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형사 부스지마 스토리콜렉터 64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김윤수 옮김 / 북로드 / 2018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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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우리나라 독자 한정으로 참 재밌는 제목이 아닐 수 없다. 원래는 독설가인 주인공의 성격에 맞게 이름에 '독'이 들어갔을 뿐인데 뜻밖이면서도 아이러니하게 우리나라에선 다른 의미의 이름이 되고 말았다. 실제로 부스지마는 작중에서 용의자나 업계 등 자기 앞의 대상을 그야말로 철저하게 부수는데...

 직언하지 않는 게 국민성이라 할 일본이다 보니 오히려 그에 대한 갈증으로 인해 사이다 발언을 하는 캐릭터가 등장하는 작품을 잘 만드는 것도 같다. 비슷한 플롯과 캐릭터를 다룬 작품으로 오쿠다 히데오의 '이라부' 시리즈와 교고쿠 나츠히코의 <죽지그래>, 그리고 사카이 마사토가 출연한 드라마 <리갈 하이>가 떠오르는데 모두 가식 없이 내면을 후벼파는 내용이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작가 형사 부스지마>는 주인공의 캐릭터성만 보면 위의 작품들에 비해 좀 약한 편이지만 대신 컨셉이 특이해 재미와 통쾌함이 위의 작품들에 결코 뒤지지 않았다.


 이 책은 작가 지망생은 결코 읽으면 안 되는 책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작가 지망생인 내 입장에서 불편하지만 읽어야만 하는 내용이나 다름없었다. 이렇게 오로지 출판업계만을 상대로 비판을 일삼는 작품은 처음인데 추리소설적인 사건과 반전, 결말은 부수적인 요소로 느껴질 만큼 업계의 실상을 낱낱이 까발리는 게 주된 목적인 작품이라 생각하게 만드는 요소가 참 많았다.

 공모전 1차에 낙선되는 실력 미달 작가 지망생, 편집자에 의존하는 신출내기 작가들과 그런 작가들의 등골마저 빼먹는 악덕 편집자, 어떻게 신인상을 받으면서 데뷔는 했지만 실적을 못 내고 있는 작가들과 그들에게 꼰대짓을 하는 문단의 거장 등 에피소드가 거듭될수록 조롱하는 대상이 진화하는데... 어떨 때는 '이게 현실일 리 없다'며 부정하고 싶은 발언도 나오고 언제는 '남들이 날 이렇게 보고 있진 않을까' 라며 찔리는 장면도 나와 여러모로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워너비의 심리 테스트'


 공모전 1차에서 떨어지는 이유를 납득할 수 없는 작가 지망생들의 추한 모습을 다룬 첫 번째 에피소드. 그들과 완전히 같은 처지라 할 수 있기에 남 얘기처럼 읽히지 않았다. 나 역시 작년에 낙선하고 최종 심사에도 못 들어서 크게 낙심하던 차였는데, 작중 인물들만큼은 아니더라도 내심 불만스러웠던 터라 오히려 읽고 반성하게 되는 에피소드였다. 타인의 객관적이고 냉정한 개입 없이 자기 세계에 갇히는 게 얼마나 위험하고 추한 것인지 작가 형사 부스지마가 제대로 비웃는데 나도 그 대상이 되지 않게끔 열심히 써야겠단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었다.



 '편집자는 편집자'


 이 에피소드는 무능한 작가인 용의자들과 너무 이해타산적이라 유능한 편집자라 평가받았던 피해자를 동시에 꼬집는다. 데뷔를 했어도 첫 번재 에피소드의 용의자들과 다를 게 없는 인물들이 또 나오는데 이런 병적인 면모는 어떻게 보면 작가를 지향하는 사람들의 보편적인 모습이겠단 생각에 크게 웃을 수만은 없었다. 따라서 사건의 전말은 씁쓸하기 짝이 없었는데, 출판업계엔 걸출한 재능의 소유자가 너무 극소수라 비즈니스적 요인을 무시하고 이상적으로 꾸려나가기엔 힘들다는 의견에 새삼 동의하게 됐다.



 '상을 받긴 했지만'


 화려하게 데뷔는 했지만 성과를 내지 못해 도태되기 일보직전인 용의자들이 나오는 에피소드다. 첫 번째, 두 번째 에피소드와 플롯이 비슷하긴 한데 개인적으로 피해자가 출판업계에서나 거장 소리 들을 만한 위인이었다는 것이 조금 다르게 다가왔다. 두 번째 에피소드의 피해자도 주변에서 유능하지만 인격엔 문제가 있는 것으로 평가를 받았는데 이번엔 인격적인 부분에서도 어느 정도 인정하는 주변의 평가가 조금 의아했기 때문이다. 물론 피해자가 괜찮은 작가고 양반인 건 부정할 수 없지만 신인들한테 설교를 한다는, 꼰대라 불려도 할 말이 없는 행동에 대해선 쉽게 동의할 수 없었다. 물론 부스지마의 방식이라고 찬성할 순 없지만... 때론 도태되는 것을 자청하는 인물을 구제하려는 게 말짱 헛짓인 경우나 상대도 있구나 싶어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특히 이익을 추구해야 하는 출판사의 입장을 떠올리면 더더욱.


