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크, 쉴레, 클림트 - 표현주의의 대가들 아티스트 커플
김광우 지음 / 미술문화 / 2016년 4월
평점 :
품절


9.1







 뭉크와 클림트와 관련된 책은 몇 권 읽었지만 에곤 쉴레는 또 처음 접해보기에 의미가 있는 독서였다. 22,000원이라는 가격이 아깝지 않은 종이의 질과 더불어 걸작에서 습작까지 골고루 살펴본 저자의 디테일한 탐구가 인상적인 책으로 책에 수록된 그림이 엄청나게 많아 눈이 즐거웠던 책이다. '사물을 보이는 것이 아닌 자신이 보는 대로 그린다'는 표현주의의 원칙은 오늘날에 있어서 아주 기본적인 태도인 것 같지만 이런 스타일을 처음 고안하고 선보이고 세상에 정착시킨 세 거장의 작품을 여러 공통된 주제 안에서 살펴보니 신선한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금방 말했듯 뭉크와 클림트와 관련된 책은 여러 권 읽어서 그 화가들의 삶이나 작품 세계는 딱히 새롭진 않았지만 쉴레까지 다루는 건 처음 읽어봤기에 당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중반에 이르는 유럽 회화의 변천사가 보다 입체적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같은 나라 출신인 클림트와 쉴레라면 몰라도 뭉크까지 한 카테고리에 묶는 게 약간 생소할 법도 한데, 실제로 뭉크는 프랑스나 독일에서 유학은 했어도 오스트리아 화가와 크게 교류가 있었던 적은 없다. 다만 세 화가 모두 비슷한 시기에 이름을 떨쳤으니 서로의 작품과 명성을 통해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짐작만 하고 있는데 이는 충분히 나올 만한 가정이 아닌가 싶다. 물론 근본적으로 다른 스타일을 구사하지만 다들 굉장히 도전적인 화풍과 신념을 갖고 있었고, 특히 쉴레는 예술과 외설의 논란을 얘기할 때 빠질 수 없는 화가인 만큼 오늘날과 그 당시의 미적 기준의 차이를 살펴볼 수 있는 것도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지금이라면 세 화가의 스타일은 외설은커녕 논란거리도 될 수 없겠지만 - 그런데 쉴레의 그림은 분명 낯뜨거운 요소가 많긴 하다. 직접 보면 안다. 나는 이 책을 지하철에서 읽고 있는데 눈치가 좀 보이더라;; - 100년 전엔 사정이 달랐다. 쉴레는 특유의 나르시시즘과 과감한 포즈의 자화상 때문에 여러 번 곤욕을 치뤄야 했는데 심미안이 있는 판사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감옥에 몇 십 년을 썩을 뻔했다고 하니 그냥 해프닝으로 넘길 만한 일은 아니었다. 정말이지, 지금으로선 이런 논란으로 예술가가 감옥에 간다는 게 상상이 안 가는데... 예술가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사회 분위기는 위험천만하게 들리지만 한편으론 한 예술가의 작품 활동이 도시나 나라 전체를 들썩이게 했다는 게 조금 부럽기도 했다. 시대 분위기를 떠나서 그냥 쉴레가 시대를 앞서가는 뛰어난 예술성의 소유자였기에 가능했던 일일 것이다.

 다행히 쉴레는 예술가로서의 기질이 다분하고 자신감도 높았던 사람이라 개의치 않고 당당하게 활동했다고 하는데 이런 사람이 스페인 독감 때문에 단명했다는 게 아쉬울 따름이었다. 클림트도 그 병으로 죽었고 뭉크도 하마터면 명을 달리할 뻔했는데 - 모르는 사람이 많은데 뭉크는 엄청 장수했다. 평생 죽음에 대한 공포를 갖고 있던 사람이 여든을 넘겼다는 게 아이러니한 일이다. - 이 대목에서 요즘 유럽에서 코로나가 재확산됐다는 얘기가 떠올라 뭔가 착잡한 기분이 들었다. 뜬금없지만 책을 읽고 나서 병에 대한 경각심이 더 생기게 됐다. 병이란 정말로 상대를 가리지 않는다는 걸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뭉크와 쉴레, 클림트의 작품 세계를 둘러보며 표현주의의 의의, 지금에 와선 아주 당연한 회화의 법칙이 예전엔 대단히 파격적으로 여겨졌단 걸 이 책을 통해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회화가 사진과 구분되는 가장 뚜렷한 특징은 모방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 것이라 할 수 있겠는데 막 사진기가 나왔을 뿐인 100년 전엔 아직 그런 인식이 없었다는 것, 오히려 사물을 미화시키지 않고 있는 그대로 그리거나 어두운 부분을 강조하는 화풍은 이해받지 못했다는 것, 그래서 '표현주의'라는 사상이 따로 명명됐다는 것 등이 명확하게 이해가 됐다.

 그런데 위에서 두 번째 부분, 사물의 어두운 부분을 강조하는 작품 세계가 이해받지 못한다는 건 지금까지도 현지진행형인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개인적으로 이 문제에 대해선 나도 소설가 지망생으로서 학교에서나 주변 동기들과 자주 얘기했던 부분이었던 터라 남일 같지 않게 읽혔다. 이 얘길 시작하면 글이 한도 끝도 없이 길어질 것 같아 간략히 말하자면 - 나중에 기회가 있으면 더 자세히 얘기해보겠다. - 나 역시 사물의 밝은 부분을 자주 얘기하는 것과는 달리 어두운 부분에 대해서는 쉬쉬하는 걸 지양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이들 세 화가의 경향이 공감이 많이 갔다. 아마 그래서 내가 이들 작품에 그렇게 끌리는 것인지 모르겠다.


 뭉크와 클림트의 작품 세계는 언제 접해도 흥미롭고 요번에 본격적으론 처음 접하다시피 한 쉴레의 작품 세계도 흥미롭기 그지없었다. 나중에 쉴레만 다룬 책을 읽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책도 재밌을 것 같으니 한 번 찾아봐야겠다. 물론 그 책에서도 클림트 얘기가 많이 나오겠지만 그래도 보다 디테일한 얘기가 담겨있을 테니 기대가 된다.

화가라면 대상의 외관을 변형시킬 때 추하게 나타내기보다는 이상화시키는 것이 일반이지만 뭉크와 쉴레는 그런 태도를 대상의 진실에서 멀어지는 것으로 보았다. 두 사람은 사물의 밝은 면 못지않게 어두운 면도 드러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 26p




‘회화는 표현이다‘라고 말할 때 ‘예술은 모방이다‘라는 오래된 예술의 정의가 부정될 수 있다. 표현이 하나의 사조ism가 된 것이 좀 이상한 일이기는 하다. 그러나 특별히 ‘표현‘을 예술의 본질로 탐구하게 된 것은 예술을 단지 모방으로 본 서양미술의 편협한 사고를 부정한 혁명적 성과라 하겠다. - 33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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