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줄에 걸린 소녀 밀레니엄 (문학동네) 4
다비드 라게르크란츠 지음, 임호경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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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이런 말하긴 좀 그렇지만, 이 책이 나온 것은 사실 어떻게 보면 원작을 쓴 스티그 라르손에 대한 대단한 실례라고 할 수 있다. '밀레니엄' 시리즈를 3부까지만 쓰고 심장마비로 세상을 뜬 스티그 라르손은 자신의 작품이 엄청난 베스트셀러가 되는 걸 보지 못한다. 그로 인해 엄청난 돈을 벌리란 것도, 그 돈이 자신과 사실혼 관계였던 연인이 아니라 의절했던 원수 같은 아버지와 형제에게 가는 꼴도 죽은 사람으로선 알 길이 없다. 난 사후 세계를 믿지 않는 편인데 만약 사후세계가 있고 그 세계에선 이승에서 벌어지는 일을 그대로 관찰할 수 있다면 스티그 라르손은 두 번 죽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평생을 스웨덴 사회의 부조리함을 고발한 그가 자신의 죽음으로 인해 또 하나의 부조리를 낳다니 이 무슨 부조리란 말인가. 난 천국도 지옥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설령 스티그 라르손이 천국에 갔다고 해도 마음만은 지옥에 있는 것과 다를 바 없지 않을까 싶다.

 작가의 연인과 유가족은 시리즈의 인세를 두고 엄청나게 다퉜다고 한다. 생전에 극우파 때문에 목숨을 위협하는 일이 잦았던 작가는 자신의 연인과 혼인은 하지 않고 동거만 했었다. 즉, 연인이 유일하게 스티그 라르손의 가족이라 할 만한 사람임에도 법은 실질적인 혈육인 아버지와 형제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이에 분개한 작가의 연인은 미완성인 4부의 원고를 세상에 발표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고 작가의 아버지는 합의안으로 자신과 재혼하면(;;) 유산을 나눠주고 대신 더 돈이 될 4부의 원고를 출간하자고... 이렇게 지독히 폭력적인 진흙탕 싸움이 이어지다가 결국 새로운 '밀레니엄'의 작가를 섭외함으로써 싸움은 저 쓰레기 같은 스티그 라르손 혈육의 승리로 돌아갔다고 한다.


 새로운 작가 다비드 라게르크란츠가 쓴 <거미줄에 걸린 소녀>는 누가 뭐라건 간에 시리즈의 정식 후속작이다. 위에 열거한 작품 외적인 요소를 알고 보면, 또 굳이 그런 걸 모르고 보더라도 어쨌든 스티그 라르손이 쓴 전작과 비교를 하지 않을 수가 없는 후속작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기자 출신인 스티그 라르손보다 더 전문적인 소설가가 썼기 때문인지 문장이나 캐릭터 설정은 더 정갈해졌는데 정작 가장 중요한 스토리가 애매모호하다는 게 아쉬웠다. 분량에 비해 가닥이 안 잡히는 서사는 흡입력이 떨어지고 이야기의 발동도 늦게 걸려 지루한 면도 적잖았다. 캐릭터가 많은 것에 비해 각각의 활약은 미미하고 대놓고 후속작을 위한 떡밥만 남긴 것 같아 개별적인 작품으로서의 매력은 떨어지는 편이다. 특히 리스베트의 동생 카밀라의 등장은 뜬금없었는데 이 부분은 너무 전작을 의식한 탓에 범한 무리수라고도 여겨졌다.

 무엇보다 마음에 걸린 건 시리즈의 컨셉도 희미해진 것 같다는 것이다. 어쨌든 스웨덴 소설인 이 시리즈는 밖에서 봤을 땐 완벽하게만 보이는 스웨덴 사회도 그 나름의 병폐나 허점, 어두운 이면이 존재함을 수면 위로 꺼내왔는데 이번 4부에선 인공지능이니 산업 스파이 등 좀 더 국제적인 스케일의 사건을 다루면서 시리즈만의 개성이 많이 옅어진 느낌이다. 특히 스티그 라르손은 '밀레니엄'을 통해 여성에게 자행하는 폭력을 많이 조명했는데 그 부분도 미흡했다고 본다. 내가 전작 <벌집을 발로 찬 소녀>를 읽은지 무려 5년이 지난 터라 이제는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그래도 시리즈 특유의 시대를 앞서나간 여성 서사의 강렬함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봤을 때 이번 신작이 안정적이되 임팩트가 적은 계승을 보이지 않았나 싶다.


 이 작품은 영화로 먼저 접했는데 내 기억이 맞다면 영화와 소설의 내용이 아예 다르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 영화는 완전 액션 영화였다. 뿐만 아니라 일부 캐릭터 설정, 결말까지도 완전히 다르다. 그래도 부족한 점은 있어도 나쁘지 않은 영화였는데 소설도 세부적으론 많이 다르나 결과적으로 부족한 점은 있어도 나쁘지 않은 소설이었다. 일단 뒷맛이 아주 나쁘진 않아서, 또 이미 5부도 국내에 출간됐던데 그 작품도 읽어보려고 한다. 그런데 평이 별로인 걸 보면 아무래도 4부에서 느낀 불안한 점들이 다음 작품에서 엄청 터졌나 보다. 마치 스타워즈 여덟 번째 에피소드 '라스트 제다이'를 연상시킨다... 이 시리즈도 이렇게 호불호가 갈리는 작품으로 시작해 점점 수렁에 빠지고 말 것 같아 걱정이 된다. 스티그 라르손은 이 상황을 어떻게 생각할까? 자꾸 죽은 사람 떠올리면 안 된다지만 그래도 궁금하긴 하다.



 p.s https://blog.naver.com/jimesking/221419383016

 이건 영화 <거미줄에 걸린 소녀> 포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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