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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 비행
가노 도모코 지음, 박정임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8년 4월
평점 :
절판
7.3
바로 직전에 <작가 형사 부스지마>를 읽어서 그런가... 작풍을 비롯해 모든 것이 상반된 작품을 이렇게 연속으로 읽는 건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볼 수 있겠다. 기껏 감성적인 일상 미스터리를 읽으면 뭐하는가, 직전에 읽은 작품과의 온도 차에 적응이 되지 않아 미진한 반응만 일고 마는 것을.
...이렇게 생각하고 싶지만 이 작가에 대한 기대가 커서 상대적으로 실망했던 게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가노 도모코의 작품은 <유리기린>이나 <손 안의 작은 새>는 꽤 재밌게 읽었는데 정작 작가의 데뷔작이나 그 작품의 후속작인 이 작품 <마법 비행>은 별로였다. 꽤 재밌게 읽었던 두 작품은 내가 10대 후반, 20대 초반에 읽었고 별로였던 작품은 최근에 읽었는데 이 시간 동안 내가 많이 바뀐 것일까? 그건 재밌게 읽은 두 작품을 재독하면 판명될 일일 것이다.
작가의 데뷔작 <일곱 번째 이야기>와 이번 <마법 비행>은 여대생 고마코가 주인공인 연작 일상 추리소설로 어딘가 자전적인 요소가 느껴지는 아기자기한 작품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 두 소설을 추리소설로 인식하지 못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엄연히 수수께끼가 등장하고 그 수수께끼를 논리적으로 푸는 과정이 후반부에 배치돼서 실상 굉장히 정석적인 추리소설이라 불러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여타 추리소설과 차이가 있다면 주인공인 고마코의 시점에서 바라보는 세상에 대한 묘사가 따뜻한 것이 - 아주 따뜻함 일색인 건 아니지만 전반적인 분위기는 분명 따뜻하기 이를 데 없다. - 영락없도록 추리소설적 분위기,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범죄의 기운이 물씬 나는 분위기완 상반됐다는 것일 터다.
일상 추리소설을 좀 찾아 읽는 사람이라면 이런 작풍은 그리 낯설지 않겠지만 특유의 자전적 요소와 고마코가 겪는 일상의 사건과 그걸 소설화시키는 고마코의 서술 사이의 관계라는 부분이 있어 조금은 특별하게 다가오는 것이 매력이다. 와카타케 나나미의 작품보단 따뜻하고 기타무라 가오루의 '엔시 씨와 나' 시리즈하고는 이 자전적 요소에서 미묘하게 차이가 있어 나름의 개성이 있기도 하다. 이런 부분이 매우 비관적이고, 특히 소설에 대한 환상을 모조리 조롱한 <작가 형사 부스지마>와 상극이라 그 작품을 읽은 직후에 <마법 비행>을 읽는다는 것은 남들에게 말도 못할 당혹스러운 경험이었는데 그런 부분을 감안하더라도 이 연작 추리소설은 왠지 이목을 끄는 맛이 부족했다.
표제작인 '마법 비행'이 그나마 재밌었고 나머지 세 작품은 인상이 흐릿했다. 일상 추리소설답게 무척 사기적인 수준의 추리가 나오는데 고마코의 소설과 세오 씨의 해설이 너무 역할이 딱딱 나뉜 경향이 있어 무의식적으로 고마코의 소설 부분의 몰입도가 약해지지 않았나 싶다. 고마코의 소설 부분이 추리소설적 구성을 지녀 그런대로 흥미롭지만 사건의 임팩트 자체는 미미한 수준이기에 정작 해설에 이르는 과정보다 해설 자체만 기다리게 되지 않았나 싶다. 나도 결국엔 똑같은 소설가 지망생이라 훈수 두기엔 처지가 좀 그렇긴 하나 단적으로 말해 소설을 읽거나 쓰는 것엔 취향이란 별개의 영역도 분명 있는 법이니 선뜻 작가의 감성과 스토리 텔링이 퍽 와 닿지 않아도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이는 어떻게 보면 내가 무척 불성실한 독자임을 스스로 드러내는 꼴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이 작품 몇 년 뒤에 쓴 작가의 작품 <유리기린>, <손 안의 작은 새>가 재밌던 걸 떠올리면 나는 작가가 아직 이 작품을 쓸 때까지는 미숙했던 거라 단정하고 싶다. 일상 추리소설에서 작가가 구현한 감성에 몰입할 수 있느냐는 것은 꽤 중요한 지점이므로 다시 말하지만 상술한 두 작품을 재독해야 판명될 일임에도 지금 당장으로서는 솔직히 말해 이 시절까지는 작가가 미숙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거, 진짜 말이 나온 김에 <유리기린>부터 좀 다시 읽든가 해야겠는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