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 포터와 불사조 기사단 5 (무선) 해리 포터 시리즈
조앤 K. 롤링 지음, 최인자 옮김 / 문학수첩 / 200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9.6







 '불사조기사단'은 시리즈에서 가장 길고 가장 몰입도 높은 작품으로 꼽힌다. 5권으로 분권된 두툼한 분량은 읽기 전엔 부담스럽지만 막상 책장을 펼치면 몰입도 측면에서 전작과 큰 차이가 없다고 느껴지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작품을 원작으로 둔 영화는 역대 해리포터 영화 중 가장 러닝타임이 짧아 팬들이 불만을 터뜨렸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전편보다 훨씬 어두워진 분위기며 마법부의 뻘짓에 신음하는 해리의 심리나 음지에서 해리를 위협하는 볼트모트와 죽음을 먹는 자들의 존재감을 치밀하게 그린 원작에 비해 영화는 내가 기억하기에도 세계관의 방대함을 담아내기 벅차 보였으니까 말이다. 영화가 좋았던 점은 엄브릿지란 캐릭터를 완벽하게 구현했다는 것일 텐데, 그걸 천만다행으로 여겨야겠지?

 '해리포터' 시리즈 자체가 기본적으로 동화를 표방하는 만큼 인물의 외형이나 성격을 묘사하는 방식이 다소 유치한 감은 있지만, 반대로 보면 유치하기 때문에 오히려 상황의 심각함이 희석되는 효과가 있지 않았는지 생각해보게 됐다. 역대급 악역이라 일컬어지는 엄브릿지를 비롯한 마법부 인간들의 태만이 이번 작품에서 굉장히 중요한 소재로 다뤄지는데, 예전에 읽었을 때 황당무계하다고 여겼지만 지금 다시 읽으니 굉장히 현실적인 묘사란 생각에 쓴웃음을 감출 수 없었다. 무사안일주의에 젖은 나머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일리가 있는 소릴 하는 사람은 모함하거나 필요하다면 누명을 씌워서라도 배척하려는 그릇된 심리를 작가가 정말 지독히도 잘 묘사했구나 싶던 것이다.


 작중 전개가 그렇게나 씁쓸했던 데엔 마법부가 엄연히 볼드모트 일당과 대적해야 하는 조직임에도 그 역할을 온 힘을 다해 방관하려 들기 때문이 클 것이다. 이는 시간이 흘러도 사람들이 '해리포터' 시리즈를 높이 평가하는 이유와 무관하지 않다. 상상력은 물론이고 통찰력과 리얼리티도 뛰어나기 때문일 텐데, 특히 마법부의 무능함에 대한 묘사는 발군이었다. 사람이 무리를 지어 조직을 만든 뒤에 파벌을 이뤄 자신과 반대되는 입장의 사람을 배척하는 심리를 작가는 자신이 만든 마법 세계 안에다가 아무 어색함 없이 집어넣어 독자들과 공감대를 형성시켰다. 판타지 장르가 상상력과 더불어 현실적인 요소가 가미돼야 독자를 만족시킬 수 있다는 대표적인 사례가 아닐까 싶다.

 게다가 성장 문학의 정체성도 갖고 있는 시리즈답게 작가가 '불사조기사단'에서 해리에게 선과 악은 칼로 무 자르듯 이분할 수 없다는 깨달음을 준 것도 인상적이었다. 단순히 호그와트와 마법부는 착하고 볼드모트와 죽음을 먹는 자들 측은 나쁘다는 일차원적인 묘사가 아닌, 때론 일반적으로 선하게 여겨지는 무리에서 악한이 존재함을 시사한 게 - 그 반대의 경우도 물론 있지만 이 이야기는 후속작에서 하겠다. - 의미심장했다. 작가도 인정하는 최악의 악역 엄브릿지는 표면적으론 상당한 요직에 있는 마법부 직원이지만 근본은 인간적인 감정이 결여된 저능아다. 엄브릿지가 잘하는 것이라곤 자신과 코드가 맞는 라인을 잘 잡은 것밖에 없을 정도로 작중에서 최악의 행보를 지치지도 않고 선보인다.


 안타깝게도 현실에는 엄브릿지보다 더 교활하고 악랄한 인간이 많을 것이다. 문제는 얼핏 봐선 누가 엄브릿지인지 간파하기 쉽지 않다는 것인데, 간파하기 어려울지언정 이렇게 의심하고 고민하게 만든다는 측면에서 '해리포터' 시리즈는 지금보다 더 높이 평가받아 마땅하다. 전작 '불의 잔'의 크라우치처럼 사람의 지위와 인성은 반비례할 수 있음을 역설한 것처럼 '해리포터' 시리즈는 마법 세계를 통해 현실 세계를 돌아보게끔 만든다. 잘 만든 판타지는 현실을 반영하며 그 판타지로 하여금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는 점은 소설을 읽는 입장은 물론 쓰는 입장에서도 퍽 고무적인 일이다. 소설은, 특히 판타지 소설은 애들이나 읽는 황당무계한 소설이란 편견을 생각하면 이 시리즈의 위상은 더욱 소중하다.


 언제 볼드모트가 마법 세계를 장악해도 이상하지 않을 폭풍전야의 상황 속에서 해리는 그전까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정신적으로 내몰리지만 그 와중에 해리의 학창 생활은 학창 생활대로 알차게 한다. 썸녀 초와 관계가 진전되다가 흐지부지되고 무능한 어둠의 마법 방어술 교수 때문에 해리는 자체적으로 어둠의 마법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퀴디치 경기는 물론이고 스네이프와의 특별 보충 수업까지 소화해야 했다. 몸이 열 개라도 감당하기 힘든 스케줄인데 여기서 그치지 않고 해리는 덤블도어와 해그리드, 시리우스의 안위를 걱정하고 볼드모트의 위협에도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해리의 마음을 모르는 듯 불사조기사단을 비롯한 어른들은 해리가 아직 어리다는 이유로 설명도 없이 자신들의 지시를 따를 것을 부탁하기만 한다. 꼭 덤블도어 교수님한텐 다 뜻이 있을 거란 말을 - 심지어 이 말은 헤르미온느도 한다. - 덧붙이면서.