 

 '애독자'


 이야기 자체는 그리 흥미롭진 않았는데 용의자 중 한 명이 꽤나 인상에 남았다. 책을 사지도 않고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 주제에 인터넷으로 악평을 남기고 책을 사서 보는 건 낭비고 바보 같은 짓이라 주장하는 그 인물의 논리가 반은 동의하고 반은 반대하기 때문이다. 나 같은 경우엔 신뢰하는 작가의 작품을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의 책을 빌려 읽기로 결심한 독자인데 빌려 읽었는가, 돈을 내고 읽었는가에 따라 감상에 차이가 있으며 대체로 후자가 더 정성이 들어가기 마련인 걸 경험했기에 이 인물에 대한 비판에 대해 대체로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하지만 작가로서 출판업계의 일원이 되고자 하는 자아와는 무관하게 나는 소비자로서의 선택의 자유를 옹호하는 편이므로 결국 중요한 건, 이 작품집의 진정한 주제일지 모를 '작가는 재능이건 뭐건 작품을 성실히 잘 쓰는 게 답이다'란 결론이 아닌가 싶었다. 해당 에피소드와는 그리 관련이 없는 말이긴 하나, 실력도 없는데 이상을 추구하거나 건방을 떠는 건 추하기만 할 뿐이니까.


 

 '원작과 드라마 사이에는 깊고 어두운 강이 있다'


 소설이 원작인 일본 드라마를 자주 보는 나로서 정말이지 공감하지 않기가 힘들었던 이야기. 가장 궁금하면서도 가장 골 때리는 부분에 대해 얘기하는데, 순전히 작품 외적이면서 하찮기 이를 데 없는 요인으로 원작을 훼손하는 드라마 프로듀서가 정말이지 언제나 좋은 작품을 접하길 바라는 한 사람으로서 살해당해도 어쩔 수 없는 사람이란 생각을 나도 모르게 품었던 것 같다.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부스지마가 용의 선상에 오르는 상황도 재밌었고 작가이자 '형사 기능지도원'으로 재취업된 형사이기도 한 부스지마의 정체성이 강조된 의외의 결말, 그리고 첫 번째 에피소드 때부터 활용된 함정 수사 형식이 돋보인 것도 모두 인상적이었다.


 

 부스지마처럼 못된 말을 하는 캐릭터로 <리갈 하이>에서 사카이 마사토가 열연한 코미카도가 떠오른다. 그 캐릭터는 세상이 요지경이라 위악자로 사는 게 아닌가 하는 묘사가 있었는데 부스지마는 그런 면모까지 그려지지 않아 약간 아쉬웠다. 심지어 딱히 위악자는 아닌 것 같은데 억지로 못된 말만 하는 것 같은 다소 어정쩡한 모습을 보여 어딘가 어정쩡하다는 느낌도 받았지만 대신 하는 말 대부분이, 작가를 대변하는 그의 말은 의미가 있어 한동안 잊지 못할 캐릭터임엔 분명하다.

 또 부스지마한테 그렇게 철저히 당하고도 '그래도 자긴 열심히 쓸 거다'고 하는 하는 몇몇 인물들도 마찬가지로 잊지 못할 것 같다. 그들은 통찰력이 뛰어나기로 정평이 난 부스지마의 예상을 벗어난 인물이자 우리가 본받아야 할 유형의 인물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들이 되고자 하는 역사에 남을 위대한 작가는 그런 식으로 탄생하는지도 모른다. 적어도 이 작품에서 묘사된 출판 업계처럼 - 아마 현실과 거의 비슷할 - 독설이 절실한 막장의 세계에선 말이다.


 작가의 데뷔작을 읽었을 땐 이 정도 인상까진 못 받았는데 이 작품을 읽으니 이 작가의 책이 왜 그토록 많이 출간되는지 알게 됐다. 작가의 또 다른 데뷔작인 <안녕, 드뷔시>부터 차근차근 읽어야겠다.

야심이 원한으로 변질되는 건 이 바닥에 때때로 일어나는 일이죠. - 31p




작가의 재능이라는 게 워낙에 실체가 의심스럽잖아. 자각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것이 꼭 이익으로 직결된다고 볼 수도 없고, 잠재력이 어느 정도인도 짐작할 수 없고. 하지만 그게 없으면 얘기가 안 돼. 의심스러운 걸 다루기 때문에 모조리 비즈니스처럼 처리할 수도 없고, 스스로 착각하는 인간들도 나오게 마련이지. - 103p




정말이지 당신들 하는 짓하고는. 드라마에서는 여기저기 온갖 배려하며 예의 차린 것만 만들면서, 보도만 된다 하면 한없이 천해진다니까. - 30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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