '고전부' 시리즈의 최신작이 기대에 못 미쳤다. 기대가 너무 큰 탓이었을까? 항상 '기대가 큰 탓에' 라고 둘러댔지만 이 작품 <이제 와서 날개라 해도>는 실망한 이유가 명확하기에 딱히 변호하지 않으려고 한다. 아마 내가 이 작품으로 시리즈에 입문하고자 했더라면 - 시리즈 여섯 번째 책으로 입문하려고 할 가능성이 극히 적긴 하지만. - 이 시리즈의 매력이 대관절 무엇인지 알지 못했으리라 단언한다. 

 일상 미스터리 계열의 작품이므로 세계관이나 작중 다뤄지는 사건이나 수수께끼의 종류가 여타 추리소설에 비해 시시하긴 했어도 이 책에 수록된 단편들은 이 정도면 대놓고 추리소설이 아닌데? 싶을 정도로 밋밋한 내용들이 많았다. 일반적인 추리소설의 기준에서 밋밋하다 뿐이지 시리즈 자체적인 기준에서는 어떠냐고 물어도 별로 좋은 소리는 해주고 싶지 않다. 캐릭터의 과거나 내면을 들여다봄에 있어서 시리즈 내적으로는 꽤나 의미 있는 내용이 많았으나 분량의 한계 때문인지 이야기 자체가 뜬금없이 시작되거나 급작스럽게 끝나버려 캐릭터들의 고뇌가 와 닿는 경우가 적었다. 특히 표제작인 '이제 와서 날개라 해도'는 지탄다의 고민과 일탈이 너무 전조 없이 대두되고 모호하게 끝맺어진 것이 마음에 걸렸다. 나름대로 표제작에 걸맞게 중대한 사건이 발생해 가독성이 좋았지만 이 경우엔 추리가 분량을 지나치게 잡아먹은 감이 있어서... 전작에서 추리와 이야기를 적절히 융합했던 그 만듦새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 


 작가의 다른 단편집을 읽었을 땐 이런 느낌을 못 받았는데 이 시리즈의 단편은 유독 약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상술했듯 캐릭터의 과거가 집중 조명돼 시리즈의 팬으로서는 어느 정도 읽을 만한 가치가 있었으나 시리즈의 팬들을 제외한 다른 독자들, 가령 이 작품으로 작가의 작품을 처음 접할 수도 있는 독자들을 매료시킬 만한 만듦새엔 확실히 미치지 못했다. 시리즈에 호감이 없는 독자라면 다른 건 몰라도 이 소설을 빈말로도 좋은 추리소설이라 얘기하진 않을 것이고 심하면 속았다고 고개를 저을 독자도 있을 터다. 

 물론 추리소설이냐 아니냐가 그렇게 핏대 세워야 할 만큼 중요한 논쟁거리가 아니긴 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무의미하다고 여기기엔 수록작들이 엄연히 추리소설이라는 정체성을 지향하고 있으므로 독자인 나 역시도 추리소설적인 관점에서 이 소설을 읽을 수밖에 없었다. 간단히 말해 이 책이 전체적으로 갈팡질팡하다 이도 저도 아닌 경우에 속하는 범작과 졸작의 기로에 놓였다는 것이다. 조금 더 냉정하게 말하자면 팬이 아니었다면 완독을 포기했을 것이다. 애당초 팬을 위해 집필된 듯한 책이었으니 완독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만...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저평가하는 책이 바로 팬 서비스에 치중한 후속작이기에 읽는 내내 작가에게 실망감을 감추기 힘들었다. 



 '상자 속의 결락' 


 책의 구성상 첫 번째로 수록되기에 딱 어울리는 가벼움을 겸비한 이야기였다. 한 마디로 큰 감흥이 없었다. 호타로의 추리력은 여전히 비범했지만 그가 답을 찾을 수 있도록 작가가 던진 힌트가 독자 눈에 뻔히 보여 전반적으로 가벼운 마음으로 읽고 끝낼 수 있는 이야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거울에는 비치지 않아'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캐릭터인 마야카는 이 책의 수록작 중 두 개에서 화자이자 주역으로 등장한다. 다른 고전부원에 비해 미묘하게 비중이 적었던 터라 팬으로서 반가운 부분이었다. 이 이야기에선 왜 마야카가 시리즈 초창기에 호타로를 그토록 삐딱하게 바라봤던 이유가 드러나는데 시간이 좀 오래 걸렸지만 마야카가 자신의 오해를 완전히 바로잡을 수 있어서 보는 내가 다 기분이 좋았다. 마야카의 성실하고 올곧은 자세와 호타로 특유의 타인의 시선에 개의치 않는 면모는 어딘지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그게 사건의 진상이나 추리 장면보다 더욱 인상적이었다. 



 '첩첩 산봉우리는 맑은가' 


 이 책에서 유일하게 애니메이션화됐다고 한다. 에니메이션에서의 그 에피소드도 그렇고 이 수록작도 그렇고 다소 억지로 사건을 전개시키는 느낌이 들어 어딘가 석연찮게 읽혔다. 호타로가 평소답지 않게 주체적으로 수수께끼를 풀려고 했던 동기가 너무 사소하고 의외라 느껴서 그런 걸까? 지탄다는 감동했다지만 나는 유난을 떤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뭐, 이 시리즈에선 그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니긴 하지만... 



 '우리 전설의 책' 


 전편에서 암시했던 마야카의 '만연' 동아리 탈퇴 사유가 드러나는 이야기다. 정말이지 답도 없는 동아리 내의 알력 다툼, 파벌 싸움을 저런 식으로 회피하다니, 상당히 통쾌한 결말이란 생각이 들었다. 전개가 지루했으나 그나마 내가 좋아하는 마야카가 화자로 나와 그런대로 몰입하며 읽을 수 있었다. 



 '긴 휴일' 


 호타로가 에너지 절약주의자가 된 계기가 드러난다. 과거에 모종의 사건으로 인해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는 걸 깨닫는 일련의 과정이 솔직하고 일목요연하게 묘사됐다. 개인적으로 나도 매사에 환멸을 느끼는 면이 있어 호타로의 감정선에 공감이 많이 갔는데 막판에 작가가 호타로의 누나의 입을 통해 '에너지 절약주의'를 택한 호타로를 위로해서 여운이 제법이었다. 그 나이대에 어울리는 사건과 깨달음이 디테일 있게 그려진 것도 깨알 같은 재미를 안겨줬다. 



 '이제 와서 날개라 해도' 


 이야기에 담긴 감성은 좋았지만 위에서 말했듯 지탄다의 일탈이 너무 전조 없이 대두됐고 더군다나 전편에서의 기억이 희미하면 그녀의 고민의 무게가 와 닿지 않는 등 이래저래 불친절할 정도로 뜬금없는 이야기인 지라 생각보다 큰 감흥이 일거나 하지 않았다. 이야기는 좋은데 구성이 별로라... 참 안타까운 경우라 할 수 있겠다. 

넌 앞으로 긴 휴일을 맞이하는 거야. 그러면 돼. 푹 쉬어. 괜찮아. 쉬는 동안 네 심성이 바뀌지 않는다면......

분명 누군가 네 휴일에 마침표를 찍어줄 테니까. - 323~32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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