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인트 (반양장) - 제12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89
이희영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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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아이를 버리는 부모가 많아진 어두운 미래, 국가는 버려진 아이들을 키우고 그렇게 키워진 아이들은 NC(National Children)라는 꼬리표가 달리게 된다. NC라고 쓰고 '부모한테 버림받은 아이들', '부모 없이 자란 아이들'이라고 읽는 이 꼬리표를 우려한 국가는 아이들에게 직접 부모를 고를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한다. 부모 면접(PArent's INTerview)의 앞글자만 따온 '페인트'라고도 불리는 이 면접은 아이들의 판단을 절대적으로 우선한다.

 부모 면접은 아이들이 또 부모한테 버림받아선 안 된다는 일념에 따라 굉장히 엄격한 규칙 안에서 진행된다. 아이와 어른의 위치가 전복된 듯한 이 기묘한 면접 구조는 읽기 전부터 흥미를 자극시켰다. 막상 본편을 보니까 적잖은 사람들이 부모 면접의 의의가 무색해지게 만드는 선택을 많이 하던데 이런 쓴웃음 나오는 부분이 무척 재밌었다. 사회가 그럴싸한 제도나 대책을 내놓아도 사람들은 곧이곧대로 따르긴커녕 오히려 허점을 발견하고 본인들 입맛대로 재구성한다는 묘사가 제법 현실적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주인공의 연령대가 고등학생기도 하고 그 나이까지 입양을 거부하는 캐릭터라 그랬는지, 작품의 환상을 내다버린 듯한 설정이며 염세적인 가치관이 매력적이었다. 물론 마냥 염세적인 작품이었던 건 아니지만.


 어떤 사람들이 부모 면접의 의의를 무색하게 만드는지 예로 들어보겠다. 가령 국가로부터 얻는 혜택에 눈이 멀어 NC 아이들을 입양하려는 사람들이라든가, 아니면 NC 출신 아이들은 이대로 입양되지 않고 성인이 되면 NC 출신이란 꼬리표를 달고 사회에 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 너무 불안하니까 아무 어른이나 붙잡고 NC를 나가려는 아이들을 꼽을 수 있겠다. 이들의 선택과 행동은 개인적으로 별로 동의하고 싶지 않지만 어느 정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본다. 진실로 서로 의지가 되는 부모 자식 관계를 우선하기엔 사회 분위기가 너무 삭막해 이해관계를 먼저 따지게 되는 상황이란 것과 한편으론 전통적인 부모 자식의 유대감은 이제 낡을 대로 낡아서 새로운 가치관이 당연히 필요한데 작중 기준으로 과거 사람인 내가 그 새로운 가치관을 받아들이지 못할 뿐인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렸을 때부터 이런 광경을 주위에서 접하고 또 본인이 직접 겪을 뻔한 적이 많았는지 주인공 제누 301은 시종 부모 면접에 삐띡하게 임한다. 나이도 적지 않은데 입양되길 거부하다가 이대로 NC 꼬리표가 떼지 못하는 거 아니냐고 우려한 NC의 가디(가디언의 줄임말)들은 더욱 제누 301을 위해 면접을 주선하지만 그럴수록 악순환은 반복될 뿐이다. 제누 301은 비인간적인 본인의 이름조차 애착을 가질 정도로 이 환경에 익숙해졌고 그를 위한 어른들의 노력은 다 뻘짓으로만 느껴진다. 그런 상황에서 제누 301은 어떤 부부에게 흥미를 갖게 된다. 면접을 보러 왔다는 그 부부는 누가 봐도 준비도 미흡하고 자격도 없어 보였지만 제누 301은 그들의 가식 없는 모습에 호감을 느낀 것이다.


