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정 뒤에는 천사가 묻혀있다 5
코야마 카리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5년 5월
평점 :
절판


7.6







 단언컨대 이지메를 다룬 일본 만화 중 가장 충격적인 도입부를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작품의 배경은 초등학교고 주요 인물들도 전부 초등학생인데 그렇게 소름 끼치고 혐오스러울 수 없었다. '멍멍이'라는 단어로 시작되는 극히 초등학생다운 단어들이 주는 이질적인 혐오감은 우라사와 나오키의 <20세기 소년>보다 더했다. 적어도 내가 알기론 가장 반전이었던 도입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만큼 가장 용두사미였던 작품이었던 것 같아 참 아쉽기 그지없다.

 그나마 5권까지 20화로 끝나는 초등학교 파트는 용두사미여도 볼 만했는데 인기에 힘입어 연재된 후속작은 명백히 사족이었다고 본다. 중학교를 배경으로 해서 수위는 더 높아졌지만 사실 이 작품의 강점은 외적인 수위에 있는 게 아닌 터라 아무래도 시큰둥할 수밖에 없었다. 작중에서 여왕벌 하치야 아이가 애들을 괴롭히는 방식은 지극히 교묘했는데 그래봤자 물리적으론 초등학생에 불과함에도 정신적으로 상대를 궁지로 모는 게 실로 가관이었기에 흡입력이 있었던 반면 후속작에서 다루는 에피소드는 그런 매력이 덜해서 여러모로 실망스러웠다.


 전반적으로 사람들이 작품에 대해 하는 말로 그림체는 괜찮으나 스토리는 자극적이기만 할 뿐 깊이가 없다고들 하는데 나도 전적으로 공감한다. 스토리가 반복적이라서 질린다고도 하는데 작품의 분량이 원체 짧아서 그렇게 질릴 정도는 아니었다. 하치야 아이를 비롯해 추종자들이나 방관자들, 그리고 반의 멍멍이로 전락한 희생양들을 묘사하는 방식이 만화답게 극단적인 측면도 있었으나 어쨌든 현실을 반영한 - 비단 일본만의 현실은 아니리라... - 면이 커서 몰입도가 높을 수밖에 없었다. 누가 봐도 픽션이지만 현실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는 게 이 작품에 있어 가장 큰 장점일 것이다.

 이지메와 같은 학교 폭력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어느 곳에서나 존재하지 않을까 싶은데 그를 다룬 이야기에선 나름의 신선하고 깊은 통찰력이 있어야 한다면 <교정 뒤에는 천사가 묻혀있다>는 - 작품 제목이 길어서 <교뒤천>으로 줄인다. - 신선하지만 통찰력은 떨어지는 작품이었다. 일본 연극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의 경우엔 학교 폭력의 가해자들의 부모들의 면면을 살펴보면서 아이들이 저지르는 폭력의 뿌리엔 그들 부모의 영향이 컸음을 짚어낸 게 꽤나 인상적이었고 <교뒤천>도 후반부에서 그렇게 풀어낼 것으로 기대했는데 이 부분이 가장 아쉬웠다. 사실상 부모까지 묘사된 경우는 작품의 선역들뿐이고 악역들한텐 그런 묘사가 부족해 깊이가 떨어진다고 느껴졌다.


 특히 하치야 아이의 개인사를 충분히 묘사하지 않았기에 결말이 그토록 허무했는지 모르겠다. 다른 추종자들이야 그렇다 쳐도 하치야 아이만큼은 가정 배경까지 공을 들여서 묘사했어야 했는데 너무 단편적인 정보만 늘어놓다가 결말이 나버려서... 이마저도 충격적이었지만 말이다. 아무튼 어지간히 용기를 내지 않는 이상 반기를 들 엄두가 나지 않는 하치야 아이의 악마성을 보다 잘 부각시켰더라면 작품의 인상이 꽤나 달라졌으리라 본다.

 하치야 아이가 그토록 활개를 치고 다닐 수 있던 데엔 그녀의 악마성의 덕이 컸지만 담임 선생인 키도의 무능함도 톡톡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는데 이 캐릭터가 막판에 미화되는 걸 보고 개인적으로 경악을 금치 못했다. 굳이 말하자면 이 요소 하나 때문에라도 점수를 많이 깎아야만 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담임이 이렇게 자기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작자가 아니었다면 하치야 아이의 마수가 그 정도로 커질 수 있었을까 생각해보면 노로세의 '키도 선생도 잘못된 방식이지만 아이를 사랑했다'는 발언에 열불이 나지 않을 수 없다. 이거야말로 정말로 이 작품이 깊이가 떨어진다는 것의 반증이라 보는데... 이 작품엔 그 숱한 혐오감을 감내하고서 결말까지 읽은 보람이 없는 나머지 이렇게까지 용두사미인 작품을 또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참, 이러기도 쉽지 않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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