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의 살인사건, 실로 무서운 것은
우타노 쇼고 지음, 이연승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9년 10월
평점 :
품절


9.4







 우타노 쇼고의 작품은 오랜만에 읽는 것 같다. 한때 작가의 신작이 많이 소개됐지만 그 유행도 어느샌가 시드는 것 같고, 또 가끔 출간된 신작의 재미가 예전만 못해서 잘 찾아 읽지 않았다. 이 책의 경우엔 '우타노 쇼고 X 에도가와 란포, 꿈의 콜라보레이션'이라는 문구가 있긴 하지만, 예전에 <시체를 사는 남자>라고 이미 비슷한 컨셉의 작품이 출간한 적 있어 뭘 또 새삼스럽게 에도가와 란포인 건가 하는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아직 에도가와 란포를 접하지도 않은 주제에 벌써 란포라는 테마가 질린 것이다. 이게 뭔...

 이 책엔 우타노 쇼고가 에도가와 란포의 작품을 자기 스타일대로 재해석한 7편의 단편이 수록됐다. 오마주한 작품 중엔 에도가와 란포를 한 번도 접하지 않은 나도 몇 번인가 들어본 제목도 있었고 국내에 아예 소개도 되지 않은 제목의 작품도 있었다. 하여튼 <시체를 사는 남자> 때완 다르게 란포의 작품을 아예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단편을 읽노라니 지금까지 이상할 정도로 관심이 안 가던 에도가와 란포의 작품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작가의 란포에 대한 애착을 반영하듯 작품들의 퀄리티도 출중하고 재미의 편차도 적은 편인데, 그래서 그런가 작가는 이 이후로 란포를 테마로 글을 쓰지 않겠다고 한다. 글쎄, 이 정도면 몇 번 더 써봐도 괜찮을 듯한데 워낙에 지금 내놓은 결과물이 걸출해서 만족하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이건 좀 개인적인 얘기지만, 오랜만에 읽는 작가의 작품이 이전에 작가의 작품을 접했을 때 못지않은 즐거움을 안겨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생각했다. 우타노 쇼고가 이렇게 반갑다니, 이보다 다행일 수 없었다.



 '의자? 인간!'


 처음을 강렬하게 장식했던 이야기. 우타노 쇼고의 전매특허라 할 수 있는 비호감 달변가 캐릭터가 작중 화자와 독자의 마음을 종횡무진 후벼판다. 참 섬뜩하기 그지없는 캐릭터였는데 오마주한 작품을 얼마나 참고했는지 몰라도 이 작품은 가장 우타노 쇼고답게 쓰지 않았나 싶다. 작가의 대표작 '밀실살인게임' 시리즈가 떠오르기도 했다.



 '스마트폰과 여행하는 남자'


 막판에 이해가 잘 안 갔지만 대체로 현대 기술을 잘 다뤄내 흥미진진하게 읽혔다. 오마주한 작품 '오시에와 여행하는 남자'에선 어떤 설정이었을지 가늠이 안 되는데, 작중에서 다루는 기술이 지금 기준으로도 워낙에 하이 테크놀로지라 우타노 쇼고가 어떻게 변주시킨 건지 궁금해졌다. 이 작품도 '밀실살인게임' 시리즈의 어떤 트릭을 연상시켰는데, 확실히 이 작가도 히가시노 게이고 못지않게 현대 기술에 관심이 많구나 싶었다. 오히려 요즘 히가시노 게이고를 생각하면 더 잘 다루는 듯하다.

 여담이지만 나가사키를 두 번 간 사람으로서 개인적으로 작중 전개에 따라 거론되는 지명이 반가웠다. 여행 생각이 많이 났다.



 'D의 살인사건, 실로 무서운 것은'


 작중 핵심 트릭이나 캐릭터 묘사는 그냥저냥이었는데 결말 때문에 상당히 오싹했다. 오마주한 작품에서도 이런 결말인지, 아니면 우타노 쇼고의 폭주인가... 작가의 다른 작품 <여왕님과 나>와 유사한 걸 보니 아마 후자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 이야기의 주역 둘의 감정의 골이 상하는 게 너무 급전개인 감이 있어서 이 부분은 좀 아쉬웠다. 먼저 관계에 금을 내버린 쪽의 심리가 너무 급작스러워 이 부분에 좀 더 공을 들였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오세이 등장]을 읽은 남자'


 대놓고 '나, 이 작품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말하는 작품. 설정이며 결말까지 거의 유사하지만 시간 배경이 현재이므로 좀 더 교묘하고 기술적인 방식이 가미된 게 인상적이었다. 어떻게 보면 가장 현대적인 재해석에 충실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마지막 문장도 인상적이었다. 작가가 해당 작품을 인상 깊게 읽은 모양이다. 생각해보니 그래서 작가의 작품이 그렇게 씁쓸하고 비관적인지도 모르겠다.



 '붉은 방은 얼마나 바뀌었는가?'


 대놓고 '나, 이 작품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말하는 두 번째 작품. 짧고 굵다. 처음엔 정신 없었고 뒤돌아 생각해보면 뻔한 반전이라고도 생각하는데 막상 다 읽은 직후의 기분은 유쾌했다. 연극의 묘미를 살린 설정이 일품이었다. 연극업계 종사자들의 고민을 이해한 작가가 자기 스타일대로 풀어낸 이야기였는데 단발성이긴 하지만 확실히 재밌었다.



 '음울한 짐승의 환희'


 에도가와 란포의 특징 중 하나로 특유의 음울한 분위기를 꼽곤 하는데 그 분위기를 제대로 재현한 게 바로 이 작품이다. 하지만 거기에 그치지 않고 우타노 쇼고 스타일의 비호감 작렬인 캐릭터와 설정도 빠지지 않는데,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콜라보레이션이라 할 수 있겠다. 솔직히 가독성으로 따지면 이 작품이 단연 최고였다. 의외로 결말이 허무하다면 허무한 편이었지만 특유의 음울함은 제대로 풀어냈으니까.



 '비인간적인 사랑에서 시작되는 이야기'


 작중 암호 해독을 이해하며 읽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지만 작가도 그걸 아는지 질질 끌지 않고 속도감 있게 풀어냈다. 결말은 예상대로였지만 중간중간 드러나는 인물들의 감정선이 괜찮았다. 오마주한 작품이 국내에 소개가 안 된 작품이라는데, 그 작가의 작품 세계가 정말 방대하단 걸 실감할 수 있었다. 이 작품까지 읽으니 에도가와 란포의 작품을 하나라도 접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이 하도 많이 출간해서 뭘 읽을지 고민이 되던데, 한 번 찬찬히 살펴보고 읽어봐야겠다. 그래, 이제라도 읽는다면 그건 늦는 게 아닌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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