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사회 - 타인의 공간에서 통제되는 행동과 언어들
김민섭 지음 / 와이즈베리 / 2016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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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일전에 '309동 1201호'라는 필명의 저자가 쓴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미리 말하는데 그 책의 내용은 저자의 필명 만큼이나 강렬한 듯 무색무취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그 모든 내용이 경험을 바탕으로 한 엄연한 실화이며 저자가 고발하는 사회의 부조리가 날카로웠던 부분도 있었기에 단순히 저자로서가 아닌 한 개인으로서의 미래를 담담히 응원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저자가 필명을 벗고, 동시에 지방대 시간강사 자리도 박차고 나와 본명으로 글을 쓰며 책도 여러 권 냈다는 소식이 적잖이 반가웠다. 학교에서의 10년보다 거리에서의 1년이 자신에게 더 가치있었다고 역설하는 김민섭 작가의 패기는 제법 이 사회에 파동을 불러일으키는 듯했다.

 이번 에세이도 전체적인 인상은 저번에 읽은 책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와 에세이가 잘 안 맞는다는 걸 감안해야겠지만, 그럼에도 저자가 동어를 반복한 탓인지 흡입력이 떨어졌다는 걸 강조하고 싶다. 대리 기사로 일하면서 얻었던 통찰을 글에 온전히 녹여내고 싶은 마음은 알겠는데 타인의 공간이니 주체니 비슷한 단어를 남발하는 게 어느 순간부턴 조금 지겨워졌다. 저자의 글이 내게 크게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한 탓일까? 생각해보면 택시는 타봤지 대리는 한 번도 이용해본 적이 없기에 실질적인 체험에서 오는 공감이 부재했던 건 부정할 수 없다.


 글쎄, 어쩌면 저러한 감상은 순전히 나의 질투에서 기인한 것인지 모른다. 어쨌든 저자는 열심히 일하면서 글도 썼고 어떻게든 가족을 부양하고 있으며 아내와도 힘겨운 삶 속에서도 서로 의지하며 조금씩 이렇게 활자로나마 이 사회에 자신의 족적을 남기고 있으니까. 그렇기에 앞에서 쓴 지겹다느니 흡입력이 어떻다느니 하는 말은 트집이 아니었냐고 따져도 할 말은 없다.

 실질적으로 공감하기엔 좀 버거웠지만 단순히 대리 기사라는 특수한 직업 세계를 간접 체험한 것 자체는 흥미로웠다. 아주 극적이진 않았지만 아무튼 대리 기사로서 고객의 차 안에서 한없이 을이 되는 서러움과 긴장감 등은 넘치도록 잘 묘사했다고 할 수 있다. 아무래도 직업의 특성상 진상 손님 에피소드가 나오지 않을까 했는데 오히려 그렇지 않은 손님, 품격이 있던 손님과 관련한 에피소드가 꽤 인상에 남았다. 그러고 보면 세상은 긍정적인 힘으로 돌아간다는 말이 그냥 있는 말이 아닌가 보다. 간단히 말해 대리 기사를 아랫사람, 자기는 윗사람으로 선을 긋지 않는 데서 품격이 만들어지고 그렇지 않은 사람일수록 자신이 그은 선에서의 아랫사람에 속하게 된다는 말은 꽤나 정곡을 찌르는 표현이었다. 나도 서비스업에 종사를 하기 때문인지 특히 공감이 갔다.


 저자가 글 속에 자기 인생 이야기를 많이 넣다 보니 글을 다 읽고나서 저자의 앞날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이 출간된 게 16년이고 지금 저자 이름을 검색하니 3권 이상의 책이 더 출간됐다. 그 모든 책이 분명 전업 작가로서 낸 것은 아닐 터다. 앞에서도 얘기를 했지만 단순히 글의 결과물을 떠나서 사람으로서 존경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다. 자신의 인생 경험을 글로 풀어내는 것도 쉽지 않고 그 글로나마 가족과 함께 이 시대를 살아가는 게 절대 녹록지 않을 텐데 말이다... 정말이지 동정표가 아니라 순수하게 사람으로서 응원하게 되는 작가다.



https://blog.naver.com/jimesking/220719755141

 이건 저자의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포스팅.

인상 깊은 구절




"차가 많이 낡았죠" 하고 웃던 그는, 차의 ‘가격‘과는 별개로 내가 만난 가장 ‘품격‘ 있는 손님이었다. 대리기사와 자신을 함께 주체로 만들었다. 그러한 힘은 상대방의 처지에서 공감하고 또한 경청하는 데서 나온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대리기사와 자신을 함께 대리로 격하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보이지 안흔 선을 긋고 하대하지만 결국 자신도 그 밑에 존재함을 알지 못한다. - 88~8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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