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선인간
찬호께이 지음, 강초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8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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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어떤 책을 읽을 때 본편 이전에 '작가의 서문'이 나오는 걸 별로 안 좋아한다. 꼭 이렇게 읽어달라고 읍소를 하는 것 같아 부담스럽거니와 또, 그렇게 작가에게 작품을 안내받으면 자칫 작가가 원하는 감상만이 나올 수 있으리란 생각에서다.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일 뿐이고, 4번째로 만나는 찬호께이의 이번 소설의 서문은 나름 적절한 역할을 해내지 않았나 싶다. 다이어트를 하고 있는 사람이 간혹 초콜릿이 듬뿍 들어간 케이크를 먹듯 우리에겐 '길티 플레져guilty pleasure'가 필요하단 말엔 동의하니까. 가끔은 철저하게 선과 악을 배제한 이야기도 읽고 싶은 법이지.

 <풍선인간>은 달랑 4편만 수록된 게 아쉬울 정도로 매력 넘치는 킬러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소설집이다. 2편이 나올지 안 나올지 모르겠는데, 개인적으론 굳이 2편이 나오지 않아도 괜찮을 듯하다. 사람의 몸에 접촉하면 상대를 자신이 원하는 대로 조종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남자가 킬러로 전직하고서 벌어지는 4편의 짤막한 이야기는 짤막한 대로 간결한 매력이 있어 후편은 나와도 그만, 안 나와도 그만이다. 어찌 됐건 마지막 수록작에서 캐릭터에 대해 일단락은 지어놨으니까. 솔직히 말하면 정말 절묘한 결말이기도 했고.



 '이런 귀찮은 일'


 살인 의뢰를 받지 않은 킬러 '풍선인간'이 자신의 일상을 일할 때처럼 프로페셔널하게 지켜내는 이야기. 근데 말이 좋아 프로페셔널이지, 실상 감정을 완전히 배제해 무자비하기 짝이 없는 킬러가 남들 눈에 띄지 않는 조용한 생활을 지키고자 벌이는 짓거리가 아주 섬뜩하다. 특이한 건 자신의 절대적인 능력에 도취될 법도 한데 딱히 그런 기색도 없이 제법 소시민에 가까운 마인드로 조심 조심 또 조심하는 언행이다. 타인의 몸에만 접촉해야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제약과 그에 따라 킬러의 행동에도 제약이 걸렸던 것, 그래서 주인공이 꽤나 머릴 굴리는 게 마치 만화 <데스노트>를 연상시키기도 했다. 풍선인간에겐 그 작품의 주인공과 달리 신세계의 신이 되겠다는 거창한 목표가 없어 결국 원하는 바를 무탈하게 얻어내는 게 인상적이었다.



 '십면매복'


 이 작품에서 드디어 의뢰를 받은 풍선인간은 작정하고 일을 벌이면 누구도 막을 수 없음을 선보인다. 풍선인간이 아닌 그의 대척자격인 형사의 시점으로 전개되는데 그래서인지 순수하게 타인의 시점에서 보는 풍선인간의 능력과 살인이 바로 이전 수록작보다 섬뜩하게 다가왔다. 삼엄한 경비를 뚫고 타겟을 죽이고야 마는 계획성과 그런 능력자를 체포 직전까지 몰고가는 형사의 추적, 그리고 그걸 또 자신만의 방식으로 무탈히 벗어나는 풍선인간의 모습엔 눈을 뗄 수 없었다. 무엇보다 재밌던 건 풍선인간이 시간을 벌고자 자기 딴에는 어울리지도 않는 허세를 부린 것에 이불킥을 차려는 장면이다. 이것 참, 어떻게 보면 클리셰를 파괴하는 모습이라 할 수 있겠다.



 '사랑에 목숨을 걸다'


 사건의 양상이나 반전의 정체는 그렇게 새로울 게 없었고, 또 풍선인간의 능력이 강하게 드러나질 않아 상대적으로 인상이 흐릿한 작품이었다. 하지만, 풍선인간이 차라리 귀엽다고 느껴질 정도로 막장 의뢰인이 등장해 어떻게 보면 가장 강렬한 인상을 준 작품이기도 하다. 이 작품만 보면 정말 찬호께이가 <13.67>을 쓴 그 작가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냉소적이기가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으니... 말이 나와서 말이지만 킬러라는 직업이 결국 수요가 있기 때문에 존재할 뿐이란 사실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 파티'


 교묘한 트릭과 더불어 엄청난 당혹감을 안겨주던 작품. 이 당혹감 때문에 <풍선인간>이란 책의 제목에 걸맞는 마지막 장면조차 임팩트가 약했다. 이 작품의 후반부 반전이 꼭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을 연상시키기도 했는데, 그 작품에서처럼 킬러인 풍선인간을 복잡미묘하게 바라보게 돼 씁쓸한 침묵만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뜬금없게도 작가가 쓴 서문에서 배신감이 느껴졌다. 작가의 서문에서 말했듯 이 소설집이 정말로 '길티 플레져'에만 집중한 줄 알았는데... 설마 이런 식으로 킬러 역시 사람이란 걸 시사할 줄은 몰랐다. 그만큼 내 딴에는 정말 예상치 못한 결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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