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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되기 5분 전 ㅣ 마음이 자라는 나무 20
시게마츠 기요시 지음, 양억관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8.9
원래 이 작품을 시게마츠 기요시의 최고의 작품이라 생각했는데, <십자가>를 읽고 나니 상대적으로 깊이에 있어서 이 작품이 떨어진다고 느꼈다. 10년 전에 느낀 감동이 예전만 같지 않았고 이 작품을 원작으로 한 영화에 비해서도 거의 비슷하거나 약간 미흡했다고도 볼 수 있었다. 아무래도 이 작품을 처음 읽을 당시인 고등학생 때는 등장인물들과 같은 연령대라 내 얘기 같이 읽혔던 것에 비하면 지금은 내가 고등학생이었던 적이 있었나 싶을 만큼 그 시절이 가물가물해 상대적으로 몰입이 덜 된 감도 있는 것 같다.
금방 언급했다시피 이 작품은 <유어 프렌즈>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됐다. 영화는 9편의 연작으로 이뤄진 원작에서 5~6편 정도로 축약해서 스크린에 옮겨놨는데 그때 보면서도 느낀 거지만 참 적절한 각색이 아닐 수 없었다. 학교 안 다양한 인간 관계를 섬세한 관찰력으로 들여다보는 작품의 특성상 등장하는 캐릭터가 많은데 영화에선 분량상 너무 자잘하다 싶은 캐릭터는 아예 등장을 시키지 않고 주목할 캐릭터의 경우엔 확실히 주목해주니까 훨씬 집중력 있는 전개가 이뤄졌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에선 캐릭터에 따라 굉장히 섬세한 감정선이 묘사되기도 하는데 영화에선 그 묘미를 살리기 힘든 걸 생각하면 더욱 적절한 선택과 집중이었다.
이 작품의 원제는 '너의 친구'다. 영화 제목 '유어 프렌즈'는 원제의 영어 버전이다. 밋밋한 제목이라 생각되겠지만 다 읽고 보면 이 제목이 훨씬 느낌이 사는 것 같다. 이 작품은 드물게 2인칭 관찰자 시점의 소설인데 형식상의 2인칭이 아닌 엄연히 실체가 있는 인물이 여러 명의 '너'를 들여다보는 터라 다 읽은 뒤엔 화자의 따뜻한 감성이 물씬 느껴졌다. 그에 반해 우리나라에 출간되면서 바뀐 <친구가 되기 5분 전>이란 제목은 개성적이긴 하지만 묘하게 내용과는 따로 노는 느낌을 준다. 실제로 '친구가 되기 5분 전'이란 표현이 작중에서 언급되긴 하지만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제목이라 보기엔 약간 애매하다. 누가 보면 그 둘이 친구인가 싶을 정도로 미묘한 우정에 대해서 다루긴 하지만 한편으로 '친구인 듯 친구 아닌 친구 같은' 표현이 절로 나올 만큼 위태로운 관계가 또 우정이라 시사하기도 해 단순히 친구 관계 형성 이전을 가리키는 국내 제목이 잘 와 닿지 않았다. 그러자니 원제를 그대로 쓰자니 너무 밋밋하고... 제목을 짓는 건 늘 어려운 문제 같다.
개인적으로 작가가 학창 시절을 다시 보낸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학교 생활에 대한 묘사가 사실감 넘쳤다. 어찌나 사실감 넘치는지 비슷한 연령대가 아니면 자칫 유치하다 느낄 정도였다. 그 정도로 상처 받기 쉬운 감수성의 소유자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독자에 따라선 자기 학창 시절이 연상된다거나, 혹은 지금 현재의 사회 생활과 겹쳐 보이는 경우도 있을 테니 공감대 형성에 있어서 압도적인 힘을 가진 작품이라 생각한다. 내 경우엔 무리 생활에 쉽게 적응을 못하는 편이라 비슷한 처지의 캐릭터에 감정 이입이 되는 건 당연한 일이겠는데, 이 작품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나와 비슷한 점이 없는 다른 처지의 등장인물에게도 감정 이입하게 만들어 놀라움을 선사했다.
학교 안 같은 학급에서도 개개인의 기질이나 성향에 따라 파벌이 생기고 왕따가 있고 독자적인 무리도 존재하는데 이 작품은 학교 스타에서 불량 학생까지 각기 다른 위치와 시선을 가진 학생들이 저마다의 심각한 고민거리를 갖고 있다는 점을 전달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놀라운 건 작가가 모든 캐릭터에 똑같은 애정과 관심을 두고 이야기를 썼겠구나 싶을 정도로 묘사의 퀄리티에 차이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야기의 주역은 이야기의 주역대로, 조연에게는 또 조연대로 분량과 비중을 다르게 부여하는 게 아니라 모두 똑같이 사랑하는 마음으로 집필했다는 게 느껴졌는데 그렇다 보니 독자인 나 역시 캐릭터마다 감정 이입을 선별적으로 하기가 힘들었다. 물론 캐릭터마다 감정 이입이 되는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작품의 메시지를 이해함에 있어 문제가 없는 걸 보면서 시게마츠 기요시의 필력이 보통이 아닌 걸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예전엔 이 작품을 진정한 우정에 관한 이야기로만 여겼는데 다시 읽은 지금은 저마다의 가치관에 따라 인간 관계도 다르고 친구 관계도 다르게 정의될 수 있다고 얘기하는 작품으로 인상이 변했다. 우정엔 정답이 있지 않고 모든 형태의 우정이 다 소중하다. 그렇게 생각하면 한 가지 유형의 우정만 시사하는 작품의 제목이 역시 아쉽게 느껴진다. 아무튼 다시 읽으니 이래저래 인상이 확 바뀐 작품이라 할 수 있겠는데 작품도 작품이지만 <십자가> 때 못지않게 시게마츠 기요시에 대한 인상도 많이 달라져 이후에 읽을 작가의 작품을 이전과는 다른 기분으로 읽게 될 것 같다. 학교가 배경이라고 해서 이 작가의 작품을 단순히 청소년 소설로만 여기긴 힘들게 됐다.
내 곁을 떠나도 평생 기억되는 친구 한 명이면 충분해. - 26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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