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노우맨 (리커버 에디션)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7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2년 2월
평점 :
품절


9.5







 내가 가장 처음 접한 작가의 책을 다시 읽었다. 이 작품을 읽고 시리즈의 1권부터 순서대로 읽겠노라 다짐했는데 꼬박 4년이 걸렸다. 이게 다 전편인 <리디머>가 늦게 출간된 탓이다. <스노우맨>이 시리즈의 일곱 번째 작품이지만 전편을 예습하지 않아도, 또 개별적인 완성도도 뛰어나 국내에 처음 출간시킨 건 인정하지만 역시 들쑥날쑥한 출간 순서와 속도는 불만을 품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전편을 예습하지 않아도 괜찮은 작품이긴 해도, 역시 1권부터 차근차근 읽어나간 다음에 읽었을 때 감동이 배가되니 가급적 시리즈는 순서대로 읽어야겠단 생각은 변하지 않게 됐다.

 혹시 이 시리즈를 처음 접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1권인 <박쥐>부터, 적어도 3권인 <레드 브레스트>부터 읽길 권한다. 물론 7권인 <스노우맨>도 시작으로선 그리 나쁘지 않다. 해리와 연쇄살인범의 대결이란 빅 이벤트가 드디어 그의 고국인 노르웨이에서도 펼쳐진 작품이니까. 1권과 7권 사이의 작품은 이를 위한 사전 단계이자 담금질로 생각할 수도 있고. 그렇게 표현하기엔 정말 많고 많은 일이 있었지만... 아무튼 이 작품 역시 이야기의 무대인 노르웨이, 특히 오슬로에서 읽으니 몰입도가 더욱 남달랐던 작품이다.

 직접 오슬로의 거리를 걸어본 나로선 작중의 서늘한 분위기가 더욱 이질적이게 느껴졌다. 왜 해리의 동료들이 노르웨이에선 연쇄살인은 없다고 단정하는지 알 것만 같았다. 지금까지 일어나지 않은 일이라 해서 앞으로 일어나지 않으리란 건 사실 굉장히 순진하고 비논리적인 주장이지만 직접 그 동네를 걸어다닌 나로선 왠지 납득이 갔던 것이다. 그럼 요 네스뵈의 이 이야기는 그저 픽션으로 치부하면 그만인 것일까? 극우와 청산하지 않은 역사 문제가 현대 사회에 끼치는 악영향에 대해 매우 통찰력 있게 짚어낸 작가인 만큼 마냥 허구적이라 치부하긴 힘들어 보인다. 바라선 안 되는 일이지만, 그의 진단은 예언 같은 구석이 있으니까.


 직전에 <리디머>를 포스팅하면서도 언급한 사항이지만, 하나의 작품을 평가할 때 작가나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국가가 중요한 요소로 거론되는 게 꼭 좋은 일이라 볼 수는 없다. 어쩔 때는 한계로 여겨질 수도 있는 부분인데 요 네스뵈의 '해리 홀레' 시리즈의 경우엔 노르웨이란 나라가 생소하기 때문인지 몰라도 어마어마한 강점으로 다가온다.

