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크 미메시스 그래픽노블
스테펜 크베넬란 지음, 권세훈 옮김 / 미메시스 / 2014년 9월
평점 :
품절


9.5







 뭉크와 관련된 책이라면 어지간하면 찾아보려고 하는데 그런 와중에 이 그래픽 노블을 발견했다. 저자 스테펜 크베넬란은 한 번도 정식으로 만화를 공부한 적이 없다고 하는데 덕분에 아주 개성적이고 파격적인 그림체의 뭉크 전기를 접할 수 있었다. 마치 쿠엔틴 타란티노가 영화를 정식으로 공부해본 적이 없음에도 거장으로 불리는 것처럼 이 작가도 약간 비슷한 과라고 볼 수 있을 듯하다. 아무래도 노르웨이에서 가장 비싼 지폐의 모델로 선정될 정도의 위인인 뭉크인지라 작가가 전기 만화를 그린다는 것에 사명감 내지는 부담감을 느꼈을 법한데 결과물은 여느 뭉크 관련 책과 비교해도 꿀리지 않는다. 꿀리지 않을 뿐더러 차별화되는 부분도 많이 있었다.

 작가가 거의 7년에 걸쳐 그렸다는 이 뭉크 전기 만화는 표현주의의 대가 뭉크에 뒤지지 않는 독창적인 그림체를 자랑하는데, 흡사 캐리커처를 연상시키는 그림체가 무척 인상적이면서 피로감이 들기도 해 사람에 따라선 취향 꽤나 갈릴 듯했다. 아마 뭉크 그림의 암울한 매력에 반한 사람일수록 그의 우스꽝스런 모습을 드러낸 장면이 더 반감이 들 법도 하다. 특히 뭉크가 매춘을 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는 - 시대 배경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긴 하다만... - 그야말로 난장판이 따로 없었는데 도리어 이런 가감없는 묘사가 있어 책 전체의 내용을 더욱 신뢰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책의 분량은 300페이지도 안 되는데 80이 넘도록 장수한 뭉크의 인생을 전부 그리기 힘들었는지 작가는 뭉크의 특정 에피소드만 골라서 그리는 것에 집중했다. 우리가 뭉크하면 떠올리는 <절규>나 애인과의 소동은 짧게 넘어가고 오히려 베를린 유학 시절의 비슷한 스칸디비아 출신 예술가들과의 교류, 특히 스웨덴의 작가 스트린드베리와의 관계 같은 게 많이 조명됐는데 흔히 여성에 대해 두려움을 넘어 혐오라는 감정을 갖고 있는 뭉크의 정신 세계를 들여다보기에 적합했다고 본다. 작중 뭉크는 오늘날 우리가 인식하는 대가로서가 아닌 이제 막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신출내기로서 작품 속을 활보하는데 생생한 묘사에 힘입어 상당히 감정적인 괴짜로 다가왔다. 뭉크가 나름 괴짜인 줄은 알았지만 그동안 활자로만 접하다가 그림으로 접하니 아주 신선했다. 그야말로 만화의 장점이 아주 잘 드러난 부분이라 할 수 있겠다.

 솔직히 이만한 퀄리티의 작품이라면 뭉크의 탄생부터 죽음까지 전생애를 그렸으면 어땠을까 싶지만 작가가 집중하고픈 부분에만 집중한 덕에 이만한 퀄리티가 유지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시간이 전개되는 순서도 약간 뒤죽박죽인 감도 있고 그림체는 좋게 말해 개성적, 나쁘게 말하면 정갈하지 못해 개판 5분 전이라 오래는 읽기 힘들다는 단점도 있지만 그래도 결국 더 길었으면 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고흐와 달리 뭉크의 삶은 2차 창작이 된 적이 사실상 전무해서 이런 작품이 더욱 소중할 수밖에 없다. 욕심을 더 부려본다면 만화말고도 영화도 나왔음 좋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욕심에 지나지 않겠지. 이 책을 읽어보니까 뭉크의 삶이 이렇게 만화화된 게 오히려 기적이라 여겨질 정도로 뭉크의 삶은 2차 창작으론 애매한 감이 있으니까. 어두워서? 그런 이유도 있고, 솔직히 말하면 픽션화시키기에 다소 덜 드라마틱한 측면이 있어서... 물론 뭉크를 좋아하는 사람에겐 그런 건 아무래도 좋을 일이겠지만 그래도 이 만화를 읽으니까 어쩐지 뭉크의 이야기가 세간에 많이 알려지지 않았는지 알 것도 같았다.


 서두에서 밝혔듯 뭉크와 관련된 책이라면 어지간하면 찾아보려고 한다. 아마 이 다음에 읽을 책은 뭉크의 <절규>가 도난당한 실화를 다룬 <사라진 명화들>이 될 듯한데 그 책은 상당히 기대된다. 슬슬 뭉크 이야기가 익숙해질 무렵 그런 신선한 이야길 접하는 것도 좋은 자극이 될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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