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을 삼킨 소년 - 제37회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신인상 수상작
야쿠마루 가쿠 지음, 이영미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16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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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잠시 관심이 멀어진 사이 인기 작가로 급부상한 야쿠마루 가쿠의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신인상 수상작을 읽어봤다. 처음 작가의 작품들을 접할 땐 계속 같은 주제에다 같은 작풍이 반복돼 자기 복제만 하는 것 같아 내심 시큰둥했지만 문학상의 심사위원인 누군가의 말마따나 하나의 주제를 천착한 작가다운, 과연 장인 정신이라 부를 만한 게 작가에게 녹아든 듯해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침묵을 삼킨 소녀>은 확실히 야쿠마루 가쿠가 아니라면 이 정도 진정성이 배기 힘들었을 작품인 것 같다. 그리고 여담이지만 지금까지 읽은 작가의 작품들에 비하면 이 작품은 엄밀히 말해 추리소설은 아니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편지>처럼 - 공교롭게 이 작품도 가해자의 유족에 관한 내용이다. - 추리소설가가 쓰는 일반 소설이란 게 의외라 생각될 수도 있을 텐데 읽다보면 그런 장르의 구분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을 것이다.

 그간 작가의 작품을 보면 피해자의 눈물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작품은 가해자의 부모의 시선에서 이야길 진행시킨다. 가해자에게 진정한 의미의 갱생이 가능한가 라는 질문에 중립적이면서도 부정적인 전망을 내보인 작가이기에 독자 입장에서 과감한 설정으로 느껴졌다. 전처와 함께 사는 아들이 친구를 죽인 상황에서 '제발 네가 했다고 하지 마렴, 제발.' 이라고 연신 당황을 감추지 못하는 주인공의 심리 묘사가 초반에 주를 이루는데 그 묘사가 무척 현실적으로 느껴져 작가의 가치관이 보다 확장된 느낌이 들었다. 하긴 이제 가해자의 이야기도 다룰 때가 됐지.


 아들이 누군가에게 살해당하느냐, 아니면 누군가를 살해하느냐란 질문에 있어서 누구나 어쩔 수 없이 후자를 택하게 될 것이다. 어쨌든 일단 살아야 변명이나 반성, 참회 등을 할 수 있는 거니까. 이처럼 사람에겐 예외 없이 이기심이라는 게 있는데 이러한 특성은 작품 속에서 마주하는 어떤 문제엔 지극히 독이 될 요소이기도 할 것이다. 흡사 불가능한 미션이라고 할 수 있을 가해자의 진정한 갱생이, 주인공의 아들에겐 과연 가능할까?

 이 작품이 진정성이 있고 술술 읽히는 것과는 별개로, 아무래도 진정한 갱생의 가능성을 염두에 뒀는지 사건의 내막에 얽힌 가해자의 절박함을 강조해 대체로 동정의 여론이 생길 법했던 건 개인적으로 약간... 쉬운 방법을 쓰지 않았나 싶었다. 물론 '사람을 죽이고 싶어서 죽였다'고 하는 녀석을 다루는 게 무척 어렵긴 하겠지만 이처럼 어느 정도 '가해자가 된 피해자' 설정을 차용해서 극악무도한 소년 범죄자도 갱생이 가능한 것인지 질문이 확장될 수 있는 주제에 있어서 비교적 해피엔딩이 쉽게 열릴 것 같은 낌새를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작품의 결말은 결코 쉽지 않았다. 범죄자가 된 아들과 마주하고서 진정으로 죄책감을 느끼고 부모로서의 책임감을 다짐하는 주인공의 내면은 무겁게, 돌이킬 수 없는 짓을 저지른 아들이 당장은 몰라도 언젠가 사죄의 마음이 들 것인가 하는 의문이 한없이 불가능한 것처럼 묘사됐다. 아들은 미성년자란 이유로 다른 범죄자들과 달리 교화라는 이름의 비교적 가벼운 처벌을 받았는데 과연 이 제도는 정말 실효성이 있긴 한 걸까? 그 질문의 결과를 예측하기 힘들다는 게 이 작품의 참된 매력이자 가치였다.

 작품의 원제는 'A가 아닌 너와 함께' 란다. 범죄자가 아직 미성년자라면 익명성을 위해 주로 A란 호칭을 붙이는데 이 살풍경한 글자는 익명성과 더불어 우리의 감정과 이해가 미치지 못하는 어딘가 먼 곳으로 가려는 듯 현실감이 떨어지게 만드는 효과도 있어 작가로서 가장 배제하고 싶은 요인이었을 듯하다. 아버지인 주인공이 아들 - 범죄자가 아닌 인간으로서 - 과 함께 죄의 무게를 짊어진다는 의미일 텐데 이게 제법 울리는 바가 컸다. 진정성이란 말을 별로 믿지 않지만 이 작품은 약간은 기대를 품어볼 만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후반부에 주인공의 아들이 느꼈듯 자기가 자기 자신으로서 온전히 솔직할 수 있는 방법은 자기 죄와 마주하는 방법 외엔 없었으니까. 그리고 때론 참회는 곧 구원이기도 하니까.

행동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자식이 왜 그랬는지를 먼저 생각해 보는 게 부모야. - 27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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