 작품의 서두에서 '세계 무대에서 노르웨이는 돈이 많아 세상 물정 모르는 금발의 여자와 같다'는 식의 묘사가 나오는데 - 왜 하필 여자인지는 의문이 들지만... - 이 점은 연쇄살인의 낌새가 느껴짐에도 떨떠름하는 걸 넘어 아예 해리가 유명해지고 싶어 안달이 난 관종으로 넘겨짚는 오슬로 경찰청의 분위기에서 문제점이 극대화된다. 톰 롭 스미스의 <차일드44>와는 경우가 많이 다르지만 이 정도면 연쇄살인범이 자아도취돼서 활개할 무대가 되기에 충분한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노우맨>은 시리즈의 어떤 작품보다 이야기가 명확하고 흡입력이 강하다. 연쇄살인범 '스노우맨'으로 의심되는 사람이 계속 바뀌며 독자들을 현혹하는 진행도 일품이고 극을 이끌어가는 캐릭터들도 매력적이다. 해리의 성장을 위해 퇴장당한 인물이 한둘이 아니라 못내 아쉽지만;;; 새로 등장한 인물들의 존재감이나 역할도 이전의 동료들 못지않아 심심찮은 위로가 됐다. 처음 나왔을 때 괜히 한 번 반항하고 놀려주고 싶던 하겐 경정도 참 괜찮은 양반으로 등장하고 대놓고 노린 캐릭터인 줄 알았던 카트리네 브라트도 의외로 해리와 스노우맨에 뒤쳐지지 않은 활약을 보여 흥미진진했다. 출연 비중을 떠나 괜찮은 캐릭터를 만들 줄 아는 작가에게 어떻게 보면 내심 백과사전 수준의 분량은 필수가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개인적으로 서양 스릴러 특유의, 사건의 내막에 주인공 형사의 개인사가 강하게 반영된 서사를 선호하지 않는데 이 시리즈만은 예외다. 한 가지 예로 <레드 브레스트>부터 이어진 라켈과의 관계가 어떤 식으로 결말이 날 것인지 보는 것도 흥미로운데 이 시리즈가 해리의 성장을 다룬 하나의 길다란 이야기 안에서 참으로 일맥상통한 서사라 불만이 생기지 않는 것 같다. 이는 이야기의 무대가 노르웨이인 것과 마찬가지로 시리즈에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일 텐데 작가가 개연성을 저버리지 않고 잘 완성시켰다는 생각만 든다. 늘 말하지만 백과사전 수준의 두께임에도 하나의 흐름 안에 여러 요소를 잘 연결시키는 작가의 솜씨는 늘 감탄스럽다.

 방심할 수 없는 전개와 더불어 시리즈의 가장 큰 미덕일 후속작을 기대하게 만드는 결말이 어우러져 깊은 만족감을 선사해준 작품이다. 형사와 연쇄살인범의 대결로 정의될 수 있는 작품이라 뻔한 양상을 보이기 십상이었지만 노르웨이를 넘어 북유럽이기에 구현이 용이해 보이는 눈에 대한 서늘한 묘사가 기가 막히게 활용돼 상당한 존재감을 안겨줬다. 한마디로 기획이 탁월한 작품이었다. 위에서 후속작을 기대하게 만드는 결말이란 얘기를 했는데 그와 동시에 전작을 다시 보고 싶게 만드는 내용이란 점 역시 인상적이었다.

 솔직히 시리즈 최고의 작품이라 생각하진 않지만 - 개인적으로 작품성으로는 <레드 브레스트>, 오락성으로는 <네메시스>를 시리즈 최고의 작품으로 꼽는다. - 시리즈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란 점에선 이견을 제시하기가 힘들다. 어떻게 보면 그래서 사람들이 시리즈 최고의 작품이라 칭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이 작품이 마이클 패스밴더 주연의 영화로도 나왔다기에 기대가 됐는데 평가가 바닥을 기어서 걱정이 된다. 이렇게 두 번 읽은 마당에 영화를 안 볼 수가 없는데... 또 예고편은 잘 만든 것 같아서... 모든 못 만든 영화는 그래도 예고편은 잘 만든다는 게 틀린 말이 아닌 걸까.

좋은 이야기는 연이은 성공이 아니라, 처절한 실패에서 나옵니다. - 369p




그러니까 겉으로 청렴결백하게만 보인다면, 청렴결백한 거로군요.

그게 <리베랄>을 팔리게 하는 요인이오. 사람들은 진실이 밝혀졌다고 생각하면 만족하니까. - 462p




정의란 건 철학에서든 재판에서든 무딘 칼과 같으니까. 우리가 가진 건 운 좋은 혹은 운이 나쁜 의학적 소견이라네. - 613p




살고자 하는 자의 목숨을 빼앗는 것과 죽고자 하는 자에게서 죽음을 빼앗는 것 중에 뭐가 더 나쁜 것 같소? - 61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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