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실을 향해 쏴라 이카가와 시 시리즈
히가시가와 도쿠야 지음, 임희선 옮김 / 지식여행 / 2012년 1월
평점 :
품절


7.5






 히가시가와 도쿠야의 책은 정말 오랜만에 읽어본다. 아마 5년 전에 읽은 게 마지막인 것 같은데 지금 그의 작품을 읽으니 옛날과는 다르게 다가온다. 다름 아닌 그의 전매특허라 할 수 있을 유머라는 코드가 무척 거슬렸던 것이다.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이라도 먹은 것일까? 옛날엔 인물들의 얼빠진 면모나 이름 갖고 말장난하는 게 재밌었는데 지금은 좀 지리멸렬하게 읽혔다. 어떻게 보면 추리소설이란 진지하고 어두운 것이란 통념을 보기 좋게 도전한 작풍이겠고 작가도 뚝심으로 밀고 나가 자신만의 새로운 지평의 추리소설을 구축했으니 퍽 긍정적인 특징이라 봐야 할 테지만... 그냥 이 작품에서 유난히 작가가 유머에 고전했던 것이라고 넘어가는 게 좋을 듯하다.

 이 작가의 장점은 유머가 아니다. 유머는 곁가지이자 작가만이 목매는 요상한 잔재미라 치부해도 좋을 정도다. 결국 추리소설이라고 한다면 유머보단 단연 트릭과 반전에 집중을 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지금까지 읽은 히가시가와 도쿠야의 작품은 어딘가 나사 빠진 유머에 비해 대체로 추리소설의 본분에 있어서는 얕볼 수 없었다. 히가시가와 도쿠야를 자기 복제의 대가라고 인식할 만큼 작품을 많이 읽지 않았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읽은 작품들은 그랬다. 예전에 읽어서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데뷔작인 <밀실의 열쇠를 빌려 드립니다>와 대표작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 식사 후에>가 겉모습에 비해 추리소설의 원초적 재미가 탄탄해 깜짝 놀랐던 인상은 아직도 남아있다.


 <밀실을 향해 쏴라>는 작가의 데뷔작이 속한 '이카가와 시' 시리즈 2편이다. 전편을 너무 재밌게 읽어서 거의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기분으로 읽었는데 기대가 너무 과했던 건지 가독성에 비해 몰입하기 쉽지 않은 작품이었다. 처음부터 의욕 넘치게 쏟아지는 유머는 대부분 유치했고 중반부 넘어서도 전개가 지루해서 하마터면 대단히 실망할 뻔했다. 가독성이 좋지 않았다면 중반부에 도달하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이야기의 4/5 지점에서부터 뿌린 복선을 착실히 거둔 후반부의 추리쇼도 마찬가지다. 한마디로 본전치기에는 성공한 작품이었다.

 살인 도구로 총이 주요하게 다뤄진 추리소설이 몇 있을까 싶을 정도로 컨셉은 나름 신선하니 괜찮았다. 남은 총알 개수와 울려퍼진 총성을 짚어가며 추리해가는 후반부도 재밌었다. 이야기의 규모에 비해 분량이 너무 길다는 느낌은 들지만 - 이게 다 유머 때문이다. 물론 호불호가 갈리는 요소이고 작가가 추구하는 점이기도 해 아예 빼버릴 순 없겠지만 분량이 줄면 어떨까 싶었다. - 결말은 깔끔해서 속이 후련했다. 특히 유머로 인해 잊혀질 뻔한 작중 초반의 형사들의 실책을 결말에서 따끔하게 지적해 장르의 정체성이 흔들리지 않은 것은 다행이었다. 어쨌든 살인사건이 등장한 추리소설이기에 끝까지 가벼운 분위기를 유지했더라면 뒷맛이 개운치 않았을 텐데 그 우를 범하지 않아서 내가 괜한 걱정을 했구나 싶었다.


 데뷔작 다음에 바로 쓴 작품이라 그런지 전체적인 완성도가 전편에 미치지 못했지만 어느 정도 결말을 잘 맺었다고 본다. 시리즈의 후속작이나 작가의 다른 작품에 대한 기대를 심어줬다는 측면에서 말이다. 지금 국내에 출간된 작가의 작품이 워낙 많아서 뭘 먼저 읽을지 살짝 고민되지만 아마도 이 작품의 내용이 가물가물해지기 전에 시리즈 3편인 <완전범죄에 고양이는 몇 마리 필요한가>를 먼저 읽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나저나 그 작품, 검색하니까 절판됐다고 뜨던데 읽으려면 빨리 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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