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의 형태 7 - 완결
오이마 요시토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5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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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다 읽기까지 생각보다 오래 걸린 작품이다. 7권으로 완결되는 짧은 만화라 마음만 먹으면 금방 읽었을 텐데, 내용의 무게와 깊이 때문에 점점 다음 장면을 읽는 게 부담이 돼 손길이 잘 안 갔다. 처음엔 청각장애인이 등장한다는 말만 듣고 호기심으로 접했는데 정작 궁금했던 청각장애인이 바라보는 세계나 일상보다 친구와의 관계라는 테마가 매우 강하게 드러나는 지라 나도 모르게 자세를 바로잡고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이 작품의 개요는 간단히 말하면 이렇다. 왕따 가해자인 소년 쇼야가 시간이 흘러 죄를 뉘우쳐 자신이 왕따시킨 소녀 쇼코에게 용서를 비는 이야기다. 쇼코의 청각장애를 빌미 삼아 어리다고 해서 그냥 넘어가기 힘들 정도로 그녀를 따돌린 쇼야는 머잖아 그 대가로 반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한다. 쇼코의 보청기가 고장난 것으로 시작된 왕따 가해자 색출 과정에서 쇼야가 지목되는데, 그로서는 억울한 마음에 자기와 함께 그녈 따돌리거나 그를 방관하기만 한 동급생, 심지어 담임 선생까지 걸고 넘어지다가 비롯된 결과다.

 그 결과 쇼코는 전학을 가고 쇼야의 어머니는 고장난 보청기 값 170만엔 때문에 쇼코의 어머니 앞에 고갤 숙이고 쇼야는 자신이 쇼코에게 저질렀던 따돌림의 대가를 받는다. 쇼야는 자신이 따돌림을 받는 입장에 처하자 그제야 같은 처지였던 쇼코가 상상을 초월하는 반응을 보였던 것을 떠올리며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 시작한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굳이 같은 처지의 쇼야가 아닌 독자 입장에서도 쇼코의 반응은 기이하기 짝이 없었다. 쇼코는 보살이기라도 한 건가? 왕따 가해자 무리의 주모자를 끝까지 '친구로서' 대했던 쇼코의 지난 모습을 잊지 못한 쇼야는 가족을 제외한 인간관계가 망가질대로 망가졌음에도 한 가지 목표 의식을 갖고 살아가게 된다.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지점, 쇼야가 형태를 갖춘 목소리인 수화를 배운 뒤 쇼코에게 그간의 미안함을 달래러 가는 장면은 사람마다 해석이 갈릴 듯하다. 기특하기도 하지만 역겹다고 생각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내 경우엔 같은 처지에 처한 다음에야 정신을 차린 게 한숨이 나오리만치 안타까웠다. 혹자는 이 작품이 '가해자의 판타지'에 지나지 않는다고 일축하기도 했다. 피해자에게 손쉽게 용서를 받을 수 있을 거란 가벼운 생각에서 비롯된 전개인 것 같다는 뜻에서 나온 말일 터다.

 아무튼 예상치 못한 이 극적인 만남은 단숨에 둘의 주변을 통째로 뒤흔든다. 처음엔 쇼코를 만나 사과를 하고 바로 생을 마감할 생각이었던 쇼야는 이걸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해 그녀가 행복을 되찾도록 이번엔 자신의 한 몸을 바치기로 한다. 원래라면 행복했어야 할 그녀의 어린 시절을 자신이 망쳤다는 죄책감에서 비롯된 새로운 목표 의식이다. 그 이후부터 쇼야와 쇼코는 자신들이 처음 만났을 적에 동급생이었던 인물들을 한명씩 만나러 간다. 몇 명은 일부러 찾아가기도 하고, 몇 명은 우연히 만나기도 했다. 어떤 사람은 집단 따돌림이 본격적으로 심화되기 전 전학을 가서 쇼야가 쇼코를 괴롭힌 사실을 모르기도 하고, 누구는 쇼야 못지않게 쇼코를 괴롭힌 주제에 아무런 대가도 받지 않고 뻔뻔스럽게 잘 살아왔으며, 또 누구는 아예 자신이 쇼코를 따돌렸다는 자각 자체를 못하기도 하는 등... 쇼코의 행복을 되찾으려는 쇼야의 여정은 힘겨워만 보인다. 쇼코도 쇼코지만 쇼야 역시 모두에게 따돌림 당한 트라우마를 정면으로 마주해야 하므로.


 작품에서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집단 따돌림의 양상을 매우 현실적으로 그렸다는 것인데, 예를 들면 가해자가 순식간에 피해자가 되기도 하는 무서움이나 상황을 해결할 때 초기 단계에서의 행동, 특히 담임 교사의 역할에 따라 결과가 크게 좌우되는 것을 무서울 정도로 잘 묘사한 것을 들 수 있겠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주요 인물 중 어느 누구도 완벽하게 선인이라고도 악인이라고도 볼 수 있는 캐릭터가 없다는 점이다. 이는 작가가 직접 한 말이기도 한데, 말인즉슨 이 작품의 입체성을 완벽히 신용할 수 있다는 것과 같다. 이 작품의 현실성과 입체성은 관계를 쌓아감에 있어서 상대에게 다가가는 자세, 그리고 불가능하게만 보이는 용서와 화해라는 주제를 완성도 있게 풀어낸다.

