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노후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2
박형서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9.0






 국가가 몸소 자행하는 살인, 이라는 컨셉의 소설을 쓰려고 할 때 친구가 추천한 책이다. 약 20년 뒤의 현실적인 디스토피아를 배경으로 한 매우 간결한 중편 소설이다.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것에 비해 출산율은 그에 미치지 못했는지 작중의 세계관에선 젊은이 한 명이 노인 3명을 부양해야 한다. 여기까지 들었을 때, 일단 사회가 이렇게 극단에 이르기까지 손을 놓고 있었다는 게 납득이 좀 안 갔고 정부가 그나마 젊은이들의 숨통을 풀어주겠답시고 마련한 대책도 어이없었다. 그 정도로 노인이 많아지면 연금 정책을 대대적으로 손을 봐야 하는 게 맞을 텐데, 이 작품에선 그런 근본적인 문제보단 그저 연금 수령자인 노인들을 암살한다는 실로 믿을 수 없는 작태를 보이고 있다. 이런 기본 설정만 본다면 신선함보다 황당함이 앞선다.

 친구가 이 작품의 개요를 어느 정도 가이드해줘서 좀 더 탄력적으로 읽혔던 것 같다. 만약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읽었으면 지금처럼 인상적이었을지 솔직히 모르겠다. 노인의 존재에 대한 아주 직접적인 비판을 하는 캐릭터의 등장은 우타노 쇼고의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를 떠올리게 만들었는데 특히 그 인물의 개똥 같은 철학이 비슷했다. 개인적으로 그전까지의 작가의 문체가 간결하고 사무적인 느낌이라서 좋았는데 후반부의 인물간 대화에선 이런 호감이 많이 깨졌다. 꼭 이렇게 대사가 약한 작가들이 있다. 아니, 이 작가의 경우엔 대사는 자기와 어울리는 문체를 구사하지 못하는 것이라 해야 하나? 아무튼...


 예상대로 꿈도 희망도 없이 허무하게 끝나는 작품이었다. 뭐, 엄밀히 말하면 지금까지 암살자로서 연금 수령자인 노인들을 죽였으면서 이번엔 동료들이 자기 아내를 죽이려 하자 이성을 찾지 못하고 돌변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내가 봤을 때 너무 이중적인 것 같아 결말이 그렇게 새드엔딩으로 느껴지지 않았지만 작품 특유의 연출 덕분인지 가슴 한쪽에서 착잡함이 맴돌았다.

 아마 이런 연출이 있기에 작품 전체의 황당함이 상대적으로 옅게 느껴지는 것일 터다. 잊을 만하면 불규칙적으로 서술되는 암살당한 노인들의 짤막한 일대기의 흡입력은 가히 괄목할 만했다. 국가가 자행하는 암살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사뭇 그 무게를 실감하게 만드려는 듯 구절 하나 하나가 묵직했다. 어쩌면 이런 묘사가 있었기에 주인공의 이중성이 더 부각된 것일 터다. 결국 자신이 충성했던 국가에 이용만 당한 꼴이 된 주인공의 아이러니한 처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어서 일련의 연출이 꽤 효과를 거뒀다고 할 수 있겠다. 잘못된 국가를 비판 없이 맹목적으로 따라봤자 의외로 남는 것은 없으리란 의혹을 심어주지 않았는가. 그래서 여담이지만 작품 본편만큼이나 해설도 꽤 인상적이었다.


 박형서 씨는 수업 때 <자정의 픽션>으로 얘길 많이 들은 작간데 이제야 그의 작품을 접하게 됐다. 또 현대문학의 핀 시리즈 소설선도 처음 읽어봤는데 분량이나 책의 만듦새가 마음에 들어서 앞으로도 관심을 기울이고 찾아볼 것 같다. 그나저나 한국 작가의 소설은 꽤 오랜만에 읽었는데 최근 국내 문학과 너무 소원했던 것 같다. 앞으로 자주 읽어야겠다.

한 사람의 전부를 알려면 우주만큼 장수해야 할 것 같았다. - 58p




무계는 근거 없는 말을 이른다. 그러나 황당은 본래 이와 다르다. 그것은 크고 어지러워 이치에 맞지 않다는 뜻이지만, 엉망진창인 현실의 심부를 전복적으로 드러내려는 아이러니의 힘을 지니고 있다. - 153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