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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칸디나비아 예술사
이희숙 지음 / 이담북스 / 2014년 1월
평점 :
5.5
작년 노르웨이 여행과 올초에 읽은 <북유럽 그림이 건네는 말> 덕에 스칸디나비아 예술에 관심이 지대해졌다. 때문에 이에 대한 갈증을 정기적으로 해결해야 했는데, 그 방안으로 이 책이 딱 좋을 것 같았다. 제목이 <스칸디나비아 예술사>라니, 정말 기대되지 않을 수 없었다. 흔히 스칸디나비아 5개국이라고 하는 노르웨이, 핀란드, 스웨덴, 덴마크, 아이슬란드 순으로 해당 국가별로 2~4명의 화가들을 소개한다. 한 사람당 지면을 할애하는 게 많아봤자 30페이지고 - 이 비중의 주인공은 뭉크다. - 짧으면 아예 5페이지 안으로 끝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엔 그림을 두 점 정도 소개하고 끝인 셈인데, 이쯤 되면 의아함을 감출 수 없을 것이다.
기대했던 것에 비해 너무 부실한 내용에 실망을 금치 못했는데, 가장 많은 지면을 할애한 뭉크조차 수박 겉 핥기에 불과했으니 다른 작가는 더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본다. 이 책에서 가장 영양가가 있던 부분은 책의 서문이지 않을까. 근대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이 각각의 고유한 민속주의를 확립하려는 수단으로써 회화가 동원됐다는 주장이 꽤 그럴싸해 앞으로 소개될 그림들에 대한 기대감을 충분히 드높이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아까도 말했듯 수박 겉 핥기만 하고 다음 작가로 넘어가는 식이라서, 이럴 거면 차라리 소개하는 작가 수를 줄이는 게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무슨 질보다 양도 아니고.
처음엔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걸까 싶었는데, 혹은 외국어 표기들이 최대한 원어에 가깝게 표기한 건가 싶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저자 소개란에 '수개 국어에 능통'하단 구절이 있어 아무래도 긴가민가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책에서 소개되는 작가며 작품들을 전부 영어식 표기법과 영어 제목으로 적어놓은 것도 그렇고 프랑스어 표기마저도 거의 엉망이었다. 내가 해당 언어들에 능통한 편은 아니지만 하도 일관성있게 영어식으로만 표기를 해서 심히 거슬렸다. 어느 지경이냐면, 뭉크munch를 '뭉치'라고 표기하지 않은 게 오히려 의문일 정도였다. 책에 소개된 작가 이름도 이름이거니와 쓸데없이 영문으로 적어놓은 작품 제목들 때문에 반감만 커져갔다. 작가에게 이상한 선민의식이 있는 건 아닌지 의심되는데... 내가 너무 과민한 걸까?
흔히 번역된 소설을 읽을 때, 내용이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싶으면 번역을 탓하곤 하는데 솔직히 말하면 괜히 번역을 걸고 넘어지는 적도 몇 번 있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번역된 글을 읽을 때나 통용되는 것이고 국내 작가가 쓴 글을 읽을 땐 잘 대지 않는 핑곈데, 처음으로 한국 작가가 쓴 한국 문장을 보고 번역이 이상한 건지 의심이 갔다. 혹시 영어로 쓴 걸 한국어로 번역한 걸까? 그렇지 않은 이상 책의 혼란스런 문장들이 설명되지 않는다. 작가에게 미안한 얘기지만 이 책만 읽고선 스칸디나비아 예술은 커녕 스칸디나비아 자체에 대한 기대감을 품지 못할 것 같다. 예술에 대한 부분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짧은 글이 가독성이 떨어지기는 정말 오래간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