 일견 '친구 놀이'로도 보이는 쇼야와 쇼코의 여정은 불안하게 시작된 만큼 다시 한 번 제대로 파국을 맞이하고 만다. 다른 건 몰라도 쇼코의 면전에다 '난 옛날에 너에게 한 짓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아.'라고 말한 인물이 있는 것만으로 행복한 결말 같은 건 도무지 기대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이 말에 대한 쇼코의 반응은 더 가관이었다. '난 내가 싫을 뿐이야.' 이 말을 듣자 상대는 그건 싸움을 회피하는 것이라며 매도한다. 난 쇼코의 이런 모습에서 극도의 자기 혐오를 읽어낼 수 있었다. 알고 보니 쇼코는 자신이 왕따 피해자건 뭐건 이 모든 갈등의 원인은 바로 자기자신, 자신의 장애에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쇼코의 자기 혐오적인 태도는 객관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건 어쩌면 쇼코의 장애보다 더 심각하다고 볼 수 있는데 나중에 이런 성격이 어쩔 수 없는 일임이 드러난다. 청각장애인을 낳았다는 이유만으로 시부모에게 이혼을 요구당한 쇼코의 어머니의 수모를 보고 자란 어린 쇼코로선 자신의 장애를 비관하며 사는 것말곤 달리 도리가 없었을 법하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쇼코는 가는 학교마다 장애를 이유로 따돌림을 당하고 그런 식으로 학교를 옮겨다니는 등 쇼코의 비관은 겉잡을 수 없이 커졌다. 쇼코의 보살과도 같이 보였던 모습엔 다 이런 뒷이야기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모습은 애석하게도 쇼코가 극복해야 하는 것이라고 작품은 말한다. 잔인하게 들릴 테지만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 쇼코는 그저 다른 인물들이 그렇듯 자기에게 주어진 난관을 부여받았으며 그를 헤쳐나갈 적절한 상황에 직면하고 있을 뿐이다. 청각장애라는 압도적인 구실로 인해 자기애가 지나치게 부족한 쇼코는 본의와 상관없이 상황을 악화시킨 면이 없지않아 있으며 - 물론 그 책임은 가해자들과는 가히 비할 수 없이 적으나 - 작품 후반부에선 이 때문에 엄청난 민폐를 끼치기까지 한다. 쇼코를 동정하지 않을 수 없긴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앙금을 털어내지 않고 속으로 담아놓기만 하면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형태로 터질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작품 후반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객관적으로 얘기하게 된다.

 워낙에 문제적 인물이 많이 등장하는 작품이라 내가 지금 쇼코의 사소하고 미미한 단점을 침소봉대하여 말하는 게 아닐까 싶지만, 한편으로 쇼야와 함께 작품의 주인공인 쇼코인 만큼 작가가 신경 써서 묘사한 것 같아 시간이 지날수록 가장 얘기하고 싶은 부분이기도 하다. 다르게 보면 쇼야나 다른 인물들보다도 특수하고 민감하거니와 딱히 누구를 선, 누구를 악으로 상정하고 그리지 않았다는 작가의 말에 근거했을 때 가장 흥미로운 게 또 쇼코란 캐릭터인 지라 이렇게 길게 얘기했던 것 같다.


 결말이 느닷없다거나 대가를 치러야 할 사람이 대가를 충분히 치르지 않은 것이 불편하다는 게 사람들이 작품의 결말을 별로 환영하지 못하는 이유일 것이다. 나도 어느 정도 동의하는데, 특히 쇼코와 쇼야가 받은 상처에 비해 다른 인물이 너무나 쉽게 용서를 받았다는 건 누구나 공감하리라 본다. 그래서 여운을 낸답시고 끝이 나버린 모양새가 그리 달갑지 않을 수 있겠다. 작품 속에서 가장 피해를 받은 둘이 너무 대인배에다가 낙관적으로 앞을 내다보는 감이 있는 게 답답할 수도 있다. 아마 독자들 대부분은 정녕 이대로 끝나도 되느냐고 되물을 것도 같다.

 그렇지만 나는 이 작품의 결말을 덜 만족스럽더라도 변호를 하고자 한다. 이 작품이 전체적으로 쇼야와 쇼코의 성장을 그림과 더불어 대부분의 갈등을 개연성 있게 해소했기 때문이다. 또한 '가해자의 판타지'라는 의심의 눈초릴 받게 했던 쇼코의 보살과도 같은 성품을 설득력 있게 풀어낸 것이며 그로 말미암아 쇼코란 캐릭터까지 입체적으로 묘사해 이 세상엔 완벽한 선인도 악인도 없어 인간 관계가 어렵거니와 용서와 화해가 우리의 생각보다 불가능한 영역에 있음을 시사하는 등 이래저래 현실성을 저버리지 않았던 것도 이 작품의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갈등엔 타인의 잘못만이 아닌 자기 혐오 또한 주요한 원인일 수 있음을 냉정하지만 따끔하게 지적한 건 신선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역시나, 이토록 현실적으로 결말이 난 것이 무척이나 <목소리의 형태>다웠기에 덜 만족스럽더라도 작품의 결말을 지지하지 않을 수가 없다.


 오랜 시간에 걸쳐 읽은 작품이다 보니 말도 그만큼 길어졌는데 간단하게 정리해보겠다. 이 작품을 담당한 편집자가 '사지 않아도 좋으니 모든 사람이 읽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는데, 적어도 그 극찬이 아깝지 않은 작품임엔 분명했다. 쉽게 읽기에 너무 잔혹했지만 그렇기에 좋은 작품이었다.

어떡하면 자신이 옛날보다 성장했다는 걸 증명할 수 있을까? - 제41화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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