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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링필드, 어느 캄보디아 딸의 기억
로웅 웅 지음, 이승숙 외 옮김 / 평화를품은책 / 2019년 8월
평점 :
8.3
크메르 루주가 장악한 캄보디아의 정세 속에서 기적적으로 생존한 작가 로웅 웅이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유년기 시절의 기억을 소설 형식으로 재구성한 책이다. 킬링필드는 책이나 방송에서 몇 번 접해봤지만 이렇게 실제로 경험해본 사람이 얘기하니까 무게감이 차원이 달랐다. 어느 정도 소설적으로 접근했겠지만 엄연히 실화라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철저히 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킬링필드를 다각적으로 들여다보고자 하는 독자에겐 약간 미흡한 책일 수 있다. 가령 크메르 루주가 어쩌다 그렇게 정권을 잡게 됐고 그들이 궁극적으로 추구했던 목표, 당시 동남아의 정치적 상황 등은 다뤄지지 않았는데 그 점을 기대했던 나로선 약간 아쉬운 부분이었다. 개인적으로 캄보디아에 관심이 있는 지라 이 책을 통해 좀 더 폭넓은 지식을 얻을 수 있으리라 기대했는데... 그보단 사실감 넘치는 경험담에 주목한다면 좋을 듯했다. 사실 작가의 경험담도 이야기의 수위에 비해 전개가 다소 반복적이고 늘어져서 가독성이 떨어지는 편이었는데, 순전히 이 비극적인 상황에서 작가가 어떻게 미국으로 갔는지 과정이 궁금해서 계속 읽게 됐다. 내가 캄보디아나 킬링필드에 관심이 없거나 결말에 이르는 과정이 궁금하지 않았다면 완독하기 힘들었을지 모르겠다.
작가 입장에선 이렇게 세상에 꺼내기 힘든 고통스런 기억일 텐데 거기다 대고 가독성이 떨어졌다느니 전개가 늘어졌다느니 얘기하는 게 좀 머뭇거려진다. 이 점에 대해 어떻게 애둘러서 표현할지 포스팅하기 전에 고심했지만, 비극은 비극대로 존중하되 내가 느낀 감상엔 솔직하자는 결론을 내렸다.
킬링필드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저런 우매하고 폭력적이기 이를 데 없는 무리들에 정권을 잡게끔 허락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엿이랑 바꿔먹은 크메르 루주의 극단적인 사회주의 정권은 소련을 비롯한 여타 사회주의 국가가 귀엽게 느껴질 정도로 공포스러웠다. 이 책은 그 공포의 무게를 전달하는 것엔 탁월했지만 애당초 이런 공포를 낳은 비극의 원인에 대해선 이 책만 읽고선 쉽게 파악이 되지 않는다. 작가가 당시 나이가 5살이라 어쩔 수 없는 부분일 텐데, 이야기의 화자가 어린아이인 만큼 비극이 더욱 처참하게 묘사돼 - 크메르 루주는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비극의 광기에 물들게 했다. - 읽는 내내 눈을 돌리고 싶게 만든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사실적인 묘사에 공을 들여 인류애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기엔 충분했지만 이런 비극 자체가 벌어지지 않도록 고민해볼 것을 역설하지 않아서 막상 다 읽고 나면 생각보다 남는 게 없다. 이 실화를 단지 실제로 벌어난 일 그 자체에만 몰두하기엔 좀 아깝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킬링필드의 생존자가 직접 전하는 이야기는 그 자체로 매우 귀중하지만 킬링필드에 대한 선행 학습 없이는 궁금한 점 투성이일 이야기라 아쉬움을 금할 수 없었다. 비슷한 아쉬움을 남긴 이야기에 대해 내가 늘 이 말을 남기곤 하는데 이번에도 여지없이 남겨야 하겠다. 얀 마텔의 <20세기의 셔츠> 서문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역사의 법칙이 아니라 예술의 법칙에 따라 묘사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은 물론 픽션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픽션의 느낌을 추구하고 있으므로 이 역사적 사건에 대해 조금 더 탄력적이고 전방위적인 접근을 통해 보다 예술적인 이야기로 승화시켰어야 하지 않았나 싶다.
이 책의 내용을 바탕으로 안젤리나 졸리가 연출한 <그들이 아버지를 죽였다>라는 영화가 나왔다는데 그 영화는 과연 어떨지 궁금하다. 아니, 그 전에 아예 <킬링필드>부터 먼저 접해야 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