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 포터와 불의 잔 4 (무선) 해리 포터 시리즈
조앤 K. 롤링 지음, 최인자 옮김 / 문학수첩 / 200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9.2







 시리즈의 세계관이 본격적으로 어두워지고 방대해지는 '불의 잔'을 읽었다. 영화와는 정반대로 원작 소설은 이 4편이 가장 완성도가 높다고 평가를 받는데, 개인적으로 휴고상을 받았다는 것에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해리 포터' 시리즈는 내심 상업적으로 대단한 성공을 거뒀지만 문학적으로는 덜 인정 받는, 한마디로 유명세에 비해 과소평가를 당하는 이미지가 있었는데 꼭 그렇지도 않았던 것이다. 휴고상이면 판타지/SF 장르에서 주는 최고의 상인데 '불의 잔'이 그 상을 받았다는 얘길 듣고 얼마나 얼떨떨했는지 모른다. 과소평가를 당했다니, 나도 참 별 이상한 생각을 했었다.

 전작들과 비교했을 때 분량이 2배로 늘어서 전개나 몰입도 측면에서 불안하긴 했는데 그건 정말이지 기우에 불과했다. 사실 전개 자체는 전편에 비해 느린 편에 속한다. 1권이 다 끝나도록 호그와트에 들어가지 않는 걸 보고 작가가 작정하고 분량을 키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호그와트 4학년생의 바쁘도록 치열한 일상과 더불어 다른 마법 학교의 대표단과 경쟁을 하는 트리위저드 시합, 그리고 불안하게 꿈틀대는 볼드모트의 위협이 어우러져 분량에 대한 기우가 무색하게 아주 긴박하게 진행된다. 긴 분량이 몰입도를 저해시키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는 아주 대표적인 사례가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두 번째로 읽으니까 전개가 빠르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해리 포터'는 일단 시작은 아동 독자를 대상으로 기획된 시리즈라 문장의 깊이나 심오함이 상대적으로 옅은 건 사실이나 대신 가독성은 괄목할 만하다고 인정받았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이라고 딱히 문장이 거슬린다거나 하는 건 없었지만 바티 크라우치나 볼드모트를 위시로 한 죽음을 먹는 자들의 대두를 다루는 대목에선 내가 기대했던 감정선이 생각보다 덜 묘사된 것 같아 어딘지 모르게 김새기도 했다. 이건 좀 미묘한 문제긴 한데, 특히 바티 크라우치의 과거의 전모가 쥐고 있는 사건의 열쇠는 그 역할이 상당히 중요했는데 펜시브나 베리타세룸처럼 마법의 도구가 사용되면서 연출상 쉽게 묘사된 건 약간 썰렁한 감이 있었다. 4권 다 합쳐서 1,200페이지가 넘는 분량 동안 끌고 온 긴장감을 간단히 묘사함으로써 읽는 입장에서 시원한 맛은 있었지만, 또한 작가 입장에서도 무척 경제적인 연출이었겠지만, 난 어째선지 아쉬움을 감출 수 없다. 워낙에 추리소설적으로 쓰인 작품이라서 그런 걸까? 역시 '해리 포터'답게 반전은 놀라웠지만 복선의 빈도나 인상이 얕아서 아쉬움이 떠나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다 보니 문장이나 연출 같은 것을 문제삼는 상황이 되고 말았는데... 그럼에도 이번 '불의 잔'은 이전 작품들에 비해 고평가받아 마땅한 부분이 다수 존재한다. 본격적으로 마법부라는 조직을 독자들 뇌리에 각인시킨 것, 리타 스키터 같은 기레기를 등장시키면서 자극적인 기사에 선동당하는 사람들의 심리에 대한 고찰에도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었고 본의 아니게 트리위저드 시합에 참가해 온갖 누명에 시달려 정신적으로 궁지에 몰리는 해리의 심리 묘사도 인상적이었다. 론의 열등감이나 헤르미온느의 빠질 수 없는 존재감이 이 3인방의 관계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도 엿볼 수 있었는데 특히 좋았던 건 사춘기랍시고 튀어나오는 인물들의 돌발 행동이 그렇게 유치하게 그려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무리 사춘기라 하더라도 가끔은 용납하기 어렵거나 손발이 오그라드는 경우도 있기 마련인데 이 작품에선 그 선을 잘 지키지 않았나 싶다. 가령 론의 열등감이랄지... 앞으로 남은 3편의 후속작에서 얘가 어떻게 열등감을 표출시킬지 떠오르기 때문에 지금 4편에서의 모습은 차라리 귀엽게 느껴진다. 세상에...


 심화된 인물 묘사와 세계관 확장은 '불의 잔'이 후속작에게 남긴 최고의 유산이다. 어쩌면 볼드모트의 부활 같은 것보다 더 흥미진진한 전개를 기대할 수 있는 요소라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볼드모트의 존재 역시 간과할 순 없다. 하지만 때론 이런 절대악만큼이나, 애매하게 악하거나 비겁한 무리가 만만찮은 스트레스를 주기에 다음 '불사조 기사단'이 벌써부터 기대되고 불안하다. 그 작품에선 마법부의 뻘짓과 더불어 엄브릿지까지...... 어쩌면 해리는 바로 다음 해에 이런 험난한 상황과 직면할 것을 알았기에 우승 상금을 조지와 프레드 형제에게 내줬는지 모른다. 웃음을 위해 돈을 투자하다니, 통찰력 있는 행동이 아닐 수 없었다.

만약 어떤 사람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 그 사람이 자신과 동등한 사람이 아닌 자신보다 약한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잘 살펴보면 된단다. - 3권 237p




포터, 원래 품성이 바른 사람은 조종하기가 더 쉬운 법이다. - 4권 19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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