 면접에서의 가식 없는 모습이라고 하니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보면 10년 주기로 가석방 심사를 받는 죄수 레드의 태도 변화가 떠올랐다. 10년차 죄수 때는 가석방하고 싶은 마음이 앞서 아무말이나 하고 20년차 때는 체념을 한다. 시간이 흘러 30년차가 돼서 면접관도 경어를 쓸 정도로 늙어버린 레드는 '본인이 가석방될 준비가 됐다고 생각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길게 답한다. 아무런 가식도 미련도 없어 보이는 그의 대답에서 진정성을 느꼈는지 얄궂게도 레드는 가석방되고 만다. 이미 감옥에 길들여졌던 레드는 그렇게 강제로 사회로 방출됐고 만약 앤디와의 약속이 없었더라면 끝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채 자살을 택했을 것이다.

 부모 자식 관계가 반드시 혈연으로 맺어진다는 것도 완전 옛말인 만큼 본작에서처럼 아예 국가 차원에서 면접을 보게 하는 제도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작중에서의 묘사에 거의 근접한 나라가 우리나라인 것 같아 - 한국이 고아들의 나라로 유명할 만큼 입양을 많이 보낸다니까... - 이 작품처럼 부모 자식 관계의 정의를 생각하게 되는 작품은 꽤나 중요하지 않은가 싶었다. 서로가 서로의 가족이 될 자격은 무슨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는가, 그 자격이란 것에 합당한 기준은 무엇이며 어떻게 얻을 수 있고 또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 등 우리가 돌아보지 않았던 문제에 대해 되돌아보게끔 질문하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읽은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페인트>는 이래저래 허를 찌르며 할 얘깃거리도 방대해 보이는 설정에 비해 스토리 라인은 단선적이고 좋은 부모상, 나쁜 부모상에 대한 언급이나 묘사가 피상적인 감이 있어 기대보다 아쉬웠던 작품이었다. 그래도 결말이 좋아 끝인상은 나쁘지 않았는데, 제누 301의 말마따나 부모 자식 중 한쪽만 일반적으로 자격이나 희생이 요구되는 불평등한 잣대로는 좋은 가족 관계는 형성될 수 없다고 역설한 게 인상적이었다. 전개가 지루해 그리 짧지도 않은 분량임에도 결말의 임팩트가 살짝 묻히는 감이 있었지만......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나 통찰 없이 사회 현상에 맞춰 제도만 내놓아선 미래는 좋아지지 못한다는 듯한 주제의식도 인상적이었다. 작품에선 왜 부모들이 자식을 버리고 왜 부모 없는 자식들을 우리는 경계하는지 명확히 짚어내지 않지만 막판에 제누 301의 선택의 의의는 작품의 모든 여백을 메꾸고도 남았다. 자신의 예상치 못한 선택에 의아하는 사람들에게 제누 301이 NC 출신이란 꼬리표를 단 사람이 보란 듯이 사회에 적응하고 살아남아야 NC라는 꼬리표 자체가 사라질 것이란 말하는 장면은 확실히 멋있었다. 더 이상 부모 자식의 관계가 이전처럼 돌아갈 수 없는 세상인 데다가 자신이 살아온 집을 사랑하는 제누 301이기에 가질 수 있던 포부라 더 의미가 있었다.


 이런 포부를 가진 제누 301은 약속한 대로 자신이 마지막으로 면접을 봤던 부모들과 나중에 사회에서 만나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이며, <쇼생크 탈출>의 레드와 달리 어떻게든 사회에 적응하고 살아남아 NC라는 꼬리표를 없애는 데 일조할 것이다. 그 꼬리표를 혼자 힘으로 없애긴 힘들 테지만, 제누 301 정도라면 '부모 없이 자랐다. 그래서 뭐? So what?'이라 일관해 사회를 당황시키기에 충분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당황한 사회는 어떤 식으로든 변화할 것이다. 난 그 변화가 좋은 쪽이리라 믿는다.

세상 어떤 부모도 미리 완벽하게 준비할 수는 없잖아요.

부모와 아이와의 관계, 그건 만들어 가는 거니까요. - 91p




왜 부모에게만 자격을 따지고 자질을 따지세요? 자식 역시 부모와 잘 지낼 수 있는지 꼼꼼하게 따지셔야죠. 부모라고 모든 걸 알고 언제나 버팀목이 되어 줄 수 있을 거라는 환상은 버리라고 하셨잖아요. 부모라고 무조건 희생해야 하는 시대는 지났다고요. -18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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