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 4 (무선) 해리 포터 시리즈
조앤 K. 롤링 지음, 최인자 옮김 / 문학수첩 / 200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9.8 





 스포일러 있음 


 시리즈 대망의 마지막 이야기는 두 번째로 읽어도 극적으로 읽혔다. 매번 호그와트에 돌아가서 수업을 받는 반복적인 전개가 아닌 것도 신선했고 위기가 끊이지 않는 완급 조절도 절륜했다. 흔히 '죽음의 성물'에 대해 얘기할 때 스네이프의 정체와 볼드모트의 죽음을 주로 언급하지만 내가 봤을 땐 후반부 이전의 흥미진진한 모험담도 자주 언급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학교가 아닌 장소를 본격적으로 조명하는 롤링의 세계관 확장도 흥미로웠고 캐릭터를 퇴장시키는 것을 망설이지 않는 단호함엔 혀를 내두르게 됐다. 중간 중간 궁금증을 자아냈던 덤블도어의 과거나 죽음의 성물도 이야기에 인상적인 역할을 해냈다. 끝까지 찌질한 모습을 보인 론이 성장하는 모습이나 네빌을 주축으로 모인 불사조 기사단이 호그와트에서 볼드모트와 치른 전쟁 등 이전 작품들과 통일감이 있던 것도 좋았다. 법적으론 미성년자에서 벗어났다지만 해리와 친구들은 아직 성장의 여지가 남았다는 것, 그리고 이야기의 대미는 역시 호그와트에서 장식돼야 마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나 역시도 '죽음의 성물'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으로 스네이프의 정체와 볼드모트의 죽음을 들고 싶다. 볼드모트의 죽음에 대해 먼저 말하자면, 나는 개인적으로 볼드모트와의 결투가 마무리되는 방식이 제법 신선했다. 무력의 크기로 결판이 나는 것이 아니라 전편의 결말에서 이어져 온 무수한 떡밥을 회수해 심플하고 쾌감 넘치는 결말이 취향에 맞았다. 약간 초라하고 맥이 빠지는 결말일 법했으나 모든 면에서 덤블도어보다 몇 수 아래였던 볼드모트에게, 죽음을 두려워해 무려 7개로 영혼을 쪼갠 볼드모트에게 애당초 승산 따윈 없었음이 단적으로 드러난 대목이 아닌가 싶었다. 물론 볼드모트는 꽤 사악하고 위협적이었지만 '신비한 동물사전' 시리즈의 떡밥으로 등장한 그린델왈드와 소싯적의 덤블도어에 비하면 하수에 지나지 않음을 7권에서 뚜렷하게 드러났다. 막판에 이르러선 해리에게 실컷 조롱이나 당하는 꼴이라니...ㅋ 하긴, 결과적으로 살았지만 죽음을 각오했고 실제로 살인 주문에 정면으로 마주하기까지 한 해리의 상대가 될 턱이 없었다. 이처럼 사람의 강함은 온전히 무력의 크기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듯한 작가의 주장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롤링이 지금이야 설명충이니 뭐니 하면서 갖은 비판을 면치 못하는 실정이지만, 확실히 이 작가가 펼친 세계관은 정말 방대하고 매력적인 건 부정할 수 없다. 시리즈의 본편만으로 다 묘사가 되지 않아서 영화까지 나온 걸 보면 알 수 있다. 그 영화 때문에 오히려 망한 것 같지만 그래도 이 본편만은 정말 전설이라 생각한다. 특히 내가 가장 고평가하는 부분은 반전을 연출하는 작가의 솜씨인데, 내용이나 복선도 뛰어나지만 이 작품 '죽음의 성물'에선 그 반전에 담긴 주제의식도 좋아서 유달리 놀랍고 감동적으로 와 닿았다. 적어도 이 작품의 반전에 한해서 롤링은 찬사를 받아 마땅하다. 

 스네이프는 이 시리즈에서 가장 매력적이고 복합적인 캐릭터기도 하다. 첫 만남부터 최악의 인상이 남은 탓인지 해리는 줄곧 스네이프를 적대적으로 바라봤다. 그렇기에 해리의 시선을 너무 맹신해선 안 될 테지만, 객관적으로 봤을 때도 스네이프는 마법 실력은 제대로지만 호인은 결코 아니고 교사로서도 적합한 인물은 아니었다. 반전을 알기 전이나 알고 난 뒤나. 그가 용기 있는 이중 스파이고 또 릴리를 향한 절절한 사랑 때문에 많은 부분이 미화되는 측면도 있는 것 같다. 시리즈 내내 해리가 속한 그리핀도르와 자신이 맡은 슬리데린을 대놓고 차별 대우하는 것이 대표적인데, 이중 스파이를 위한 연기라고 하기엔 분명 지나친 구석도 - 그에 대해 뉘우치거나 스파이 행세에 멘탈 붕괴를 겪는 장면이 부족한 탓인 듯하다. - 없잖았다. 다시 말하지만 덤블도어의 말마따나 사랑을 경시하는 볼드모트에 대적하기 위해 스네이프 같은 로맨티스트의 역할은 작품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꽤나 중요했지만, 한편으론 결국 그 사랑이 없었다면 스네이프는 반전 같은 건 일어나지 않고 전형적인 죽음을 먹는 자로 남았을 것이란 얘기다. 


 내게 큰 감명을 준 부분은 스네이프가 스파이라는 것이 아니라 그런 스네이프에게 건넨 덤블도어의 말이었다. 우리(호크와트)가 학생들을 너무 빨리 분류하는 것 같다고...... 

