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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 택시 기사의 문화 관찰기 - 백인 사회의 뒷모습
지성수 지음 / 생각비행 / 2016년 6월
평점 :
9.3
지난 번에 읽은 <불편한 미술관>이 명화를 통해 인권 문제를 들여다봤다면, 이 책은 시드니에서 택시 기사로 일하는 저자의 경험담을 바탕으로 한 인권 문제를 들여다본다. 경험을 바탕으로 하되 인문학적 해석도 겸비돼 있어 저자의 몇몇 치우쳐진 발언도 신빙성 있게 읽힌다. 이 책의 문제점이라고 하면 무슨 얘기를 하든 한국에 대한 찬양과 외국, 특히 백인 문화에 대한 환멸로 요약되는 저자의 이분법적인 논조와 결론일 텐데 이는 저자 스스로도 인정하듯 타향살이가 오래 된 탓에, 그리고 실제로 백인 승객들을 상대로 직접 보고 겪은 일들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인 듯하다. 중요한 건 실화가 갖는 무게의 힘과 이런 논조가 나올 만큼 모든 인종이 평등한 사회란 꿈만 같은 것이며 우리는 그 사실을 직시해야 그 꿈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다는 아이러니한 일일 테다.
저자가 말하는 백인들의 어떤 점이 환멸스럽고 이민자로 구성된 나라가 얼마나 위태로운지 등을 무조건 불편하다는 이유로 등한시하면 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 똑같이 당황하거나 혹은 더더욱 다른 인종을 헐뜯으려 할 것이다. 우리나라가 호주나 미국처럼 다양한 인종으로 이뤄진 국가가 될 리 없겠지만 예년에 비해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이 늘어나는 것은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는 보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끼리 어울리고 반목하지 않고 살아가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 특히 단일 민족 운운할수록 그런 노력은 절실하다. 단일 민족도 좋지만 그에 취해 언제까지고 마음의 문을 걸어 잠그면 국제 사회의 감각을 따라가지 못해 고립되는 건 신간 문제일 테니.
아까도 말했듯 직전에 읽은 책 <불편한 미술관>과 여러모로 대비되는 책이었는데, 그 책의 내용도 좋았지만 어디까지나 명화를 통해 이야기를 할 뿐이라 계몽적인 발언들이 상당 부분 호소력이 옅게 느껴진 반면에 이 책은 일부 편향되거나 꼰대스러운 부분이 없잖음에도 실화가 갖는 힘과 저자의 필력 덕에 훨씬 그럴싸하게 다가왔다. 직접 경험하지 않았기에 알 수 있는 것도 있다지만 그래도 직접 겪은 사유와 깨달음의 위력은 무시하지 못하겠다. 저자의 깨달음이나 작중 내용이 뭐 대단히 신선하진 않았지만, 인종에 관련된 스테레오타입이란 비판을 크게 개의치 않고 '모두가 평등한 사회'의 이면에 있는 현실적인 어려움을 적나라하게 얘기하는 자세는 분명 신선했다.
이런 태도는 저자가 단순히 연세가 있으셔서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기 보다는 연륜이 쌓여 눈치를 보는 것이 부질없다는 걸 일찍이 깨달은 덕분으로 여겨졌다. 같은 말인 것 같다고? 전자는 그냥 나이만 먹은 거고 후자는 그저 나이만 먹지 않았다는 차이가 있다. 어쩌면 타향살이, 그것도 호주라는 선진국에서 - 저자는 선진국이라는 호칭을 그리 달갑게 듣지 않겠지만. - 지내왔기에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것인지 모른다.
책의 내용 중에 한국 사회는 부모나 가족들이 나서서 두들겨 패서라도 훈육시키는 반면 호주 사회는 자유롭게 방임하다가도 사회 부적응자, 특히 알코올 중독자에 한해서는 가차 없이 외면한다는데 내가 봤을 때는 이런 내용을 다룸에 있어서 두 사회의 장단을 모두 조명한 저자가 두 사회의 특성을 모두 갖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엄연히 백인이 주류인 호주 사회를 비판하면서 타인에 대한 과도한 간섭은 지양하고 한국 사회의 우물 안 개구리 같은 폐쇄성을 씹으면서도 호주의 냉정하고 정 없는 분위기에 불편함을 느낀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완벽한 사회는 존재하지 않으며 그렇기에 어느 한쪽에 일방적인 찬양 혹은 비난을 보내는 건 부당하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저자의 논조가 일관되게 백인들의 문제점을 꼬집는 등 이분법적인 것 같으면서도 한 꺼풀 더 들여다보면 마냥 그렇지도 않아서 읽으면서 계속 정신을 차려야 했다.
후반부에 집필을 급하게 마무리 짓는 감이 있던 걸 제외하면 나무랄 게 없는 책이었다. 마지막 소제목인 '우리는 남이다'는 저자가 이 책을 집필한 이유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데, 우리는 남이지만 그럼에도 어울릴 수 있다는 일종의 희망을 표현한 제목이지 않은가 싶다. 반대로 우리는 남이 아니라고 말하면 그 괴리감에 더 어울릴 수 없음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변호사야말로 모두 지옥 갈 놈들이라고 하지만 나는 지옥이야말로 변호사가 많이 필요한 곳이라고 본다. 자기가 지옥에 오게 된 것이 부당하다고 변호를 요청할 사람이 얼마나 많겠는가? - 184p
무슬림 이민자가 많은 나라의 정치 지도자들은 겉으로는 "우리가 남이가?" 하면서도 속으로는 "우리는 남이고 말고..." 하면서 감시와 견제를 강화한다. 반면 무슬림은 겉으로는 "우리는 남이 아니지 않은가?" 하면서도 속으로는 " 우리는 남인데..." 하고 중얼거린다. 이처럼 양 편이 모두 어색한 연기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이 국제사회의 현실이다. - 198~19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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