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골의 꿈 - 하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김소연 옮김 / 손안의책 / 2006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7.5 





 스포일러 : 거의 없음 


 전편 <망량의 상자>보다 한층 더 난해해진 시리즈 3편이다. 돌이켜 보니 <우부메의 여름>은 꽤 괜찮은 입문작이었구나 싶다. 종교의 폐해, 전근대적인 가치관에 시달리는 사람들이란 기본적인 맥락은 그대로인데 취향 좀 타는 일본의 요괴 설화와 짜증날 정도로 울적한 심성의 캐릭터들의 향연, 사건의 가닥이 잡히지 않으면서 형이상학적 얘기만 해대는 전개 때문에 몇 번이고 포기할 생각을 했다. 코믹스로 먼저 접하지 않았더라면 이야기의 반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코믹스는 꽤 괜찮았는데. 

 그렇게 좋은 방식의 독서는 아니라 생각하지만, <우부메의 여름>을 제외한 교고쿠도 시리즈는 시미즈 아키의 코믹스판을 먼저 접하고 원작을 읽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시각적인 정보에 기대지 않고서는 인물들의 장광설을 - 교고쿠도 혼자서 떠드는 1편이 훨씬 나았다. - 견디기 힘들 테니까. 후반부에서 이런 전개가 있으리란 기대 없이 과연 몇 명의 독자들이 이탈하지 않을 수 있으려나? 일본 독자들은 그래도 자국의 요괴 이야기가 나오니 덜 난해할 수 있겠지만 한국의 독자들은 경우가 다르다. 온갖 마니악한 내용들로 점철돼서 이걸 번역한 역자가 우러러 보일 정도다. 


 출연이 상당히 늦긴 했지만, 게다가 입을 떼자마자 이야기를 한참이나 돌려서 말하는 통에 머리에 쥐가 날 지경이었지만 - 교고쿠도는 다 필요한 작업이라고 말하지만 그 말이 나올 때마다 기바슈에 빙의해 교고쿠도의 목을 졸라버리고 싶었다... - 멘탈이 붕괴되는 캐릭터들의 모습과 반전이 드러날 때의 연출 덕에 은근히 읽는 맛이 나쁘지 않았다. 코믹스의 연출이 훨씬 멋들어졌지만 원작도 그에 못지않았다. 이게 무슨 말인가 싶겠지만;; 아무튼 지금껏 쌓아온 수수께끼를 어쨌든 명쾌하게 해결해 추리소설의 구색은 갖춘 것이 참으로 다행으로 여겨졌다. 전편과 마찬가지로 애당초 이런 혼선이 벌어진다는 게 너무 작위적이고 우연에 기댄 감이 적잖았지만 그렇게 문제 삼고 싶지 않다. 이 세상에는 일어날 수 있는 일만 일어나는 법이라고 교고쿠도가 늘상 강조하는 거니까, 그러려니 해야지 뭐. 

 그나저나 이 시리즈를 계속 읽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다음 작품인 <철서의 우리> 상중하 세 권으로 이뤄졌다. 두 권도 벅찬데 세 권이나 이 난해한 세계관을 따라갈 자신이 없다. 사람들이 <광골의 꿈>을 분기점으로 부르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더 읽을 것인가, 그나마 좋은 기억을 안고 이탈할 것인가. 고민 좀 된다. 나는 답을 유보한 채 이 작가의 다른 작품을 읽어보려고 한다. 이 작가는 '교고쿠도' 시리즈 말고도 유명 문학상을 받은 걸출한 작품을 많이 집필했던데 그 중 한 작품을 골라야겠다. 아마 <웃는 이에몬> 아니면 <엿보는 고헤이지>가 될 듯하다. 그 작품들은 괜찮으려나 모르겠네. 이 작품들도 겁난다. 


 p.s 자꾸 코믹스 얘기하는 게 좀 그렇긴 한데, 이 책의 내용을 이해하고 또 까다롭지만 오히려 원작을 초월할 정도로 깔끔하고 인상적인 연출을 선보였던 게 떠올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추천하고 싶다. 시미즈 아키라는 만화가는 정말 대단한 작가가 아닐 수 없다. 어마어마한 독해력을 가졌거나 팬심이 대단하거나, 둘 중 하나거나 아니면 둘 다겠지. 

구제는 항상, 하는 쪽이 아니라 받는 쪽이 문제인 걸세. 사람은 사람을 재판할 수는 없지만, 구할 수는 있을지도 몰라. 그렇게 해서 구원받는다면, 그것 또한 신의 의지겠지. - 하권 23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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