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물쇠 잠긴 남자 - 하 작가 아리스 시리즈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김선영 옮김 / 엘릭시르 / 2019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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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개인적으로 읽길 고대했던 작품이다.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상/하로 분권된 작품들이 좋은 인상을 남겼기 때문이다. <쌍두의 악마>, <여왕국의 성>은 작가의 대표작이거나 본격 미스터리 대상을 수상하는 등 이름값을 톡톡히 하는 작품들이었는데 이 작품 <자물쇠 잠긴 남자>도 요시카와 에이지 문고상을 수상했다고 하니 더욱 기대가 됐다. 엄밀히 말해 요시카와 에이지 문고상은 특정 작품에 수여하는 상은 아니고 - 비슷한 예로 노벨 문학상을 들 수 있겠다. - 시리즈 자체에 수여하는 상이라는데, 작가의 '작가 아리스' 시리즈가 어느 정도 인정을 받게끔 이 작품이 도와준 걸까 싶어 기대를 안 할 수 없었다.

 기대가 되는 한편으로 나처럼 기대하고 읽었다가 실망한 사람들의 평을 간간이 접해왔던 지라 불안한 마음도 들었다. 다 읽고 나니 왜 그렇게 실망했다고 하는지 이해가 갔다. 사실 나는 오래 전부터 아리스가와 아리스가 추리소설의 껍질을 쓴 다른 종류의 소설을 쓰는 작가라고 인식했던 터라 딱히 새삼스럽진 않았는데 그걸 감안하더라도 이번 작품은 확실히 밋밋하기 그지없었다. 아니 밋밋한 걸 넘어서 너무 길고 밀도도 떨어져서 작가나 시리즈의 캐릭터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완독하기 힘들 작품이란 것도 인정한다.


 추리소설이란 선입견을 아예 지운다면, 특유의 인간애와 작가의 사유 덕에 흔히 '추리소설하면 그저 잔인하기만 하고 깊이가 떨어지는 소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추천해줄 만한 소설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추리소설의 매력을 알릴 만한 작품이냐고 한다면 그건 또 아니라는 것이다. 피만 안 튀기지 추리하는 재미를 살린 일상 추리물 계열의 작품이라면 모르겠는데 그렇게 보기엔 추리 부분이 너무 약하긴 했다. 자살인지 타살인지도 불명확한 나시다라는 인물의 생애를 쫓는 과정은 그래도 읽는 맛이 났는데 정작 사건의 진상이라든가 범인의 동기가 너무 느닷없고 복선도 너무 적었고 설득력도 잘 와 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리스가와 아리스는 이보다 더 어이 없는 범인이나 살인 동기를 많이 다뤄서 차라리 이 작품 정도면 양반이긴 했다. 하지만 그 작품들은 단편이거나 길어봤자 400쪽을 못 넘었는데 <자물쇠 잠긴 남자>는 800쪽에 육박하는 장편이라 허무함이 유독 컸던 것 같다. 두 권 이상 분량의 장편 추리소설이 의외로 결말이 허무한 경우는 적지 않지만 이 작품처럼 가뜩이나 시작부터 밋밋한데 끝에 가서도 밋밋하니까 다 읽은지 일주일이 넘어가는 지금도 아쉬움이 가시질 않는다. 초반이 하도 밋밋해서 이 밋밋함이 없어지긴 할까 걱정이 됐는데 설마 그 걱정이 그대로 맞아들어갈 줄이야...


 추리소설 안에도 종류가 다양해서 개중엔 밋밋한 것도 있고 관점이 다른 작품도 많은데 이 작품은 작가의 고집 때문에 그 경계가 애매해진 경우에 속한다. 굳이 트릭이나 범인 찾기를 강조한 본격 미스터리가 아니어도 되는데 작가 스스로 본격 미스터리를 써야 한다고 여겼던 걸까? 지금껏 나시다의 인생을 살펴보며 잔잔하게 흐른 전개가 호불호는 갈릴지언정 개연성 있고 나쁘지도 않았는데 히무라가 등장하고 타살 의혹을 제기하고 진범을 수색하는 과정이 급작스러워 작품 밸런스가 무너졌다. 이렇게 말하긴 좀 그렇지만 분량 배분이나 트릭에 대한 문제를 살펴보면 작가가 사전에 공을 들여서 집필했다기 보다 그때 그때마다 발길 닿는 대로 스토리를 이어간 느낌이 확 들었다. 그래서 아까 다른 건 몰라도 추리소설의 매력을 알릴 만한 작품은 아니라고 했던 것이다. 발길 닿는 대로 이어나가는 스토리에도 물론 매력이 있지만 그 매력은 우리가 추리소설을 읽을 때 기대하는 매력과는 엄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저자가 추리소설가란 것, 이 작품이 엄연히 탐정을 주인공으로 한 추리소설 시리즈에 속한 작품이란 걸 의식하지 않는다면 순수하게 작품 자체의 만듦새는 나쁘지 않았다. 다소 고전적인 스타일이었지만 나시다의 일대기를 훑는 전개도 느낌 있었고 이 사람에 닥친 비극이나 시련을 통해 인생이 얼마나 뜻대로 풀리지 않는지 엿볼 수 있던 것도 괜찮은 경험이었다. 이보다 더 주제의식이 압도적인 사회파 추리소설이 한두 편이 아니거니와 차라리 아리스가와 아리스가 트릭이나 범인 찾기에 연연하는 대신 작정하고 사회파 추리소설을 썼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들지만 그렇다고 이 소설만의 고유한 매력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라 이 정도 결과물이라도 어느 정도 납득하고 넘어갈 수 있다.


 여러모로 추리소설이라 여기고 책장을 펼칠 수밖에 없던 것에 비해 결과물이 영 쌩뚱맞기 그지없었지만 그래도 재독할 가치는 충분한 작품이었다. 다시 읽을 때는 아예 추리소설이란 기대 자체를 안 할 테니 지금 안 보였던 부분들까지 볼 수 있을 테지. 지금 이렇게 위에 쓴 글을 읽으니 너무 형식에 대해서만 애기했던데, 형식에 대해 얘기하지 않기엔 읽는 내내 느낀 불만이 너무 많아서 부득이하고 과감하게 형식에 대해서만 얘기했다. 다시 읽고 포스팅을 할 때는 내가 이 작품의 스토리에 대해서만 얘기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냉소적인 작가보다 독설적인 작가가 그나마 나을지도 모른다. 씁쓸하고 냉소적인 결말로 끝나는 소설은 눈물을 뽑는 소설에 필적할 만큼 쓰기 쉬우면서도 어지간해서는 작가가 멍청해 보이지 않는다는 이점을 갖고 있다. 빈정거리며 편한 길을 가기보다 독기 있는 소설에 도전하는 게 차라리 낫다. - 상 288p




죽은 이는 돌아오지 않지만 그들을 위해 산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그저 기도만 하는 게 아니라 죽음을 가져온 대상을 분석하고, 같은 재난을 입었을 때 얼마나 피해를 줄일 수 있는지 고민하는 것도 우리의 역할이다. 해야 할 일은 많다. - 하 12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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