 이 책을 처음 읽을 당시에는 내가 해리와 비슷한 연배여서 그랬는지 해리의 심정이 거의 100% 공감이 갔는데, 시간이 흘러 다시 읽으니 새삼 내가 나이를 먹긴 먹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것도 안 좋은 쪽으로. 시종 어른들의 말에 불복하고 기어코 하지 말란 짓을 했다가 위험에 처하는 모습이 전과 달리 마냥 좋게 보이진 않았던 것이다. 충분히 그럴 만한 상황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어른을 불신하는 듯한 태도 때문에 한 번 큰코다쳐야 정신을 차리려나 하고 생각했던 걸 부정하지 않겠다. 충분히 합리적인 반항심이었던 것 같지만 그럼에도 해리가 어려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읽는 내내 끊이지 않았다.


 그러다 막판에 덤블도어가 해리와 마주앉아 해리를 충분히 믿지 않은 것과 해리에게 설명을 충분히 하지 않고 닥치고 따라주길 바란 것에 죄의식을 느낀다는 대목에서 뒤통수를 맞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다른 건 몰라도 똑같이 어린 시절을 거친 어른이 지금 아이들에게 공감을 하지 못하는 것은 죄라는 말에 내 생각에 대해 재고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도 옛날엔 해리에게 공감했지만 지금은 그러지 못했다는 생각에 이르자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꼰대가 되고 말았나 하는 불안감에 식은땀이 났다. 꼰대를 그렇게 싫어했는데 조금 나이 먹었다고 나도 꼰대가 됐을지 모른다는 의심은 불쾌함을 안겨줬다. 똑같은 작품이더라도 시간차를 많이 두고 읽을수록 감상에 차이가 난다는 걸 자주 경험해서 그렇게 놀랄 일도 아니지만, 이번엔 제법 충격적이었다.

 앞으로 시리즈의 작품이 2편 남았다. 벌써 이렇게 됐나 싶어 아쉽다가도 앞으로 무슨 시련이 닥칠까 기대되고 두렵기까지 하다. 이미 읽은 내용임에도 이런 기분이 드는 건 너무 오래 전에 읽어서 그런 것도 있고 위에서 말한 것처럼 이전과는 전혀 다른 감상이 나올까 가늠이 안 가기 때문이 크다. '해리포터' 시리즈를 다시 읽는 이유는 해리의 이야기가 다시 읽을 만큼 재밌었기 때문이지 내가 해리에 대해 전과는 다른 인상을 품는다는 걸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생각해보면 당연하다면 당연한 변화인데, 시리즈를 워낙에 어릴 때 접해서 그런 건지 유독 내 심상의 변화를 체감한 게 불쾌하면서도 감내해야 하는 일종의 통과 의례로 여겨졌다. 대부를 눈앞에서 잃은 해리에 비한다면 겨우 이런 일을 두고 통과 의례 운운하는 게 웃길 수 있겠지만, 내심 나 자신에 대해 변하지 않은 사람이라 믿었던 터라 그 믿음이 깨진 게 못내 창피한 나머지 생각보다 후유증이 컸다.


 그 후유증이 아니었으면 '혼혈왕자'와 '죽음의 성물'에서 펼쳐질 해리의 모험담보다 그의 성장이 이 정도로 기대되지 않았을 것이다. 해리가 성장하는 과정을 따라가니 나도 함께, 혹은 다시 성장하는 기분을 느꼈던 것이다. 최근 들어 성장 문학은 읽을 시기를 놓치면 읽으나 마나 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던 차에 이 작품이 아주 타이밍 좋게 내 편견을 지적해줬다. 하긴, 사람이 영원히 성장을 하는 존재인 이상 성장 소설에 유효 기간이 존재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얘기일 것이다. 대상 독자가 아동이나 청소년이라면 경우가 다르지 않나 싶었지만 '불사조기사단'을 읽으니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같은 소설이라도 언제 읽느냐에 따라 감상이 달라진다는 걸 통해 성장 문학은 두고 두고 읽을수록 더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덕분에 예전에 읽은 성장 문학들을 다시 보게 됐다.



인상 깊은 구절


언제나 너희는 스스로의 생각, 혹은 용기 같은 것 없이 죽음에 맞서고 있다고 확신했지. 마치 너희가 살해당하거나, 고문당하거나 아니면 친구가 죽는 것을 보기 직전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생각을 똑바로 할 수 있다는 듯 말이야. 수업 시간에는 아무도 우리에게 그런 걸 가르쳐 주지 않았어. 그런 일들을 직접 겪는 게 어떤 건지 말이야. - 2권 264~265p


피렌체는 해리가 지금까지 만난 그 어떤 인간 선생님들과도 달랐다.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것을 최고의 목표로 여기는 것 같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들에게 이 세상 어떤 것도, 켄타우로스의 지식조차도 절대 완벽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심어 주기 위해 애를 썼다. - 4권 153~154p


이 세상엔 죽음보다 더 괴로운 것이 있다는 걸 이해하지 못한다는 게 자네의 최대 약점이지. - 5권 207p


젊은이들은 노인들이 어떤 식으로 생각하고 느끼는지 이해 못하는 게 당연해. 그러나 젊은이들이 어떤 식으로 생각하고 느끼는지 노인들이 이해 못한다면 그건 죄가 아닐 수 없지...... - 227~228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