 덤블도어의 말대로 확실히 호그와트는 입학한 학생들을 너무 일찍부터 편가르기 하는 것 같다. 머글보다 전근대적인 마법사 세계에서 이를 캐치한 사람이 무척 적은 것 같은데, 인간의 성정은 타고나는 동시에 자라면서 체득하는 것이기도 하다. 호그와트의 네 기숙사 중 노력으로 뒤집을 없는 요소는 슬리데린의 순수 혈통 여부다. 나머지 기숙사가 내세우는 용기, 지성, 정의는 교육자가 학생에게 어떻게 개입하느냐에 따라 발현 여부가 완전히 달라지는 항목들이다. 그런데 호그와트는 이 네 기준을 토대로 학생들을 편가르기 한다. 그렇게 편이 갈라진 학생들은 자연스레 서로 적대하게 된다. 경우에 따라선 증오하게 되고 이 증오는 대물림되기까지 한다. 

 사람에겐 소속감이나 대항 정신을 갖는 것 역시 중요하지만 이 기숙사 제도의 문제점은 기숙사에 들어가는 기준이 대체로 인간 성정에 밀접하다는 것이다. 가령 용기 있는 사람은 용기 있게 태어났으므로 언제까지고 용기 있을 테니 그리핀도르 기숙사에서 끼리끼리 어울리라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 그리고 소속 기숙사 학생은 자신이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도취돼 다른 기숙사 학생을 자신도 모르게 깔보기 십상이다. 다른 기숙사도 다를 바 없고 슬리데린은 제일 심각하다. 순수 혈통끼리만 모이는 것도 문제지만 다른 기숙사로부터 적대를 당하는 것은 더욱 심각하게 여겨야 할 문제다. 학생들보고 두루 두루 어울리라고 권하긴커녕 가치관의 대립을 어린 시절부터 조장하는 것은 호그와트 기숙사 제도의 폐해가 아닐 수 없다. 이 지점이 작중에서 가장 대표적으로 드러난 게 볼드모트를 비롯한 순수 혈통 우월주의자인 죽음을 먹는 자들의 등장, 그리고 스네이프가 어린 시절부터 릴리와 머로더즈 4인방과 친해지려야 친해질 수가 없는 상황이다. 


 이미 혼혈인 스네이프가 슬리데린에 들어간 것이나, 그런 스네이프가 '예정된 수순'대로 죽음의 먹는 자가 되어 재능 덕분에 볼드모트의 신임을 얻는 것, 하지만 릴리를 향한 사랑으로 처음엔 탐탁찮던 이중 스파이 노릇을 톡톡히 해내고, 그 진실의 내막을 해리를 포함하여 덤블도어의 지인들 그 누구도 짐작할 생각조차 안 한 것 등 기숙사로 촉발된 마법사들의 편 가르기, 그리고 마법사 모자의 기숙사 선택을 맹신하는 마법사들의 믿음은 자못 심각하다. 기숙사는 그저 배경일 뿐인데, 그리고 태어날 땐 어땠는지 상관없이 사람은 누구나 변하는 법인데 마법사들은 모자가 정해줬으니 서로 대적할 운명이란 생각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이런 비극은 마법사 개개인의 탓이라기보단 오래도록 이어져 온 구조적인 문제라 봐야 하겠지만...... 

 작중에서 마법사와 머글이라 분류하긴 하지만 결국 마법사도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다. 이 점이 이 작품의 현실적인 부분에 큰 기여를 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설정과 통찰력의 현실성은 '해리포터' 시리즈가 여타 판타지 문학과 차별화되는 강점이라 생각하는데 마법사도 인간이라는 통찰은 곧 순수 혈통의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마법사가 귀하다는 작품의 표면적인 주제의식과도 일맥상통하게 읽혔다. 마법사도 결국 인간이므로 머글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편을 갈라 전쟁도 불사한다는 게 씁쓸한 대목이지만 한편으론 가상의 세계관 속의 캐릭터들이 어느 정도 평화를 이룩하는 걸 보노라니 꽤나 힐링이 됐다. 엄밀히 말해 '해리포터'가 동화는 아니므로 전후에 모든 일이 척척 잘 풀리진 않았겠지만 이 정도면 매우 희망적이지 않은가. 


 원래 이 책을 다 읽고 이제 <반지의 제왕>에 도전해볼까 생각했는데, 찾아보니까 이미 완결이 난 이 시리즈의 후속편이 있다기에 그 작품까지 읽어봐야 할 듯하다. 특이하게 그 작품은 희곡이라는데 희곡이든 뭐든 단일 작품으로 완결이 났다니까 기대가 된다. 한 편 한 편이 단일 작품다운 완성도가 부족했던 '신비한 동물사전' 시리즈에 비하면 희곡은 기대해봐도 되겠지. 아무튼 작가가 만든 세계관이 워낙 방대해서 계속해서 이야기를 접할 용의는 있다. 설정 오류만 없다면 후속작은 얼마든지 환영이다. 

 <해리 포터와 저주받은 아이>. 과연 볼드모트 사후에 마법 세계의 혼란은 잘 처리됐을지 아니면 또 개판이 됐을지 확인해봐야겠다. 그 다음에 이 시리즈의 전체적인 감상을 풀어낼 예정이다. 

자네도 알다시피, 나는 사실 우리가 학생들을 너무 일찍 분류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네...... - 4권 183p



죽은 자들을 불쌍히 여기지 마라, 해리. 산 사람들을 불쌍히 여겨라. 그중에서도 사랑 없이 사는 사람들을 가장 불쌍하게 여기렴. - 4권 25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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