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과 건축으로 걷다, 스페인 - Spain Art Road
길정현 지음 / 제이앤제이제이 / 2020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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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스페인에 방문하고 싶은 이유가 한둘은 아니지만 그 중에서도 미술과 건축 등 스페인의 예술을 직접 눈으로 경험하고 싶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이 책은 비교적 가벼운 문체로 이뤄졌으나 진솔하고 잡학다식한 면모가 다분한 작가의 여행기였는데 읽는 내내 충분한 사진과 특히 종교에 대한 제법 해박한 지식이 돋보였다. 간혹 단어로 끝을 맺는 번역투의 문장은 약간 거슬렸으나 전체적으로 부담 없이 읽혀 내려가 오히려 정보 습득이 잘 된 편인데 이는 가끔 각 잡고 쓴 전공서는 다 읽었는데도 내용의 반도 이해하지 못한 경우가 허다한 것과 대조적이다. 이 문체를 다시 접하기 위해서라도 저자의 다른 책도 읽어볼 듯하다. 

 작가 본인은 예술 전공은 아니라고 미리 밝혀두지만 경험이 풍부해서 그런지 그래도 하나의 작품이나 어떤 작가에 대해 얘기할 때 꽤 많은 이야기를 쏟아낸다. 뭐, 여기까지야 그렇다 하더라도 작가가 또 종교인이라 그런지 내가 무심코 지나칠 법한 성당이나 벽화에 대해선 생각보다 자세히 서술하고 사유한다. 글을 써내려가기 전, 과연 이곳이 종교인이 아닌 분들에게 자신만큼 특별한 의미가 있을까 자문해보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줏대 없는 것만 아니라면 독자를 의식하는 글은 언제나 환영이다. 게다가 이런 솔직함은 작가의 글이 조금은 덜 전문적이더라도 왠지 더 신뢰하게 된다. 


 책에는 크게 바르셀로나로 대표되는 카탈루냐 지방, 마드리드와 그 근교를 다룬 카스티야 지방, 그라나다와 세비야를 아우르는 안달루시아 지방, 그리고 마지막의 스페인 식문화를 다뤘다. 식문화는 엄연히 미술과 건축은 아니므로 좀 튀는 감이 있으나 애당초 이 책을 여행기로 상정하고 읽은 만큼 유익한 정보로만 다가왔다. 

 개인적으로 사람들이 많이 찾는 바르셀로나보다 마드리드가 더 궁금했는데, 마드리드는 수도치고 볼거리가 적다지만 내 관심사는 프라도 미술관,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에 있으니 도시로서의 매력 어쩌구 저쩌구 하는 건 내겐 아무래도 좋을 일이다. 그리고 막상 가면 마드리드도 바르셀로나에 비해 임팩트가 좀 떨어져 보인다 뿐이지 엄청나게 매력적인 동네일 것이다. 

 아무튼 고야, 벨라스케스, 엘 그레코로 대표되는 스페인 중세 화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프라도 미술관,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감상할 수 있는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 말고도 호아킨 소로야라는 스페인에서 흔치 않은 인상파 화가를 소개받은 것도 좋았는데, 이 책의 표지가 바로 그 소로야의 작품인 것 같다. 그의 작품이 소장된 소로야 미술관은 작은 미술관이라는데 그렇다니 더 궁금하다. 언젠가 찾아가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스페인에 카탈루냐, 카스티야, 안달루시아 지방만 있는 건 아닌데 미술, 건축으로 키워드를 한정 짓다 보니 발렌시아나 바스크 지방은 아예 다뤄지지 않았다. 키워드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일 테지만 아무튼 혹시 스페인의 모든 지방을 다루리라 생각한 분들이라면 이 점 참고하시길. 명심할 것은 이 책은 스페인의 이모저모가 아닌 어디까지나 작가가 직접 방문한 여행지에 관련해서 쓴 글들이 수록됐다는 것이다. 때문에 완벽한 글은 아닐지언정 현장감 넘치는 글로 탄생됐다. 

 난 이만하면 충분하지 않은가 싶었다. 오히려 직접 발로 밟지 않아서 알 수 있는 정보도 있다지만 여행기는 역시 현장감이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여행이 고픈 나 같은 독자는 기대한 만큼의 대리 만족을 할 수 있었다. 미술관 내 촬영이 불가해서 작가가 사진으로 싣지 못한 몇몇 그림들만 제외하면 말이다. 그 그림들이야말로 직접 방문해서 봐야 할 일이지만 과연 그 날이 언제 올는지... 요번에 마드리드가 코로나로 아주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고 하니 향후 10년 안에 방문할 수 있을지도 불확실하다. 거참 비관적이구만;; 

수많은 예술가들은 서로에게 영감을 주고 또 영감을 받으며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낸다. 많이 보고 많이 경험하는 것은 창작에, 더 나아가 삶에 좋은 자양분이 된다는 것, 이 또한 우리가 여행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142p



고야의 작품이 대단한 것은 맞으나 고야라는 인물 자체가 존경스러운 인물은 아닐 수도 있으며, 위대한 화가가 꼭 위대한 인간일 필요는 없다는 점을 알고는 있지만 우리는 은연중에 두 말이 동의어이기를 바라는 것 같기도 하다. 유명한 연예인에게 바람직한 사생활을 기대하고 능력 있는 기업인은 인간성도 좋길 바라는 것처럼. 우리는 그들이 그들의 전문 분야에서뿐 아니라 그 외의 방면에서도 본받을 만한 인물이길 바라지만 사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으며 그렇기에 고야도 그저 혼돈의 시대를 살아간 나약한 한 명의 인간이었을 뿐임을 다시 한 번 상기해보았다. - 147~14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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