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의 수법 - 살인곰 서점의 사건파일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문승준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0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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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표지에 장편소설이라 적혀 있었음에도 나는 이 작품이 영락없이 단편집인 줄 알았다. 국내에 소개된 와카타케 나나미의 작품이 거의 단편집이었고 특히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는 전부 단편집이었기 때문에 이 작품도 당연히 단편집이라 생각했다. 나중에 알아보니까 이 작품보다 <녹슨 도르레>라는 장편소설이 먼저 출간됐던데... 아무튼 요즘 들어 이 작가의 작품이 많이 출간돼 좀 얼떨떨한 기분이 든다.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과 '하자키' 시리즈로 이미 국내에는 약발(?)이 다한 작가라 여겼는데 이렇게 다시 흥하고 있어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이제 <나쁜 토끼>의 출간을 기대해도 되는 건가.

 와카타케 나나미의 작품 중 가장 방대한 분량을 자랑하며 특히 초장에 수록된 등장인물 소개는 읽기 전부터 괜히 긴장하게 만들었다. 단편의 대가가 이토록 방대한 분량의 장편소설을 쓴다는 게 상상이 잘 안 갔는데 다 읽고 나니 이 작가가 장편을 많이 안 썼다 뿐이지 오히려 단편보다 더 잘 쓰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려 14년 만에 나온 시리즈의 정식 후속작인 만큼 작가가 작정하고 써내려갔다는 느낌을 받았다. 20년 전에 가출한 딸을 찾아달라고 의뢰를 받으며 탐정으로 복귀하는 이야기가 어떻게 확장되는지 엿볼 수 있던 게 흥미로웠던 작품인데 이 정도면 가히 성공적인 복귀작이 아닌가 싶었다.


 <이별의 수법>이라는 묘한 제목의 이 작품은 40대에 접어든 하무라 아키라가 등장하면서 짠내를 풍기며 시작된다. 전에는 잘 벼려진 칼날처럼 날카롭고 시니컬한 하무라 아키라가 이제 나이를 먹어 노안과 무릎 통증에 시달리다니... 더욱 짠한 것은 그녀가 이번 작품에서 전작과는 비교를 불허하는 고생을 겪는다는 것이다. 고생도 고생이지만 무슨 머피의 법칙인 양 불행도 끊이지 않던데 헌책을 정리하다 바닥이 무너져 추락하고 그때 추락하면서 집에 매장된 백골하고 박치기를 하지 않나... 하여튼 처음부터 말도 안 되는 고생은 다 겪게 된다. 심지어 나중엔 하무라 아키라는 불사신인 건가 싶을 만큼 스펙터클한 일까지 겪는다. 그런데 하무라 아키라 입장에선 그런 육체적 고통보다도 정신적 고통이 더 치명적이었을 듯하다. 이미 산전수전을 겪은 프로 탐정인 하무라 아키라가 정신적으로 타격 받을 일이 뭐가 있을까 싶겠지만, 오히려 그렇게 스스로를 과신했기 때문인지 이번 작품에선 유독 감정에 흔들리거나 실수를 남발하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에서 다루는 사건의 스타일, 전개되는 스타일은 어딘지 내 취향과 맞지 않았다. 뭐, 이 작가의 작품이 대부분 그런 편이어서 새삼스럽진 않았다. 스포일러일지 모르겠는데 비슷한 전개 방식으로 스티그 라르손의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이 떠올라 그렇게 참신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봤을 때 어지간히 작가의 팬이거나 시리즈의 팬이 아니라면 스토리만으로 만족할 수는 없지 않을까 싶었다. 대신 이 작가의 시니컬한 사고방식, 악의를 낯낯이 묘사하는 작풍, 하무라 아키라라는 캐릭터의 심리 묘사와 성장 과정에 집중하면 기대 이상의 만족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본의 아니게 실수를 연발해 독자들과 자기 자신까지도 당혹스럽게 한 하무라 아키라는 전에 없이 자책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의 최후반부에서 어떤 연유로 탐정업에 다시 종사하게 되는데 이 부분이 무척이나 폭소를 유발했다. 폭소를 유발한 부분이 이 작품의 제목과 크게 연관이 있는데, 개인적인 얘기지만 이렇게 대충 지은 듯하지만 있어 보이면서 작품 내용과 아주 따로 놀지 않는 제목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이 작품, 정확히는 시리즈의 주인공 하무라 아키라의 아이러니한 운명을 확실히 강조해준 게 인상적이었다. 하무라 아키라가 아무리 피하려고 해도 불행한 사건들이 그녀를 알아서 찾아가는 것이 꼭 운명의 장난처럼 느껴졌다. 마치 신이 존재하는데 그 신이 하무라 아키라가 탐정으로서의 재능을 썩히는 걸 아깝게 여겨 일부러 시련을 안기기라도 한 것처럼 느껴졌달까. 그래서 그녀가 필요 이상으로 이리 휘둘리고 저리 휘둘릴 수밖에 없었겠지. 그녀가 주체적으로 탐정업을 하는 이상 불행을 최소한 줄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 작품의 결말이 씁쓸하면서도 폭소를 유발한 것이리라.

 내 취향이 아닌 작품이라 했지만 분량이며 깊이가 남다르기에 나중에 한 번 더 읽게 될 것 같다. 그전에 시리즈의 다음 작품인 <조용한 무더위>와 <녹슨 도르레>도 읽어봐야지. 만약 이 두 작품을 읽기 전까지 <나쁜 토끼>가 출간된다면 그 작품을 먼저 읽을 것이다. 아까도 말했지만 작가의 작품이 출간되는 기세를 보면 <나쁜 토끼>의 출간은 정말 머지않은 듯하다. 이번 생에 가망이 없어 보였던 일의 불씨가 다시 살아나니까 딱히 작가의 팬이 아님에도 흥분을 감출 수 없다. 못해도 1년 안에 출간하지 않을까 싶은데...


 여담이지만 시리즈 2부에 해당하는 '살인곰 서점의 사건파일' 시리즈가 제법 흥한 덕인지 올 초엔 <하무라 아키라>라는 제목의 드라마도 방영됐다. 총 7편으로 구성된 그 드라마는 시리즈의 1부에 해당하는 내용이 6편을 차지해 2부의 내용은 거의 없다시피 했는데 - 추측하기로 딱 한 편이 <조용한 무더위>의 표제작을 드라마로 옮긴 듯하다. - 내가 봤을 때 2부의 작품이 꽤 많이 출간된 만큼 드라마 2기도 충분히 나올 것 같다. 특히 이 작품 <이별의 수법>만으로도 드라마 한 편을 제대로 뽑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코로나가 종식된다면 충분히 기대해봐도 좋을 것 같다. 대체 코로나가 종식되는 때가 언제 올는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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