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리 - 2010 제34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청춘 3부작
김혜나 지음 / 민음사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6.8







 내가 이 작품을 9년 전에 읽었을 땐 아직 고등학생이라 그랬는지 작중 인물들의 이야기를 막연한 어른들의 이야기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시간이 흘러 작중 인물보다 나이가 좀 든 다음에 읽으니 그들의 이야기가 어느 정도 공감이 되지만 한편으론 공허하기 짝이 없는 작품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시간차를 두고 읽었다고 한들 왜 9년 전의 내가 이 작품에 10점 만점에 10점을 줬는지 이해가 잘 안 된다. 까놓고 말해서 야하니까 좋다고 읽어댔던 걸까? 절대 아니라고 하고 싶은데 솔직히 기억이 안 난다.

 이 소설의 성애 장면은 수위가 제법 센 편이다. 노래방을 전전하는 호스트, 속된 말로 선수인 '제리'와 가볍다고도 가볍지 않다고도 할 수 없는 관계를 이어가는 주인공 사이의 성관계가 생각 이상으로 적나라했다. 9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적나라하게 느껴지는데 작가가 이런 성애 묘사로도 용케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구나 하는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현대 문학이 대체로 야한 경향이 있고 <제리>도 별 다를 바 없다고 볼 수 있겠지만, 성애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닌 것치고 - 여러 체위를 시도하거나 강요당하는 여성의 고충을 판타지 없이 묘사한 것에서 야한 것 이상의 목적을 추구했다는 게 느껴진다. - 묘사가 너무 반복적이고 소모적이라 불쾌함을 느낄 독자가 많을 듯하다.


 개인적으론 작품의 성애 묘사가 그렇게 불쾌하지도 않았고 내심 어느 정도는 무탈히 읽어내려갈 수 있었으나 - 내 취향과는 거리가 멀지만. - 상술했듯 어렸을 때는 이런 묘사들에 눈이 번쩍 뜨였던 것으로 추정되는 반면 지금은 그저 지루하고 공허하게만 읽혔다. 장래도 불안정하고 열정도 없는 인물들이 몸으로밖에 교감을 나눌 줄 모른다는 듯한 묘사가 상투적으로 다가왔고 주인공이나 제리나 작중에서 내내 삶의 목적이 불분명한 채 방황하는 편이라 결말에서 그들의 사이가 깨지든 뭘 어쨌든지 간에 크게 관심이 가지 않았다. 그들이 얼마나 대단한 체위로 사랑을 나눴든 어처구니 없이 헤어졌든 별로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던 것이다.

 가독성 하나는 인정하지만 사실상 남는 건 별로 없는 작품이었다. 글쎄, 자세를 고치고 그 많은 성애 묘사 한 줄 한 줄까지 꼼꼼히 읽었더라면 뭔가 더 느껴지는 바가 더 있었을지 모르지만 딱히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내 평소 지론이기도 한데, 정독을 요하는 주제에 정독을 하고 싶게끔 유도하지 못한다면 그 작품에 독자들이 꼭 의리를 다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차라리 진짜 작품 주인공과 동년배였을 때 읽었더라면 느낌이 또 달랐을 것도 같은데 내가 지금 애매하게 나일 먹어버려서 이것도 이미 해봤자 소용도 없는 후회가 돼버렸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후회되지도 않는다. 단지 9년 전에 내가 야한 것에 무지하게 환장했나 싶어 쑥스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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