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과 모래시계 - Novel Engine POP
도리카이 히우 지음, 정대식 옮김 / 영상출판미디어(주) / 2018년 7월
평점 :
품절


8.7







 작중에 등장하는 가상 국가 제리미스탄은 '종말 감옥'이란 특이한 정책을 내건다. 전세계적으로 인권의 바람이 불어 대부분의 나라가 사형수를 사형시키지 못할 때 제리미스탄은 종말 감옥을 만들어 전세계 사형수를 받아서 대신 사형시키겠다고 앞장선 것이다. 당연히 인권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에겐 논란이 됐지만 이 정책은 당장 여러 나라에게 큰 환영을 받는다. 사형수들을 사형시키지 않고 감옥에 가둬두느라 세금이 허비되는 게 탐탁치 않았던 각국 정부는 사례금을 주고서 제리미스탄에 사형수를 양도하고 제리미스탄은 그렇게 얻은 사례금으로 국력을 키운다. 그렇게 윈윈 전략 아래서 탄생한 제리미스탄의 종말 감옥에는 각국의 사형수들이 모이는데...

 참 특이한 설정의 연작 추리소설이었는데 감옥을 배경으로 해서 추리에 제약이 발생한다는 상황도 흥미로웠고 전세계 사람들이 모여 각자 출신지에 따른 가치관의 차이에서 - 참고로 수감자는 의사소통을 위해 필수적으로, 그리고 자발적으로 제리미스탄어 수업을 듣는다. - 수수께끼와 갈등, 살인이 비롯된다는 건 개인적으로 취향에 맞아 좋았다. 무엇보다 감옥을 배경으로 한 창작물이 흔히 보이는 '범죄자에게도 정이 있다'는 듯한 분위기가 별로 없던 게 좋았고 사형 제도 자체에도 크게 주제의식을 드러내지 않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간혹 특정 나라의 가치관에 반했을 뿐이지 객관적으로 보면 사형수 판결이 과한 인물도 있고 개중엔 아예 무고한 사람도 있지만 그걸 빌미로 사형 제도의 모순을 비판하기 보단 본격 추리소설의 소재와 설정으로 이용한다는 느낌을 받아 오히려 편하게 읽을 수 있었다. 한마디로 오락을 강조한 추리소설이란 컨셉에 충실했다는 것이다.



 '마왕 샤보 돌마얀의 밀실'


 초장부터 전세계 사람들이 수감된 종말 감옥이란 설정과 매력을 각인시키기에 제격이었던 에피소드. 총 6편의 수록작 중에서도 가장 임팩트가 컸다. 사건의 동기는 그리 어렵지 않게 유추가 됐지만 방법에 대한 해답은 꽤 재밌었다. 복선도 충분했고 캐릭터들도 다 개성이 있어 이래저래 이상적인 출발이 아니었나 싶었다. 

 그나저나 작중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이 전부 특이한데 우리나라 번역판이니까 그나마 괜찮았지 일본 원서로 읽으면 가타카나가 범벅이라 눈이 다 어지러웠을 것 같다.



 '영웅 첸 웨이츠의 실종'


 유일하게 제리미스탄 종말 감옥에서 탈출한 첸 웨이츠의 비범함은 놀라웠지만 이후에 보인 다소 썰렁한 행보가 뜻밖이었던 작품. 반전 자체는 그렇게 의외도 아니었고 오히려 첸 웨이츠란 인물에게 실망하게 됐지만 탈출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계획성과 추진력은 혀를 내두를 만했다. 그렇기에 그의 행보가 더욱 실망스러웠던 거겠지.



 '감찰관 제마이야 칼리드의 도회'


 어떻게 보면 사형 제도를 전면으로 수행하는 종말 감옥이란 공간에서 사형 제도에 대해 그나마 사유다운 사유를 했던 에피소드. 간수들은 사형수들이 사형되기 전에 그들의 인권을 어느 선까지 존중할 것인가. 꽤 생각해봄직한 질문이었는데 너무 편파된 답을 유도하는 듯한 막장스런 인격의 간수가 나왔던 건 내심 아쉬웠다. 그래서 사건의 내막에 공감이 크게 집중이 안 갔던 것 같다. 하필 사건의 내막이 너무 작위적이고 초월적이기까지 해서 작중에 드러난 사유의 역할이 중요했는데 너무 반전에만 급급한 듯한 내막이라 도리어 크게 인상에 남지 않았다.



 '묘지기 라쿠파 걀포의 긍지'


 서로 다른 출신지의 수감자들이 모이는 종말 감옥의 특수성에 가장 어울리는 반전이 돋보인 에피소드였다. 솔직히 말해 다룬 소재가 보통 특수한 게 아니다 보니 복선이 부족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데 작품의 설정에는 대단히 어울리는 사건이고 반전이 아닐 수 없어 치사한 감은 있어도 납득하게 되는 결말이었다. 여러 나라의 문화에 관심이 있다면 흥미롭기 이를 데 없는 에피소드일 것이다.



 '여죄수 마리아 스코필드의 잉태'


 남자 수감자와 여자 수감자가 철저히 분리되는 제리미스탄 감옥에서 한 여자 죄수가 임신했다는 보고가 들어온다. 이 책의 수록작 중에서 가장 궁금한 도입부였는데 결말은 기괴하기 짝이 없어서 뒷맛이 상당히 안 좋았다. <죽음과 모래시계>의 수록작 6편 중 3편은 종말 감옥이란 배경을 잘 활용했고 나머지 3편은 배경의 한계를 드러낸 작품이라 할 수 있는데 그 3편 중 '여죄수 마리아 스코필드의 잉태'가 가장 심했다. 논리적으로 말은 되고 의외성도 있었지만 계획 실행에 있어 일부 우연에 기댄 부분도 있었기에 추리소설로써도 완성도는 그닥이었던 에피소드였다.



 '확정수 앨런 이시다의 진실' - 스포일러 有


 예상과 달리 마지막치고 클리셰 투성이라 놀랐던 에피소드. 용두사미까진 아니지만 확실히 기대에 못 미치긴 했다. '알고 보니 무고했다'는 앨런의 과거도 그렇지만 그의 아버지의 정체나 다소 격정적이었던 후반부의 전개도 전부 클리셰가 아닌가. 막판에 앨런의 아버지가 숨을 거두면서 읆조린 말에서 소름이 돋긴 했지만 그것만으론 이 상투적인 마지막 에피소드의 아쉬움을 달래기엔 역부족이었다. 해피엔딩이 아니란 건 마음에 들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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